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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미 [ E-mail ]
  제 141차 철암 그리기 후기
  

삼방동 집

 

16년만에 집을 구하다

우리가 철암에서 얼마나 떠돌았나? 유랑의 느낌을 접고 드디어 새로운 전환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3년 동안은 떠도는 여행객으로서의 기분보다는 참정권을 드디어 얻은 여성시민이나 흑인 남성 정도의 환희를 과장되게 느껴도 좋다. 중천의 해를 보면서 일어나 늘어지게 하품도 하고 기지개를 켜며 반대편 저탄장의 비애 섞인 애증의 역사가 우습도록 떠오르고 지는 해를 한 장소에서 지루하도록 볼 수 있다.

고개만 돌리면 말이다. 전날 밤 늦게 들어간 여관에서 다음날 12시 퇴실 후 정해진 다음 스케줄 두 세 시간 소화하고 떠나야 하는 마치 패키지 여행의 풀코스 같은 압박을 발로 걷어차 버린 듯 한 자유는 적어도 할아텍 우리 모두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3년 동안은 말이다.

강원 창조 경제 혁신 센터에서 지급된 1000만원의 공사비로 다섯 명의 작가들- 김영민 이경희 이경은 정채희 정하응-이 주축이 되어 철암 삼방12-21번지, 지금은 비어놓은 채로 시설 들어가신 할머니가 쓰던 집수리가 이루어졌다. 한겨울 2주 동안 말이다. 언제나 모범생 같은 동네주민 김 동현씨도 많이 도우셨단다.

 

할머니 계실 적부터 써서 버릴까말까 하다 고치고 닦아서 쓰기로 결정한 냉장고는 아주 잠깐 열어봤을 뿐인데 긴 시간동안 곯은 음식들과 함께 방치됐었던지 대형 쓰레기장 냄새 정도의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정 채희 선생님의 노고로 묵은 때는 완전히 벗었다. 이리 외형상 버젓할 수 있는 냉장고에서 어찌 저리 오래도록 묵은 냄새가 안 날라 갈 수 있지? 사시던 할머니 떠나고 나서 버려지다시피 했을 냉장고 안 음식들이 우리 인생의 노년, 삶의 필요로부터 던져진 인생과 닮았다 느껴진다. 삶의 냄새. 살아온 삶이 피부로부터 냄새를 뿜을 수 있다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난다. 그러니 저 냉장고 탓하지 말고 감사히 잘 쓰자.

배관이 얼을까 싶어 한겨울 주인 없어도 얼지 말라고 졸졸 틀어놓은 수도의 물이 생각지도 않았던 집밖으로 통하는 하수도 배관이 어는 바람에 빠져나가지 못 한 채 얼어버렸다. 바닥을 얼음판으로 만든 화장실도 봄이 되면 제 구실을 찾을 테니 고맙다. 집 한 채가 사시사철 온전히 사람에게 잘 쓰이도록 하기에는 아파트처럼 내 집만 관리하면 되는 도시의 치사한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아직 버겁기만 하다. 거친 자연과 더불어 살 지혜를 아직 얻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서울에서 은둔처를 찾아 내려갈 심 잡고 찾은 곳 치고는 감지덕지하게도 방안에 싱크대도 있고 거실에 책장도 있다. 방안에 전기열선을 깔아 한겨울도 뜨듯하다.

원래 주방과 방으로 옹색하게 나눠져 있던 벽을 트고 공간을 확장하는 중에 있던 벽 안에서 정말이지 필요의 꼬라지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빠진 문 떼기 같은 것이 나왔다 한다. 작가들의 센스는 마치 집의 초상사진마냥 그것을 거실 중간 벽으로 살려놓았다. 낡은 것이 무조건 버려지지 않고 장소의 역사를 상징하고 품위를 얻는 순간이다. 집 내부의 메인 색상인 노랑과 회색은 도시의 모던과 발랄함을 적당히 섞어놓은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다.

우리들의 은둔처임을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고 싶을 만큼 구석구석 손닿은 곳들이 호사스럽게만 느껴진다. 잘 보면 우리는 이미 세상에 우리 집을 드러내었다. 현관 쪽 꺾어진 외벽에 어른손바닥 만한 그림 하나가 있다.

.기호-이경희 작- 오시는 분들 잘 찾아보세요.

철암이 16년 전 그림 기행을 시작할 때와 다르게 요즘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관광버스가 철암역 앞에 몇 대씩 늘어서 역 화장실이 붐비는 광경은 정말이지 처음 본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관광 목적의 개발을 너도나도 하고 있기에 그 트렌드를 태백 철암이라고 비껴갈리 만무하다. 우리들의 집도 지나치는 관광객의 가슴에 와 닿기에 아주 현재진행형적이랄까? 구질구질함을 비껴간 빈티지한 모던? 일단 감사하다. 불평을 가지면 안 된다. 비판의 촉수는 내려놓는다. 그러나 내가 처음 홀로 철암을 찾았을 때 나는 나와 철암을 이어줄 이름을 상처라고 생각했기에 철암이 그 상처의 자리들을 허물고 상품화하려 하는 게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온다. 옛 상처의 기억으로 이어진 나와의 의리 같은 것을 철암이 저버리는 듯해서 잠깐 슬프다.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다시 또 현실의 이름으로 봉합당하는 듯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과 진실 사이에 언제나 사람이 살고 있다.

