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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선의 “철암 그리기” - 思惟와 治癒의 사회학 -
정 영 목 (서울대 교수)
I. 철암--그 사유의 시공간
철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암이 어딘지,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소외되었던 시공간이었고, 지금도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버려진, 그래서 잊혀질 그런 시공간이 철암이다. 철암은 강원도 오지의 석탄 마을이다. 사북, 고한, 상동, 태백 등과 함께 한때 잘나갔던 석탄 도시였다. 석탄이 석유와 가스 등의 대체 에너지에 밀려나면서 이 지역들은 폐광이 속출하면서 급격히 침체지역으로 전락해 지금에 이르렀다.
폐광지역의 정책문제는 우리의 민주화 과정과 그 궤도를 같이 한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 이 지역은 여느 타 지역보다 더욱 폐쇄, 고립된 공간 속에서 ‘빨갱이’ 논리가 적용, 진행된 곳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사고들, 관과 기업들의 부당한 처사를 당하고도 죽어지내야만 했던 이 지역의 탄광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상식 이하의 아주 척박한 삶을 영유해왔다. 민주정권 이후 그나마 집회, 시위, 규탄대회 등을 통하여 그들의 실상이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기 시작했고, 중앙정부와 민선의 지방자치 행정단위들이 폐광지역의 지원과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으나 그 실태와 양상은 부정적이다. 한 예로, 고한 쪽에 위치한 강원랜드의 카지노 사업이 그것인데,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발상의 개발에 당연히 따라올 부작용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철암은 행정구역상 현재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이다. 같은 폐광의 침체지역이라 하더라도 남북으로 뻗은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사북과 고한은 정선군에 속하고 철암은 태백시에 속해있다. 인접지역이라 하더라도 행정구역이 다르므로 사북, 고한의 운명과 철암의 미래는 다를 것이다. 철암은 태백시의 절대적인 영향권에 속해있다. 탄광도시에서 ‘고원관광문화도시’로의 전환을 꿈꾸는 태백시이므로 철암도 싫으나 좋으나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태백시의 중심권이 황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철암은 그나마 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비켜가거나 소외될 공산이 크다.
철암은 그 유명한 삼표연탄의 강원산업이 철수했으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철암역 저탄장 시설이 아직도 유효한 곳이다. 때문에, 탄광의 생산물과 부산물을 폐광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처리해야 하는 기능으로 을씨년스럽게 남을 확률이 크다. 특히, 현재의 경기침체와 함께 석탄의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므로 철암은 이래저래 태백시 내에서도 최후로 남을 폐광촌일 가능성이 높다.
II. 철암 그리기--그 치유의 사회학
이런 철암을 화가 서용선이 들락거리기 시작한지 어언 3년이 넘었다. 서용선의 이번 개인전은 그 여정의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의 일부분이다. 또한, 명색이 개인전이지만 이 전시는 작가 혼자만의 잔치는 더더욱 아니다. 분명한 목적과 개념을 가지고 그와 함께 철암에 대한 사유의 시공간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의 전시회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 함은 “철암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조형예술작업을 통하여 문화관광 측면의 철암지역의 회생을 도울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기 시작한” <할 아텍(www.halartec.com)>의 후원인들 모두를 지칭한다. 그들은 미술의 기존 개념과 본질을 넘어 치유의 사회학으로서 미술과 사회의 접목을 함께 시도했다. 때문에 이 전시는 서용선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철암 그리기’는 단순한 ‘그림 그리기’와 그 의미와 목적이 다르다. 그것은 “순수 우리말 ‘그리기’의 어원과 역사를 통 털어 내포하는 인간이 활동함으로써 발생하는 형상의 모든 추적을 의미한다.” 따라서 철암 주민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하찮은 대화까지도 그리기에 포함되며, 참가 회원들의 철암에 관한 기억과 회상의 감각, 정서까지도 구체적인 실제의 작품인 것이다.
‘철암 그리기’는 탄광동네의 애환과 풍경을 주제로 작가의 정서와 감각을 표현해내는 그런 ‘그리기’를 뛰어넘고자 한다. 오히려 ‘그리기’라는 수단을 매개로 철암의 주민과 사회에 깊이 침투해 서로 동화하여 사유와 행동, 그리고 실천을 통해 보다 나은 환경과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가자는 적극적이지만 느슨한 민주화의 사회미술운동이다. 그동안 서용선을 비롯한 <할 아텍>의 회원들은 이제 스스럼없이 철암의 주민들과 막걸리를 주고받는 막역한 사이의 동반자 관계로 진입했다. 그들은 철도청과의 계약으로 철암역에 무상의 갤러리를 열어 매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역 앞의 ‘남동다방’을 연 50만원에 접수하여 작업실로 사용하고, 태백시의 구와우(九蝸牛)에도 작업실을 열었다. 치유의 전초기지가 될 이들 공간의 역할이 사뭇 기대되며 필자마저 마음이 뿌듯하다. 아니, 그들의 노력으로 치유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할 아텍>의 조직은 매우 느슨하고, 계획도 별로 없다. 일종의 허허실(虛虛實) 전법이다. 되어가는 대로 계획이 성립되고 그리고 실천한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 이 허허실의 전법이 주민들을 감동시킨 것 같다. 그들은 지금도 매달 세 째 주 토요일 청량리에서 되는대로 만나 철암엘 간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여지는 대로 그들은 간다. 그렇지만, 필자가 무심코 지켜본 그들의 활동은 처음의 마음을 간직한 채 변하지 않고, 서두르거나 티내지 않는 은근과 끈기의 지구력이 있다. 이것이 서구의 ‘사회미술’과 다른 점이다. 또한, 서구와 개념은 비슷하나 자생적이다.
그들의 작품들도 이와 비슷하다. 서용선의 이번 개인전도 그렇다. 3년을 넘게 그가 사유하고 행동하여 실천한 과정상의 모든 것들이 감각과 정서로 얼마만큼 타인에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에서 스스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탄광사회와 그 주변에 얽힌 부조리와 아픔의 시공간을 같이 사유하고, 사회학으로서의 미술이 그들에게 어떤 미래로 다가갈지를 같이 고민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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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4.10.29-11.30
오픈:2004.10.29 5:00pm
장소: 수가화랑
부산 동래구 온천1동 TEL: 051-552-4402
http://www.suk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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