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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2002.4.21-2002.4.21)
 여행 일정
1.할아텍 기획 한응전 개인전 '철암의 아침'이 철암역갤러리에서 열립니다.
-- 한응전님 개인전 축하 - 영상감상시간을 갖습니다.
Chris Marker의 영상작품"la jetee" 감상예정(이경희선생님의 해설과 더불어)
2.철암답사 코스는
1)돌구지> 광부의 길> 월천동> 신설동과 삼방동 골목으로
2)연화산 자락의 산사> 피네골 따라> 선탄장으로
3)석공입구에서 선탄장 뒷길을 따라 남동으로
4)저탄장 등반 등이 있습니다.
3.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조형교육 프로그램이 병행됩니다.
참가자
1. 류장복
2. 한응전
3. 서용선
4. 윤기연
6. 박진수
7. 이경희
8. 장성아
9. 김 희
10.배석빈
11.박혜성
12.김경옥
13.황우철
14.정승운
15.고명숙
16.정은화
17.신영숙
18.이신애
19.정혜진
여행 경비
=7차 여행경비 지출 내역=
*수입
회비 55000 * 6명=330000원
37000 * 1명= 37000원
30000 * 1명= 30000원
20000 * 1명= 20000원
13200 * 1명= 13200원
14000 * 1명= 14000원
43000 * 2명= 86000원
추가징수(^^) 7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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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600,200원
*지출
기차요금 갈때 135300원
올때 153200원
20일 점심식사 30000원
회 5000원
딸기 5000원
막걸리 2600원
과자,음료 9700원
숙박료 60000원
20일 저녁식사 66000원
소주 10000원
생수 3000원
21일 아침식사 52000원
21일 점심(흥복사) 40000원
아이스크림 5000원
21일 저녁식사 24000원
------------------------------
합계 600,800원
여행 후기
이신애
내 인생 햇살 받던 날.
불공평 한 것은 공평한 것이다. 정답: 서 용선 선생님
목요일날 제주도에서 돌아와 집안 정리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배낭을 메고 이번에는 철암으로 떠났다.
추위와 바람에 밀려서 웅숭거리고, 손이 곱아 연신 겨드랑이에 손을 녹이던 철암에 봄이 어떻게 왔는지 보고 싶어서 였다. 집에 오자 마자 떠나기가 버거워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떠났다.
서울에 봄은 오고 또 가고 있었는데 철암에 가까워 질수록 싹이 나지 않은 나무가 여기 저기 눈에 띄어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가끔은 밥을 먹고, 또 자러 가야 한다는 것이 싫다. 여행을 가서는 잠도 자지말고, 밥도 먹지말고 오로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든지 아무것도 하지않고 볕바래기를 하며 해가 지는 것을 천천히 지켜 보고 싶다.여독이 채 풀리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장 성아씨 까지 일요일 새벽에 오게 되어 엉겁결에 대신 회비를 관리하다보니 예상대로 후회막급이었다. 일단 일을 했다 하면 철저하게 하는 성미라 그림보다 회비 징수와 지출에 신경을 쓰다보니 알량한 그림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햇살이 따스한데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았다. 그림이야 기다려 주겠지만 이 햇살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부는 바람 속에 서있기도 하고, 얼굴에 햇살을 받으며 스케치를 하기도 하였다.그 지겹던 겨울은 가고, 바람조차 연한 배속처럼 불고 있었고, 산은 누우면 푹신한 양탄자처럼 부드럽게 보이고 가끔 솜사탕같이 보이는 산벚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하늘은 오래간만에 제 색갈을 찾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 철암의 장날 이었다. 겨우내 웅크린 사람들은 석탄먼지가 가신 바람속에서 게를 고르고 ,장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에 회를 먹고 있었다. 거기에 위생관념이란 사치한 것이었다. 일행들은 버려도 줍어 가지 않을 것 같은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주는 회 한 접시를 들고 장터 구석으로가 대강 앉아서 회를 먹고, 스케치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장터 풍경은 쉽지 않았다. 이 경희 선생님 일행이 오고 같이 오신 분으로 부터 오징어 10마리를 희사 받았다. 밤에 필요한 술안주를 생각하여 염치 불구하고 받아놓고 정 은화 씨와 선탄장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선탄장 시설이 다른 각도에서 잘 보였다. 겨울에는 손이 곱다는 핑계로 대강 스케치를 했는데 ,오래간만 에 산자락에 편히 앉아서 스케치를 했다. 손바닥만한 종이에 선탄장 시설과 철암역을 구부려 넣고 내려왔다.
