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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철암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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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화일1 :
2016년 9월 24일 오후 4시 25분, charcoal on paper, 49.7x34.7cm, 2016-f.jpg (710409 Bytes)



2016924일 오후 425, charcoal on paper, 49.7x34.7cm, 2016

 남쪽을 향해 돌아 섰다. 생각해보니 철암역 앞에 자리했던 신토불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이쪽저쪽을 둘러보던 그때 그 시선이다. 기다란 철암상가건물의 끄트머리를 돌아서면 남동이 시작된다. 조금 내리막으로 휘어지는 이 길이 좋다. 길 위로 거대하게 진한 산이 솟고, 산 위로 손에 잡힐 듯 큰 구름이 넘실댄다. 가느다란 전봇대와 가느다란 가로수가 길가에 도란도란하던 그때와 다르게 기이하게 기다란 가로등이 가로수 없는 길가에 위협적으로 내리박혀 찻길을 오가는 모든 것들을 샅샅이 훑어본다.


 다시, 철암을 그린다.

20019월 처음 철암을 답사했다.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지난 시대의 산업전사가 살아 온 막장인생의 터전을 찾아 막연하게 일말의 부채의식과 연민을 품고 있었다. 막상 마을에 들어서자 코끝이 찡했다. 어릴 적 고향의 냄새가 골목길마다 배어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그곳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오래된 과거가 재생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목을 조이듯 빠르게 새로움을 안기는 대도시의 삶에 몸과 마음이 진즉에 분리되어 온 터라 느닷없는 반가움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한순간의 감정,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뭘까.

 

해서 붓을 들었다. 종이를 펴고 목탄을 들었다.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철암천 위로 흔들거리며 걸려 있는 가느다란 철다리의 가운데쯤에 주저앉아 북쪽을 바라보았다. 옴폭 파인 마을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아늑함이 바닥에 다소곳이 구부린 몸을 덮었다. 보이는 대로 더듬는 시선을 따라 목탄은 쫓아갔다. 몸과 마음이 뒤엉켜 바람과 빛을 좇아 흔들렸다.

 

곰곰 그때를 되짚어본다.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키치문화의 순기능을 가리키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오래된 구두와 같은 폐기물을 다시 문화의 영역으로 되돌릴 것을 제안한다. 오래된 것들은 기억이 저장된 두꺼운 피부로 감싸여 있다. 이미 한번 기억 속에 녹아들었던 그것들을 다시 받아들이기는 쉽다. 자연을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자연을 문화의 영역으로 끝없이 편입시키면서 언젠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연에 대한 저항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만큼 자연환경도 오염되었다. 쌓이는 폐기물이 문제라면 자연에 순응시키든가 다시 문화로 되돌려야 한다.

 

철암이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아직 멀다. 철암 개발이 철암의 외관을 바꾸는 건 아니다. 철암이 보존되어야 한다면 철암이 품고 있는 기억을 보존해야 하며 무엇보다 철암의 물리적인 오래된 피부를 훼손시키지 않아야 한다.

보존의 방법이 또 다른 개발이라면 기존의 개발과 다를 게 없다. 폐기물이 다시 문화의 영역으로 온전히 되돌려지지 않는다면 겉만 달라진 또 다른 폐기물에 불과하다. 망가진 인형을 수리하여 쓰다가 결국 버리는 것처럼 수명을 조금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의 손 떼가 묻은 오래된 인형은 간직할 만하다. 오래된 인형은 오래된 그대로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다시, 철암을 그린다. 기억되는 철암이 다시 문화의 영역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철암을 그린다. 연탄시대를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철암은 어느 환경운동가의 책제목처럼 나에게 오래된 미래. 그 미래는 이미 있었던 과거로부터 도래하는 미래다. 지금 여기 몸과 마음이 한데 엉켜 굴러가는 그 곳마다 나타나는 가까운 미래다. 밤하늘의 북극성을 향해 가지만 북극성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더 가까운 미래가 덜 가까운 미래를 낳듯이 도래하는 미래는 그저 이어진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기쁨으로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다.

2016 9.27


[인쇄하기] 2016-09-28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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