 

나는 이치에 맞는 게 바른 길이라는 옳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 옳고 그름에 관한 생각을 버리라고 부처는 말하지만 나의 생각은 본래 내 생각이 아니라 내가 따르고 싶은 생각이기에 그 옳음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고집이 있다. 어리석다 해도 아직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치는 때로는 현실을 담지 않고 추상적으로 가로지르는지라 미약하고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을 먼저 담고 있지 않아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를 헤칠 것만 같아 위협적이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삶의 이정표는 그러한 느낌들을 너머서 진리의 방향으로 안내되지 않을까? 진리라는 말자체가 통섭의 시대, 신이 없는 시대에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루하다 느껴진다면 그 진리와 가까운 게 현실의 이치 아닐까?

우리에게 마련된 이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길을 내어주고 자신을 만나라 이르는 걸까?

 

2017121일 철암 역사촌 한양갤러리에서 삼방12-21 집의 개보수를 행한 공간 자료전이 열렸다.

그날은 전국이 전날의 폭설과 기온의 급강하로 차들도 기고 눈은 길가에 수북이 쌓이고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날씨 변덕에 사람들이 우왕좌왕 적응을 못할 때이다. 전 주에 이미 정채희 선생님께서 비음 섞인 목소리로 콧바람 쐬러 오지 그래?” 했 을 때부터 목소리의 신비감과 은근한 카리스마에 이끌려 이것저것 생각 않고 알겠다고 대답해놓은 터였다.

새벽에 일어나 버스가 운행중단 사태만 아니면 가리라 맘먹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누군가에겐 길 떠나는 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내 일을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이라는 막대한 소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제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 나만의 항거 같은. 일산에서 태백 가는 길이 막히지도 않고 버스에 사람들도 많지 않은데다 바깥 풍경이 흰 눈으로 비슷한 톤을 이루니 눈이 편안해지더니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철암에 도착해 집주변 공간 마무리랑 바닥 전기열선이 제대로 겨울나기 괜찮은지도 살필 겸해서 시간 되는 작가 분들은 그 곳에 묵고 계셨다 한다. 날씨에 대한 외지의 떠들썩한 두려움이 전파로도 이곳에는 닿지 않은 모양이다.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하게 전시 준비하시는 모습이다. 실제 철암은 오히려 따뜻했다.

이경희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영상자료와 함께 기억을 담은 집이 다른 주인을 수용하기 위해 변화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서술해 놓은 전시였다. 속옷이 보이는 줄도 모르고 구부려 앉아 일하는 뒷모습, 몽골 원주민 의상 같은 작업복 차림의 함박웃음, 페인트의 유해성보다 그것의 시지각적 흥분에 끌려 섞이는 모습을 셔터로 기록해 놓은 것들 등등. 이보다 더 순진한 시작이 어디 있으랴.

전시 오프닝 때 팥시루떡과 막걸리가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아져서 그 한적한 동네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얼떨결에 기쁘다.

서울로 향하는 길이 안 좋아 서둘러 출발하느라 했건만 5시는 넘기고 있다. 밤안개에 서리 같은 눈이 은은히 내리고 가로등 조명과 섞인 헤드라이트 조명이 주홍빛으로 넓게 깔린 밤길이다. 죽음을 향하는 길이라 해도 이리 몽환적이라면 그 길을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싶을 만큼 오늘 하루 내가 걸은 길은 매혹 그 자체다. 차의 뒷자리 얻어 타고 나는 미치게 즐겼다. 아마도 전시를 책임지고 마무리 하신 선생님들의 마음은 몸의 피로감에 압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시 내내 함께한 사람들

이진아 (작가)-중년의 나이에 머리색이 범상치 않다. 집시의 피가 흐를 듯도 하고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게 생기셨다.

윤영희( 가족상담,치료) -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실 때부터 부드럽고 당당하신게 동네 유지 티가 배어난다. 팥시루떡을 마지막 고물까지 챙기며 오프닝 들르는 사람들을 섭섭지 않게 하신다. 떡이랑 떡하니 자리 잡고서서 전시 진행 도우시는 게 보통 리더십이 아니다.

정연순 (전 자연사 박물관장, 석탄박물관 학예사)-집에서 담그셨다는 술을 가지고 집들이인 줄 알고 전시 오프닝에 오셨다. 집수리가 뭐 별거라고 사람초대까지 하냐는 게 투덜거림을 가장한 애정이다.

한종호(창조 경제 혁신센터장) 이하 직원들- 한 무더기의 잘생긴 사람들이 오길래 관객인줄 알고 설명했더니 알고 보니 직원분들인 것 같다. 나중에 센터장님하고 같이 있는 걸 봤다. 센터장님은 점심시간 식당 상차림 제일 바깥쪽에 자리잡고 앉으시더니 나중에 밥값을 내신다. 호감을 사는 재주가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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