한 응전 씨의 개인전 오픈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철암의 아침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가능하면 아침에 그리려고 했다는 작가의 설명이 없어도 차분한 느낌의 그림이 잠에서 덜 깬 듯한 철암 천변의 풍경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그림 그리는 화가에 익숙해진 아이들 등쌀에 아예 개천변에 내려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말에 변화 되가는 주민의식을 느낄수 있었다. 봄이 오듯이 주민들 가슴속에는 그림을 일상으로 받아 들이는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그림 그리는 재주를 타고 났다면?
세상은 모두 화가로 뒤덮일까? 때로 공평한 것은 불공평한 것 보다 못한 것이다.
저녁이 오고 ....해가 졌다.
소주열병 - 산너머 산-첩첩산중으로 풀어야 할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경희 선생님 고교 동창생 세분에다 학교에 같이 계신분, 로드 무비를 계획하신다는 임홍 감독님,고정멤버이신 류장복 , 서용선 선생님, 오늘의 개인전을 준비하느라고 꺼매진 한 응전씨, 동그랗고 까만 썬글래스가 잘 어울리는 김 희, 배 석빈 선생님, 몸이 불편한데도 오래전의 약속이라 감기약을 한통 지고 오신 윤 기연씨, 부끄러워만 하시는 고 명숙씨 , 모두 모여 준비된 크리스 마커의 70년대 영화를 보았다. 흑백으로 극히 절제된 대사를 영어자막으로 처리했는데, 컬러 영화에 익숙한 현재의 사람들에게 웃지도 떠들지도, 웃기지도 않는 정지된 화면은 피곤에 지친 일행들을 잠깐 졸게했다.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피지배자인 주인공은 실험대상이 되어 과거로 갔다가 다시 미래로 이동을 한다. 그 사이에 그는 꿈을 꾼다. 그런 삭막한 상황에서 꿈을 꾼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나치하에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중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만이 살수 있었던 점이 생각키워 졌다.
영화 제목은 La Jet'ee .
사람이 꿈을 꾸어서 못 이룬 것이 있었던가?
손전화, 컴퓨터, 인공위성.....불과 이 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소설속 에서만 보던 이기들이 아닌가?
공상소설 속에서 그렇게 나와도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순간 이동기계 정도 일 것이다.
인류의 불행한 미래를 꿈꾸고, 실행에 옮길 바보는 없겠지만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같이 오는 것이라 끔찍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영화를 보고 난후의 반응이 별로 라서 이 경희 선생님은 미안해 했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모여서 각기 가진 것을 열어 보여주고 구경 잘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새벽에 산에 오를 욕심으로 일찍 올라가 잠을 청했으나 산너머 산을 너무 많이 산탓인지 두시까지 도란 도란 얘기소리가 올라왔다. 세시가 되자 장 성아씨가 찬바람과 함께 들어와 옆에 누웠다.
새벽에 산에 가며 아랫방을 흘낏 보니 남자들은 이부자리를 펴는 방법이 아주 다른 것을 발견했다.
여자들은 아줌마든, 아가씨든 나란히 이불을 펴고 한쪽으로 머리를 하고 자는데 비해 아랫방의 남자들은 이불하나로 돌돌 말고 자거나 자기 편한데에 아무렇게나 요를 깔고 잔다는 것이 달랐다.
산은 .....아름다웠다.
낙엽송이 작은 바늘같은 연두색 싹을 틔웠고, 미류나무는 세살 짜리 계집아이 머리 카락같은 엷은 갈색의 싹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다래 덩굴은 아직 싹이 나지 않았지만 노란색 현호색과, 보라색 산괴불 주머니 ,홀아비 바람꽃 같은 작은 흰꽃이 피어 있었다. 괭이눈이 노랗게 피어 물가에서 반기고, 냇물에괜스리 손을 씻었다가 손이 시려워서 사진을 찍는 동안도 참기가 어려웠다. 태백산의 뒷꿈치에서 발목 정도도 오르지 못하고 다시 내려갔다.
일출을 보려면 아마 새벽 3시에 출발하여야 할 것 같았다.
