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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장복
  철암을 감각하고, 기억한다.-덧붙임
  http://ryubox.blog.me/

철암을 감각하고, 기억한다.
철암에 선다. 철암 냄새가 맡아진다. 후각은 오래된 기억을 불러온다. 열려진 감각을 타고 들어온 철암이 오래된 기억을 자극한다. 그 기억은 다시 철암과 겹쳐진다. 철암을 응시한다. 대도시의 휘황한 불빛 뒤로 물러난 철암의 쇠잔한 모습에서 불현듯 사라짐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연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철암은 마음의 고향이다. 압축적으로 진행된 근대화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유년시절이 거기 있다.

감각은 다른 감각을 자극하고, 기억은 다른 기억을 불러온다.
철암에서 그림을 그린다. 감각을 타고 들어온 철암의 질감은 다시 손끝의 감각을 타고 철암그림이 된다. 감각은 철암의 표면과 마주쳐 그림이 되고, 그림은 철암의 한 조각으로 철암에 더해진다. 철암그림은 철암을 닮아 철암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형제적 닮은꼴로 생겨난 철암그림은 곧 철암이다. 철암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철암그리기를 목격하고 철암갤러리에서 철암그림을 감상한다. 철암그리기와 철암그림은 이제 철암의 실제가 된다. 철암을 경험하며 철암의 기억이 쌓인다. 신체에 각인되어 있던 또 다른 기억들이 부스스 일어나 철암에 중첩된다. 꿰어진 기억들이 철암을 재생한다.

감각된 철암을 기억하고, 기억된 철암을 감각한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모든 것이고, 인공은 자연에 가해진 사람의 흔적으로 남는다. 자연 철암은 현재의 모습으로 스스로 그러하고, 까만 철암에 근대화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감각은 지금 작동하는 몸이고 기억은 타자의 흔적이다. 지금 여기 감각되는 자연 철암은 먼 기억 속에 각인된 까만 철암의 흔적과 부단하게 부딪치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철암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감각을 모두 기억으로 환원하거나, 기억을 배제하는 감각은 사물의 반쪽을 비출 뿐이다. 감각된 철암이 시간이 지나 기억되고, 기억된 철암이 불현듯 감각된다. 기억과 감각 사이에서 우리는 감각을 기억하고 기억을 감각한다. 곧 감각기억이고 기억감각이다. 가령 철암사생그림은 매번 처음처럼 철암을 낯설게,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철암기억그림은 기억과 기억을 넘나들며 철암을 재구성한다. 그런데 이야기와 더불어 실감 또한 우리는 기억한다. 그때 그 생생함을 기억할 때 '감각기억'이 일어나고, 기억된 사건을 현재의 감각수준으로 불러와 재생시킬 때 '기억감각'이 작동한다.

감각되는 철암과 기억되는 철암은 철암을 입체적으로 재생한다.
감각되는 철암이 표면이라면 기억되는 철암은 단면이다. 수평적 표면과 수직적 단면은 입체적인 철암의 서로 다른 층위를 이룬다. '철암그리기'가 감각의 끄트머리에서 생겨나고, '철암만들기'가 기억 속에서 그려진다면 철암그리기와 철암만들기는 표면과 단면처럼 다른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이다. 철암그리기가 넘실대는 바다라면 철암만들기는 바다 가운데 솟아나는 섬과 같다. 그렇듯이 새로운 철암은 온도와 습도가 알맞을 때 우연을 가장하여 그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2011.7.30 02:14 륮.


철암은 생물체다. 철암이라는 생체는 구름처럼 유영한다. 철암 표면의 한 꼭지가 튀어나오면 그곳이 머리가 되어 움직인다. 생물체 철암은 해저의 물고기 떼처럼 어슬렁거린다. 살아 사는 그 자체의 삶이다.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철새와 다르게 그저 부단히 움직여 산다. 고이면 썩기 때문이다. 자연의 철암은 지금을 살아 산다. 이 꼴 저 꼴로 살아 산다. 빠른 유속을 만나 기다란 철암이 되고 느린 유속을 만나 둥근 철암이 된다. 철암은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변신한다. 작고 큰 변화가 철암의 시시각각에 있다.

철암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연탄에너지 시대를 지나 바람 빠진 철암에 바깥공기가 필요하다. 쭈글쭈글한 철암을 밖에서 끌기보다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철암의 볼륨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큰 파도를 만나 추락하는 철암을 잡아채거나 떠받치는 건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다. 집적거림이나 기웃거림과 다를 바 없다. 이방인의 소란스러움이 철암을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철암 안에서 함께 살아 사는 놀이를 찾아 놀아야겠다. 놀이터가 필요하다. 골뱅이 갤러리는 좋은 놀이터다.

장자가 말하듯이,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끔찍이 사랑하여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지만 삼일 만에 새장에서 싸늘한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비극적인 사랑은 바닷새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좋아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다. 진정성과 무관하게 지금, 철암을 사랑하는 데에 어떤 불협화음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공유하는 기억이 짧은 데에서 원인의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방인의 한계가 분명하다 하더라도 철암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쌓아가는 일이 사실 무엇보다 소중하다. 10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08회의 철암그리기가 이루어졌고, 새로이 골뱅이 갤러리가 마을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첫 전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환기시키는 무엇이 있다. 원초적인 그리움 같은 무언가가 가슴 한구석에 차오른다. 2011.8.5 10:43 륮.



[인쇄하기] 2011-07-30 13: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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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철암 사랑법에 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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