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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6월 (2003. 6. 21 - 6. 22)
 여행 일정
2003. 6. 21 -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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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그리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철암그리기 여행은 매월 3째주 토요일 청량리 역에서 07:40에 모여 08:00발 무궁화호편으로 출발하여 일요일 철암역 17: 31분발 새마을호편으로 돌아옵니다. 출발시간과 장소가 다를 경우 당일 13:00 철암역 앞 신토불이 식당에서 합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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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들어 처음으로 동양화를 전공하신 윤정례선생님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 철암초등교육에서는 한생곤선생님의 '철암그림노트 만들기' 프로그램이 고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됩니다.
* 비디오 설치작가 앤디 탐슨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길거리 세미나가 철암역갤러리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그는 영국 뉴캐슬 대학의 대학원장으로 아셈장학 재단 후원 교환교수(교환교수:한국디지털대학 이경희교수)로 한국에 체류 중입니다. 지난 달에 철암을 방문했었던 그는 동양사상에 심취한 채식주의자이기도 합니다.
1.행사
1) 철암역갤러리 / 윤정례 개인전 2003.6.21 - 7.15
2) 교육: 철암초등학교 1,2,3,4학년 25명 5,6학년 16명을 대상으로 박혜성외 4명의 선생님이 지도
3) 세미나: 비디오 설치작가 앤디 탐슨의 작품세계
2.세부일정
2003. 6. 21
07: 40 - 청량리 2층 대합실 중앙선 개찰구 앞 집결
08: 00 - 12: 30 청량리역 -> 태백역
12: 30 - 13: 00 철암이동
13: 00 - 17: 00 점심 및 철암그리기
17: 00 - 17: 40 윤정례개인전 오픈
17: 40 - 19: 00 Seminor(Video Installation / Andy Thomson)
19: 00 - 20: 00 저녁
20: 00 - 22: 00 작품발표 및 소개
22: 00 - 자유토론
003. 6. 22
08: 00 - 09: 00 아침
09: 00 - 12: 00 절골 답사
12: 00 - 16: 00 점심 및 구와우 그리기
16: 30 상행(태백역 - 청량리역)
참가자
1. 서용선
2. 한응전
3. 정은화
4. 박혜성
5. Andy Thomson
6. 윤정례
7. 류장복
8. 한생곤 외 다수
여행 후기
이신애
여기서 저기까지 (21차 여행 동참기)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집안이 조용한 이유는 밖에 비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환한 햇빛이 들어오던 창도 어둑하고, 시계는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은 떴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햇볕에 긁힌 팔뚝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아! 철암 . 어젯밤 허옇게 절여진 밴댕이처럼 비틀거리며 눈을 반쯤 감고 돌아왔었지.
황량하고, 비정한 석탄 섞인 먼지를 마시며 한 장의 스케치를 남기고 돌아 올거면서 두 번씩이나 신청을 했다가 유월도 다지나갈 무렵에서야 겨우 틈을 내었다.
복잡하게 상념이 엉켜서 돌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일단은 떠나기로 하였다.
요즘 같은 여름에 가장 상쾌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새벽이 아닐까? 버스에는 사람이 드문 드문 앉아있고 그냥 보아도 떠나려는 듯한 내가 운전사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심심해 보이는 운전사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나는 우물우물 태백산에 간다고 하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던 그는 좋으시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했다.
무궁화호로 출발을 하였다. 애당초 새마을로 길을 들여 놓고 이제와 새삼 다리를 굽혀 무궁화호로 가라니.....다리가 불편을 알렸다. 그러나 창밖에 비치는 풍경은 같았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마치 메밀꽃 같았고 모내기를 끝낸 정갈한 논이며 자가웃이나 자란 옥수수 감자 고추가 차창으로 닥아 왔다가는 멀어져가고 있었다. 강원도가 가까워지자 밭에 하얀 감자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편을 알리는 다리를 달래주기 위해 좌석 사이를 왔다 갔다하고, 쓸데없이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기관차와 연결고리를 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좌석 밑으로 다리를 뻗고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기지개를 켰다.