햇살은 낙엽송 사이로 ,내머리위로 비추고 있었다. 중간에서 까마귀가 날개를 펴고 날았지만 불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머지않아 신록이 덮이면 까마귀는 소리로만 남을 것이다.
피내골에 있는 연화산 흥복사로 향했다. 절집도 ㄷ자 형으로 특이한데다 대웅전이라고 현판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연화산 흥복사란 현판이 걸려 있는 것도 달랐고, 칠성각과 삼신각도 산세에 따라 대웅전 우편에 서있었다.
일본화가 오노노 도부의 명작이라는 화투 이월달에서 보았던 홍매화가 법당뜰에 거짓말처럼 피어 있었다.
거기다 가슴이 주황색인 작은 새가 날아와 앉으니 화투장 그대로 였다.
공양주 보살을 만나 한끼 공양을 부탁하고 서 교수님은 차까지 대접을 받았다.
덤으로 오이지 만드는 법과 함께 재료도 얻어 왔다.
흥복사식 오이지 만드는 법
월계수잎 10장. 통후추 20개. 설탕.소금. 식초를 입맛대로 넣고 대승 한 되의 물에 넣고 팔팔 끓여 준비한 오이 열 개에 붓는다. 그럴 때 오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젓가락으로 자근 자근 눌러주는 것을 잊지 말 것.
일행중 몸이 안좋은 사람은 차를 타고, 나머지는 천천히 걸어서 삼방동 작업실로 이동했다. 바람이 불긴 하였지만 볕이 따거워서 늦게 오는 팀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와서 평상에 앉아 먹었다.
퀴즈두개.
1. 여름 사냥 아이스크림이 이인용인줄 모르고 한쪽 끝을 찢어서 혼자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2. 만약에 서 모 선생님과 류 모선생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본인의 말에 100% 따른 결과임. 절대 추측이나 조작이 아님.)
정답은 맨위에.
작업실은 원래 공사장 밥집으로 쓰다가 그 후에는 새를 키웠으나 지금은 써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삼방동 성당이 있어서 그 앞 평상에 앉아 어제 스케치한 산을 건너다 보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어제 그림을 그렸던 곳에서 주황색 점이 움직이기 시작 하였다. 그 점은 천천히 산을 따라 내려와 어떤 형태가 되고 이름을 가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양손에 무겁게 물감과 종이를 들고 내려오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마침내 가까이 다가와 손을 흔들었다--정 은화씨였다.
저탄장 뒷산으로 올라간 팀은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았고 바람과 햇살은 차고 넘치도록 평상 위를 넘나들었다.
스케치 하기에도 좋고, 놀기에는 더욱 좋고, 낮잠자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이렇게 아름 다운 날씨인데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이 되어 계곡에는 그림자가 지고, 거대한 저탄장의 번쩍 거림이 광채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맑은 바람과 햇살을 가득 담은 그릇이 되어 기분좋은 피곤함을 느끼며 서울로 향했다.봄이 되니 철암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그것 뿐이 아닐까?
류장복
4월18일
목요일 21:00경 도착하여 철암역 갤러리에서 그림배열에 열중인 한응전님을 만났다. 그간의 작품제작 과정에서 만난 황사, 억센 봄바람 등 악천후와 잠자리의 불편을 무릎썼다던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 철암을 배경으로 로드무비를 기획하던 임홍 영화감독을 갤러리에서 만났다. 반갑게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나자 이야기는 선술집으로 황실장(숙소)으로 옮아가며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임감독과는 토요일 정기여행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4월 19일
오전, 철암초등교를 방문하여 교장선생님과 1학기 어린이 조형교육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상의했다.
나오는 길에 교문에서 주소장님 일행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에 넘쳐있는 그의 모습은 철암의 품에서 대견(?)스럽다.
오후에 화구를 챙겨 삼방동 진입로의 복지회관 뒤켠 골목길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겨울 철암역개관기념전을 준비하면서 철암에 머물렀을때 오며 가며 보았던 골목길의 이 나무는 늘 오롯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세한도를 떠올리게도 하는 이 장면은 그림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바깥에서 사생하기에는 너무 정적이었다.
4월 19일 이 나무를 다시 보았다.
신설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거닐다 큰길로 나오는 길에서다.
그 나무는 거기 서 있었다.
시커멓고 굵은 줄기 밖으로 휘휘 가지를 저으며 파릇파릇 연녹의 잎새를 봄볕에 맡기고 있었다.
