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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철암그리기백서 발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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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2004년의 마지막 철암그리기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이 39차 여행이다. 철암그리기가 시작되어 토요일 아침 청량리 역에서 만나 태백 역에서 내려 철암을 향하는 여행이 만 3년 3개월 동안 단 한번의 지나침도 없이 계속 되어오고 있다. 2001년 처음 철암에 당도했을 때 마주쳤던 저탄장을 덮은 거대한 녹색비닐도 더 이상 재탄산업의 상채기를 덮고 있는 웅변적 진술서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고향 같은 반가운 표징으로 다가온다. 역사앞을 지나며 목례로 인사를 하는 얼굴들도 많이 늘어났다. 혼자서는 이뤄내기 어려운 공동작업의 힘이다.
올해에는 작년에 신청했던 문예 진흥 기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멀리 태백, 철암까지 작가들이 와서 작품을 하고 운반해오고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단한 팜플렛 비용 등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작가의 부담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덟 번의 특강과 일곱 번의 전시가 있었다. 또 철암그리기로부터 비롯된 작가 들의 개인전이 서울, 부산, 철암에서 각각 있었다. 류장복개인전(10월, 철암 역갤러리), 윤정례개인전(서울 갤러리가이아), 서용선(부산 수가화랑)
길거리 특강은 서용선, 배석빈, 이경희 같은 할아텍 참여 작가들이 태백, 철암지역의 환경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다른 지역이나 외국의 사례 등을 비교하고 , 구체적인 환경미술 조형적 제안이나 방향등에 대한 발표를 하였고 독일에서 막 학위논문을 마치고 돌아온 박성국박사는 유럽의 낭만주의 산업풍경화에 대한 특강을 진행해주었다. 또 미디어를 사용하는 박은국작가 김태진작가의 영상작품, 비디오 작품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고 임홍감독의 태백영상기록 상영 등의 특강이 있었다.
5회의 철암 역 갤러리 전시 외에 39차 여행에서는 류장복, 배석빈, 서용선, 이경희- 4인의 태백석탄박물관 기획초대전과 철암 역 갤러리에서 이강우작가의 사진개인전이 있었다. 이번 태백석탄박물관전시에서는 중앙 홀의 양 벽에 7m, 4m 크기의 대형 걸이그림이 두 점 걸리고 조각 작품들도 중앙 홀에 설치되었다. 기존 석탄 박물관 전시의 전시물들의 공간 사이에 얌전히 작품을 갖다 걸던 전시 형태에서 벗어나 석탄박물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석해 내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할아텍의 전시 때마다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태백석탄 박물관의 정연순님은 석탄박물관 건립 이래 크레인이 동원되어 그림이 걸리고 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전시오프닝에서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여 석탄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과 함께 나눴던 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이것과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태백 구와우 자생식물공원의 할아텍작업실 구축과 철암 분들과의 만남 이다. 그동안 여러 번에 걸친 방문과 환경조형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던 구와우에 작업실 겸 숙소가 만들어 졌고, 철암역 갤러리의 전등 교체 문제로 서용선 선생님과 철암 역사에서 만난 김동언님은 당일 고원작목개발연구실도 소개해주시고 다음달 철암 방문 시에 ‘항도체험' 이벤트로 직접 석탄을 캐는 현장까지의 안내를 약속하셨다. 또 자발적으로 철암 살리기 추진위원회의 유재인 위원장과 만나서 할아텍회원의 철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 작업하고 휴식을 할 공간과 작품을 전시할 영구 전시실을 만들자는 의견에 합의를 보았다는 사실을 할아텍 게시판을 통해서 알려주셨다. 이런 일들은 철암그리기가 자생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그 동안의 할아텍의 활동은 사실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정영목 선생님께서 부산 수가화랑에서 있었던 서용선 선생님의 개인전 서문에서 철암그리기를 사유와 치유의 사회학이라고 하는 부명제로 정의하고 허허실(虛虛實) 전법이라고하며 그것이 서구의 사회미술과 다른 점이라고 지적하신 것처럼 할아텍의 그동안의 활동은 의도적, 무의도적으로 꽉짜여진 틀을 지양하고 살아있는 현재의 시간의 간섭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진행되어 왔다. 성급하게 의욕만 가지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이제 구체화되는 모습이 서서히 보여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하는 잠재적 명제를 내세우고 ‘사회적 조각’(Social Work of Sculture)이라는 용어로 예술의 적극적 일상의 관여를 주장했던 요셉 보이스(Joseph Boyce)에게서도 관람자의 역할은 그의 큰 개념의 그림 속에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가 철암그리기를 통해서 일상의 시간과 공간자체를 작업대상으로 삼고 철암주민, 후원인, 참여작가 각자가 능동적인 변화와 창조의 주체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지나친 희망론적 발상일까?
2004, 12, 23,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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