지도상으로 여기서 저기까지 가기위해 기차라는 운송수단을 택했고, 궤도상으로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가고 있는데 나는 못견뎌하고 있었다.
태백에 도착하자 벌써 지치고 힘이 들어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버스시간 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승차장에서 그저 기다리고 ,버스가 오면 타고 안 오면 올 때 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버스는 구불거리는 강원도 길을 뒤가 무거운 뱀처럼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무가 없으면 얼마나 살벌할까? 일순간 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였다. 아마도 나무가 없으면 사람들은 나무를 발명해 낼 것이다. 인류라는 종족과 공존하며 수 억년을 살아오고 있고 아마도 인류보다 더 오래 지구위에서 버틴 나무라는 존재 때문에 인간도 지구에 붙어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조근 조근 말을 잘하는 승은씨와 철암동을 한바퀴 둘러보고 스케치 할 곳을 찾았다.
태양은 구름 뒤에서 열기를 보내고 있는지 콘테를 잡은 손에도 등줄기에도 땀이 흘러 내렸다. 삼방동가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부서져 가는 집과 길을 그렸다. 60년대 미술전람회에서 수없이 보았던 부서져 가는 집 틈에 있는 잡초나 꽃들, 그리고 거기에서 보이는 생활의 흔적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런 것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런 것들만 있었다. 그게 아니면 저탄장 시설이었다.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일행들이 지나갔다. 마을사람들은 말없이 등 뒤에 서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고 갔다. 내가 간 뒤에 아마도 이 사람은 저 집사람에게 말하겠지. 어제 웬 사람이 당신 집을 그려갔어. 아마도 그게 화제꺼리가 되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골목에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60년대 풍경에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된 죽이 흐르듯 느리게 흘러 윤 정례 선생님 개인전 개막시간이 되었다. 작가는 이제 이루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미진함이 교차된 얼굴로 서있었다. 윈도우 갤러리에 걸린 철암사계와 달리 인물들은 어떤 서러움이 느껴졌다. 작가의 눈은 엑스레이보다 강한지도 모른다. 수묵은 서러움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아있던 홈리스 같이 보이는 남자는 할머니 그림에 대해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알콜중독에 암울한 미래에 그 사람에게 이런 행사는 무엇으로 비쳐질까? 나중에 류선생님께 담배값을 빌어갔다고 한다. 그 사람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밋밋한 일상에 그래도 흥미있는 구경거리였을까? 미술이란 사람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밥이나 먹고 해라 하는 중국속담이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어지는 앤디 탐슨 교수님의 작품세계는 놀라운 것이었다. 일전에 선재아트센터에서 빌비올라의 미디어 아트를 보고 참아름답구나 하고 느꼈었는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연대별로 그림을 그려가며 차분히 설명을 하시는데 아마도 저분은 건축쪽의 일을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사전지식은 때로 편견을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는 기차안에서 서선생님과 앤디 교수님은 시종일관 공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 윗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영국식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탓으로 말들은 들렸다 안들렸다 했던 것이다. 거꾸로 투사된 실제 풍경과 비디오로 찍은 바로선 풍경을 보면 어떨까? 철암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오늘 새벽 일어나서 집에서 여기까지 이동한 궤적이 마치 지렁이가 배를 깔고 기는 듯 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앤디 교수님의 공간은 마치 나비처럼 느껴졌다. 벗어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을 저렇게 나마 비틀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밤은 오고 사람들은 태백으로 이동을 했다. 갑자기 이 경희 선생님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태백에 도착한 어설픈 저녁이면 으레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소개하던 사람이 없으니 괜스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웃는다. 열심히 말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그림은 그러하지 않는다.
잠이 들었는데 시끄러운 새소리 때문에 눈보다 귀가 먼저 일어났다.