이 광경은 겨우내 싸한 정적을 감고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하나의 사건을 연출한다. 사건이었다.
4월 20일
새벽 5시를 조금넘어서 박혜성, 김경옥 선생님은 철암어린이 조형교육을 위한 짐보따리를 들고 싸한 새벽공기에 어깨를 움추리며 철암역에 당도한다.
두분은 황실장 숙소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곧바로 철암초등교를 향했다.
정기여행의 일행은 어김없이 오후1시를 지나 예정된 시각에 철암역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한응전의 '철암의 아침'전을 둘러보고 짐들을 정리한 다음 익숙한 자세로 철암역을 나선다.
때맞추어 합류한 임홍감독도 한응전님과 함께 일행들과 무리지어 사라진다.
지난 가을과 겨울 몇차례 같이 그림을 그렸던 철암초등교 아이들 대여섯명이 화구를 챙겨들고 철암역에 기다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거들랑 언제든지 정기여행 시간에 맞추어 오면 된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떠오른다.
철암교 교육프로그램을 마치고 합류한 김경옥 선생님이 피곤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장쪽으로 가는 모습이 봄볕과 더불어 따스하게 눈으로 들어온다. 마침 10일장이 서는 날이다.
박혜성, 김경옥 선생님은 이 날 오후 5시 31분 기차로 바쁘게 돌아가야 했다.
나는 나른하게 감싸도는 봄볕에 겨드랑이를 들썩거리다 화려하기조차한 뒷동산을 만나 큰길가에 화구를 펼첬다.
삼방동과 신설동 사이로 보이는 뒷산과 그 아래로 보이는 천변의 집들이다.
철암의 중심을 지나는 도로변의 자리에서 천변의 집들은 내려다 보이고 뒷산은 올려다 보인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살냄새를 간신히 풍긴다.
더욱 벌어진 빈집벽의 갈라진 틈새는 할머니의 거친 손등과도 같이 지난 겨울의 흔적을 보여준다.
봄기지개를 켜기에 힘겨워 보인다.
병풍처럼 뒷산은 봄의 기운을 담아 동네를 감싼다.
뒷산전체가 마치 잔치라도 벌이는양 꽃가루를 날리며 요란하게 들썩거린다.
한그루의 매화는 유독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난스레 봄꽃을 피워댄다.
꽃잎은 봄바람에 흐드러진다.
풍경은 맹금류의 날개짓처럼 가장자리를 펼치며 내게로 온다.
나는 발뒤꿈치를 약간 들어 마중나갈 채비를 한다.
이윽고 눈은 쏟아지는 봄볕을 더듬기 시작한다.
작은 일들이 화폭안에서 벌어진다.
오후 5시 30분 조촐하게 준비한 다과와 음료를 가운데 놓고 오픈닝이 시작됐다.
한응전님에 의해 하나하나의 작품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일행의 눈에는 작품이 이루어지기까지 힘들었을 그때그때의 상황들을 이해하고도 남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서울에서의 전시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신토불이 식당 아저씨를 비롯헤서 세탁소, 매점 등 몇몇 동네분들이 참석하니 오픈닝 자리는 한결 자연스럽고 풍성해 보인다.
좀더 적극적인 전시알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속 한켠을 두드린다.
갤러리라는 공간을 통해 지역사람들과 일상의 대화를 넘어서는 진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숙소(태백산 민박촌)로 옮겨 작품발표와 소개 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긋한 연세의 낯선 남자 한분의 정체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함승희 선생남과 함께 제직하는 모교의 체육선생님이고 초기후원멤버인데 여행에 동참하기는 처음이라고... 남녀노소의 골고른 분포와 균형은 한 사회의 구성여건에서 필요한 소통의 폭을 가져다 준다.
이경희 선생님의 강력 추천으로 영상작품 "라제떼"(40분)를 보았다.
이선생님이 사려깊게 준비한 영어자막의 프린트물을 손에 쥐고 서선생님은 타박한다.
한국말로 번역을 해오지 않았다고...
그렇긴 하다.
얼큰하게 달아오른 얼굴 가까이 알파벳활자를 들이대니 순간적으로 목과 대퇴부로 이어지는 근육들이 떤다.
코믹한 내용이면 어쩌나.
적절한 대목에서 먼저 웃어야 할텐데...
