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 게시판 입니다. 철암 프로젝트 관련 글들을 올려 주세요.
※ 철암 프로젝트와 무관한 내용의 글은 관리자에 의하여 자동 삭제됩니다.
※ 철암 관련 작품 이미지는 철암 프로젝트>전시>온라인 전시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철암 게시판에 올려진 작품 이미지는 관리자에 의하여 온라인 전시 게시판으로 옮겨집니다.

  이종미 [ E-mail ]
  철암일기- 기관없는 몸*에 머물다
  
첨부화일1 :
첨부화일 : 철암일기2019. 4.12우리의 아지트.hwp (20480 Bytes) 철암일기2019. 4.12우리의 아지트.hwp (20480 Bytes)

 

     철암일기 - 기관 없는 몸*에 머물다  2019.3.16

 

 

                                                                                 이 종 미

 

 

  습기를 머금은 안개와 어스름한 시간을 통과한 후 맞이하는 어둠과 방향을 정하고 오라지게 쏟아지는 눈보라와 가끔씩 하얀 면천에 퍼지는 오렌지색 잉크 같은 가로등 빛과 눈발이 그어대는 차창의 유리조각 같은 날카로운 금들로 눈을 사르르 떨게 되는 간헐적 경험들을 거친 후 휴양지로도 관광지로도 내게는 그다지, 그렇다고 고향 같은 혹은 꿈에 그리던 등의 표현과는 더욱이 아니기만 한 그 곳 터미널에 닿는다. 대략 일산을 떠난 5시간 후이다. 완전한 유기체를 지향하는 꿈이라고까지는 쓰지 않더라도 일단 향해 떠난 이상 그 곳과 나의 욕망을 이어보는 바탕을 꿈꾸며 꿈같은 하루를 지내고 올 것이라고 억지 글을 맺는다. 앞서 써놓은 몇 문장 안 되는 글에서 도대체 이란 단어가 몇 번째인가? 꿈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든 만약 치매 후에라도 가장 마지막에 지워낼 단어 같다. 그만큼 이유 없이 간절하다. 꿈은 아직까지 내겐 현실과 동떨어진 이분법적 용어기도 하여서 그것은 진실이거나 진리거나 상상이거나 해야 한다.

  분열하여 넓히고 채우곤 해체하고 죽는 마치 체세포 같은 철암 땅의 기운은 이미 내게 유전되었다. 여러 이름으로 자신의 발가벗김을 두려워하며 감춰보지만 시작도 끝도 오직 욕망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무슨 욕망이었나? 묻는다면 간간히 삼방동 철암 숙소를 들렀을지 모를 길고양이 하루를 상상하거나 닭 목을 하루 날 잡아 단칼에 베어내는 것과 같은 아찔한 선택 후에야 겨우 질질 끌려가 영상촬영이란 걸 하고는 몸속 단층이 보여주는 오줌줄기 요실금의 정체를 직면하는 것과도 같이 곧 시시한 것 명료하게 밝혀질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드러나지 않는 답답함 같은 것이다.

   고장 난 듯 돌아가는 삼방동 우리 집은 애초부터 고장 나 보이게 지어진 집이다. 아름다운 아지트에는 배출구가 없다. 웃자고 한소리 하자면 찌꺼기가 없으라고 신으로부터 암묵적으로 계시 받았기에. 하룻밤 배설들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 그러나 배설과 달리 배출하기 위해서는 집을 나서야 하고 동네 이곳저곳 친숙한 눈길 주고받으며 먼 길 접속해야 한다. 도착지는 주로 철암역이다. 우리의 몸과 집은 한 몸인 듯 완벽해지지 못한 채로 배출 욕구를 통제하며 몸을 받아줄 집을 찾아 나선다. 몸은 있되 기관은 멀리 있다. 몸이 기관을 찾아 이동하는 조급한 와중에도 시선 맞은편 저탄장에 저장된 탄들이 말없이 풍경이 되고 조형미를 완성해 가는 미감은 또 어디서 불쑥 솟아오르는가?  

   철암은 무엇 하나 일관되게 규정해 주지 않은 채 오랜 방랑자의 시간을 잡아먹기만 하였으니 놀이동산 귀신의 집과 같이 다녀온 후 정신 못 차리고 혀를 내두르게 되는 일회용 여행지로나 적합한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의 앞뒤 맞지 않게 오고감을 시간 들여 돈 들여 마음 써서 수 년 하였으니 그 곳 무엇에 나는 공감하거나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첫 만남의 순진함으로 나를 동일시하여 찾아간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삼방동 집의 경우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탄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혹적이고 아름다워 나의 한순간 사라짐마저 허용하는 완벽함 그자체로 다가온다. 온전치 않은 집임에도 말이다. 이처럼 한때 나와 동일시한다고 느꼈던 철암 이곳저곳이, 각기 다른 현실의 그물에 얽혀 사랑한다면 적어도 너의 한 뼘이라도 소유하였고 그만큼 내가 어루만지고 놔주지 않을 권리가 있을거라 혼잣말 하는 사이 나의 허락 없이 이미 사라지고 탄생한 흔적들에 대하여 나와 다른 길,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끄덕이기에 그곳의 현실과 나의 동일시는 더 이상 아닐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맞이하는 꾸밈없는 사랑 같은 것으로 과거 마음의 오타를 대신 수정한다.

  직관으로 한마디 더 적어보자면 돌아와 며칠 몸살 앓는 저질 체력에 나름의 강행군임에도 기어이 갈 수 있으면 가는 것은 꿈같은 하루를 경험하는 그 곳의 그 날들이 실제 내가 나를 어김없이 만나곤 했던 날들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삶이란 현실 지향적으로 온전하게 완성되어가야지만 유리하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 수정되고 삭제되고 통제되고 억압되곤 하지만 그런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불완전한 나, 아니 불완전하다는 말조차 필요 없는 또 다른, 마치 아메바 같은- 이런 비유가 인류에 대한 모독일지는 모르겠으나 몸의 역동을 상상으로 표현하자면- 인격 형성 이전, 인간 종과 근원적으로 다른 나를 발견하는 날들이 실제 내가 살아있는 날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는 보편의 인격 개념이 헐거운 오류이거나 내가 느끼는 마음에 내가 속는 것이거나 일 것이다.

  철암의 역사를 보면 이 곳은 권력의 화려함에 따라오는 인과법 같은 재물이 아니라 뭇 인간의 검은 고통의 한 때를 돈으로 치장해 주는 신내림 도사나 할 법 같은 일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키 낮은 자존감의 꾸밈없는 퇴행이나 고통과 남루함과 허전함과 쓸쓸함의 가을 겨울 같은 감정들을 떨구기도 줍기도 하는 원주민과 오고가는 인간들 사이사이. 밟혀가는 그 곳 자연은 모두를 절대적으로 그냥 내버려둔다. 스스로 겪은 역사를 용서하고 다가오는 인간을 마냥 바라보는 듯 한 그것이 미치도록 섹시하다. 어느 순간 나도 넋 놓고 나를 벗고 있다. 푹 안기기 위해. 기쁨 같다.



*기관 없는 신체 (corps sans organs)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토넹 아르또에게서 빌려 온 개념으로 단순한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인간 및 자연의 모든 요소가 지닌 파편들이 조립되는 하나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기관 없는 몸체는 기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관들이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되지 않고 부분 대상 혹은 욕망하는 기계들 자체로 접속될 뿐임을 강조하는 용어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외)

 

 




 

 

[인쇄하기] 2019-04-15 14:33:05

이름 : 비밀번호 :   


     
  





Copyright by HALATE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