유월말의 산이란 푸른 나뭇잎 밖에 볼 것이 없어서 산행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일출을 보려는지 깃발을 앞세우고 떠나가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무엇인가?
물어볼 필요 없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것이다. 비가 오면 맞고, 날이 개이면 말리고, 바람이 불면 머리칼을 날리려고 온 것이다. 일부는 천제단 으로 가고 나머지는 흥복사로 갔다. 까마귀가 절 앞 소나무에 앉아서 악악인지 깍깍인지 구별 안가는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공이 꽉 찬 진도개는 배를 바닥에 깔고 해우소 앞을 지키고, 새로온 토끼가 온 경내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다. 목소리가 찌렁찌렁한 주지스님은 이제 임기가 다되어 파푸아뉴기니나 어디로 갈 생각 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다시 만나려고 헤어진답니다. 주지스님....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 뜻을 모르실리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절을 둘러보았다. 목어(木魚)가 없는 절이었다. 할아텍 에서 시간을 내어 깍아 주면 어떨가 생각을 해보았다. 둘러보니 나무가 많았다. 식당과 본전을 이어주는 회랑을 만들려고 소나무를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 절 앞에는 캄프리도 많이 심겨져 있었는데 이제 꽃이 피어 있었다. 제비나비가 이리 저리 날고 있었다. 잡지도 않을 거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잡으려는 시늉을 해보았다. 나비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저 나비도 토끼처럼 내공을 키우려고 절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구와우로 이동하기위해 노란색 버스가 와서 그 안을 들여다보니 재미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접어지는 자전거, 키타, 자명종, 이동 식탁, 캔버스, 굼벵이 같이 생긴 의자 하나, 책, 커피 메이커, 그리고 물감들..... 버스의 주인은 서른 남짓의 꽁지머리 화가였다. 이름도 생경한 생곤 이었다.
마음가는 대로 가겠다고 먹으로 써서 붙여놓고 정착을 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달래는 것일까 날리는 화선지는 주인보다 먼저 바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읽은 헬만 헷세의 단편 ‘크늘프’와 ‘나르치스 운트 골드문트’가 복합되어 생각키워 지는 사람이었다.
구와우에 도착했다.
아홉 마리의 소가 누워있다고 하기에 땅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누가 내 등을 밟는다면 나도 기분이 나쁠 것이므로. 세대의 트랙터가 땅을 갈아엎고 있었다. 20만평의 야생화 단지라니 얼마나 황홀할가 상상을 하면서 길을 따라 올라갔다. 팔이 비명을 지르고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내일 피부과 신세를 질망정 오늘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참을 오르자 오차드 그래스가 곱게 심겨져 있는 곳이 나타났다. 무엇이든 그곳에 있으면 낭만적일 것 같은 장소였다. 그러나 가마솥을 열은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내려오니 차로 배달된 시원한 냉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사나무아래에서 넘나드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새로 생긴 구와우 작업실을 보았다. 그 안에는 소퍼도 있고 앤디 교수님이 낮잠명상에 들어가 계셨다. 녹이 좀 슬긴 했지만 노란색 아크릴 물감으로 할이라고 써있었다. 새로운 작업실이 생긴 것이다. 야생화 단지가 완성되는 날을 언제쯤 일까? 급한 산비탈에 복주머니 난이 마치 튜립처럼 가지런히 심겨져 있었다. 그리고 벌건 땅이 보였다. 저런 경사지의 맨땅은 비가 많이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기 십상이다. 알고 한 것 일가?
그 경사 밑에 할 작업실 컨테이너가 있다.
노란 버스를 타고 태백으로 가서 기차를 탔는데 일행은 모두 흩어져야만 했다. 언젠가처럼 아름 다웠던 일몰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해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몸을 있는대로 비틀면서 여기로 돌아왔다. 찾아가는 미술은 이렇게 힘이 든다. 그러나 그림이란 중독성이 있는 듯 자고 일어나자 다 잊어버리고 다시 다른 저기로 갈 날을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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