웃어제껴야 할 타임을 놓치면 짐짓 웃음소리에 놀라 퍼득 깬 자세를 취해야 하나.
다행히 내용은 인간의 문명에 대한 감독의 예감이 돋보이는 무거운 것이었다.
임홍감독의 영화적 어법에 대한 가시돋친 비판에 이어 약간의 전운이 감돌고 가벼운 활전이 있었다.
장성아, 정혜진님이 도착한 새벽 3시를 20 여분 남기고 모두들 스르르 잠들었다.
4월 21일
이튿날 아침식사 후 석탄박물관을 방문하여 반갑게 맞아주는 정연순님과 김용주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왔다.
곧장 피내골 끄트머리 연화산 자락의 흥복사로 일행들은 이동했다.
절 입구에 빽빽히 들어선 소나무들이 봄인데도 불구하고 소슬바람을 일으키는 듯 하다.
절의 주변을 둘러보는 일행을 주지스님은 반갑게 맞아준다.
어느새 서선생님은 스님이 내어 온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광부들의 위패를(2-300) 모신다는 흥복사는 호황인 시절 탄광사업주의 헌사금과 신도들의 시주금으로 지어졌다 한다)
불혹을 지나 얼마오지 않았다는 산중의 주지스님은 막힌 구석이 없어 보인다.
공양보실님이 급히 지어낸 10여인분의 점심을 모두들 뚝딱 해치우고 절을 나섰다.
일행은 따가운 봄볕에 눈부시어 하면서 피내골을 걸어내려 간다.
차도로는 비좁지만 걷기에 협소하지 않은 길과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집들과 졸졸 흐르는 실개천이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어릴적 향수를 자극한다.
피내골을 벗어나온 일행은 삼삼오오 흩어진다.
한무리는 삼방동 작업실을 살펴본 후 바로 옆 천주교 마당에 펼쳐진 평상에 앉아 오수를 즐기며 건너다 보이는 저탄장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른 한무리는 저탄장 위쪽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무리는 어느새 신토불이 식당에 자리잡고 소주를 벌써 서너병째 비운다.(배석빈 선생과 몇몇분)
오후 한나절이 지나갈 즈음에서 황우철선생과 시인 기원석, 그리고 동양화가이신 또 한분이 한 차량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차량으로는 정승운 선생이 그의 제자(한종대 미술원) 4명과 함께 나타난다.
하루를 더 흥복사에서 묵어가기로 한 한응전선생과 임감독과 나는 이들과 함께 다시 저녁공양을 하러 흥복사로 들어갔다.
예고없이 다시 밥을 10여인분 지어내라 하는데도 공양보살님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주지스님 또한 마찬가지로 공양 후에는 향기로운 차와 더불어 담소하기를 마지 않는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로 몇명은 쓰레기드럼통 주변에 모여 담배불을 반짝이고 있다.
영화이야기가 한창이다.
임감독과 황선생은 서로의 창작시나리오 줄거리를 말하고,
귀기울여 듣고,
가벼운 탄성으로 감탄하면서,
서로를 고무하며,
이내 친해지는가 싶더니 영화만들기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마치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는 짐짓 호들갑(?)에
주위의 담배불들이 덩달아 으쓱거린다.
두대의 차는 갈등 끝에 막걸리에 대한 미련을 접고 깜깜한 한밤중에 서울로 향하고 남은 세사람은 여운을 즐기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렇게 하루밤을 묵고나니
깊숙한 골짜기의 산사는 간밤의 정적을 삼키고 단아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간밤의 음모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새들은 쉴새없이 입방아를 찧고,
잎새들이 아침햇살에 으쓱 어깨짓으로 이슬방울을 털어내자,
주변의 그림자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선다.
매우 인상깊은 흥복사의 아침이었다.
이경희
2001년4월28일- 일년하고 하루
<처음 철암에 갔던 날>
작년 처음 철암에 갔던 날입니다.
일년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린시절 뛰놀던 서울의 어느 뒷골목 같아서 가슴 한켠을 아릿하게 했던 철암천변 모습, 그리고 쓸데없는 감상이나 장치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버티고 서있는 수갱탑, 선탄시설들이 철암의 첫 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일년간 할아텍에서는 비자 프로젝트일 외에 철암역의 역갤러리 개관, 두번의 역갤러리 전시, 두번의 태백석탄박물관에서의 전시. 서울 인사동 보다갤러리에서의 철암 그리기전, 철암그리기 백서발간, 그리고 일곱번의 철암그리기 여행이 있었습니다. 2002, 4, 29
<철암그리기>
화가와 조각가,사진작가, 연극인, 교사 .. 다양한 직업을 가진이들이 모여서 한달에 한번씩 철암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내려 가서 철암을 밟고, 그리고, 기록하고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처음 서먹하고 낯설기만 했던 눈초리들이 반가운 눈웃음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철암 그리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할때는 '그리다'라는 말이 그리다 , 그리워하다, 곧 imagining 이라는 뜻으로서의 그리기라는 의미라고 생각을 했고, 우리생활을 생각하고 이렇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하는 그런 계획이나 방향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로잉의 뜻으로서의 그리기라는 뜻도 있지만 이렇게 우리가 시간을 가지면서 만들어 가는 지역과의 관계나 만남도 중요한 철암그리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5. 01
<공동작업>
작업을 하는 일은 늘 혼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의 양과 비례하는 것이 었는데 일년여를 넘게 매주 한번씩 만나서 함께 일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 만을 살 뿐이지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쌓여 있는 시간의 층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5. 09
작업을 하는 일이 결국은 생활 속에서 이루어 지는 일이고 매일의 삶이 그 재료가 되는 일인데 우리가 하는 공동 작업은 생활 속으로 우리의 생각을 펼쳐서 일상이 바로 작업이 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작업할때는 가질 수 없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간이 주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 작품과의 어떤 절대적인 관계에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점차로 이해하면서 갖게되는 깊이와 폭이 작업과 일상을 더 든든 하게 붙들어 매주는 끈이 되는 것 같습니다. 5.23
<흥복사>
피네골에 있는 흥복사에는 연고자없는 광부들의 넋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부분이 이름도 남기지 않은 젊은 광부들이었다고 합니다. 젊은날 무엇에 쫒기어 이곳 광산까지 오게 됬을까. 만만치 않은 내 삶의 무게에 고개를 똑바로 추켜 세우기도 힘들다고 느껴질때에 이렇게 하릴없이 스러져 갔을 다른 생명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막막해져 왔습니다.
주지스님은 禪氣 가 물씬 풍기는 손선길스님이신데 이곳에 오시자 마자 망자전 부터 정리를 하셨답니다. 처음에 너무 흉흉해서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이곳을 모두 치워내고 정리할때 "휙"하고 무슨 바람 같은 것이 빠져 나갔다던가..
송광사 수련대회를 갔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중이 되었다고 웃으시는 스님은 우리를 처음 보자마자 불러들여 차도 주시고 인도 다녀온 얘기도 해주시고 그리고 밥도 먹여주시고 오면 들렀다 가라는 당부도 하셨습니다. 5.23
<태백석탄박물관>
저는 요즘 정신이나 감정의 물리적인 양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사람이 숨을 거둔 직후의 몸무게와 직전의 몸무게를 비교해서 영혼의 무게가 몇십그램이라고 까지 측정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물리적인 요소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현실적인 자극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처음 석탄박물관엘 가서 진열된 소장품외의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봤을때 테크닉의 조야함이 눈에 먼저 띄었었고 왜 이그림들이 나를 잡아끌고 있는지 궁금해졌더랬습니다. 그밑에 적힌 글들을 보고서야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 그그림들은 말기의 진폐증 환자들을 돌보던 의사가 환자의 마지막순간들을 기록해 놓은 그림이 었습니다. 말을 할려고 하는 의지가 색과 형태를 넘어서 마구뛰쳐나오고 있는 그림들 같다고나 할까요?
어쨎거나 예사 박물관 같지않게 그림들이 진열되어 있는 좀 독특한 박물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29
처음 우리 일행이 석탄박물관을 관람하던날, 서선생님께서 그저 석탄박물관 3층의 학예실을 열고 들어가셔서 그곳 학예실의 정연순학예관님과 말씀을 나누기 시작하셨고 그렇게 석탄 박물관에서의 할아텍전시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몇번의 할아텍 정기전이 있은 후 정연순님은 "난 미술에 대해서는 잘모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뭘 원해서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매일 있는 사람으로 그림이 있으니까 참 좋더라. 그림이 떼어지면 허전할 것 같다" 고 했습니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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