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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장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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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interview magazine 깃
발행일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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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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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interview magazine 깃 인터뷰 (p.10-39)

선생님이 내신 책(철암에서 그리고 쓰다, 한남동 사람들)을 읽다보면 수첩을 늘 들고 다니시는 모습이 상상되는데요.


- 수첩일기 같은 거예요. 사생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니까 그림을 그리다가 날짜, 시간, 장소를 적어두기도 하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놓기도 하지만 거의 외마디에 가까울 때도 많아요. 문장이 온전하지도 않고, 그저 기호 같은 것으로도 표시되기도 하구요. 나중에 그 사이를 채워 컴퓨터로 옮기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이미지가 생성된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글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림에서 생략되었던 것들이 글로 다시 살아나기도 해요. 그래서 저의 글과 그림이 공명될 수 있었으면 해요.


요즘 작가들이 책을 많이 출간하시는데요. 수필도 아니고 미술이론서적도 아닌 묘한 경계를 가지고 책이 나와요. 그런 분들은 개념을 가지고 작업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떻게 보면 그런 작업에서 책이라는 형태가 결과물로서 어울리기도 해요.


- 저는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개념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서 그림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반대로 그림 자체가 목적일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생각해요. 저의 글쓰기도 그래서 그림의 연장선상에서 따라오는, 그림이라는 몸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철암 사생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로 그렸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태백의 철암을 다녀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생을 하게 되었죠. 탄광촌 철암 전체를 하나의 빌리지움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진 몇몇 젊은 건축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소개로 화가 서용선을 비롯한 몇몇이 함께 답사를 갔었어요. 탄광촌이라고 하는 곳이 압축성장의 근대화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열한 삶의 무게감이 있는 곳이잖아요? 소위 지식인에게 일말에 부채의식을 느끼게 하는 곳이죠.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고향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실향민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받았을 법한 느낌이랄까요? 마음 안쪽에서 오는 환한 느낌, 폭 안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합천에서 태어나서 다섯 살 때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에서 제가 살던 곳은 미아리, 길음동…… 서울의 변두리 동네였어요. 그런데 거기 제가 어렸을 때 놀던 골목이 고스란히 거기 있더라구요. 실실 흐르는 개천, 가파른 비탈길,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잣집, 손바닥만 한 마당에 널린 빨래들, 특히 집집마다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연탄재…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탄광촌 철암 마을을 그리게 되었어요. 스러져가는 폐광촌을 기념비적으로 기록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사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 말하자면 관념이죠. 저는 그보다는 고향에 대한 후각적 기억 - 보통 후각에 대한 기억들이 강열하잖아요. - 그런 후각적 기억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찾아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철암에서 그리신 그림들을 보면 주로 목탄을 쓰셨던데요.


- 제일 간단한 재료가 종이와 목탄이잖아요. 특히 목탄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재료인 것 같아요. 실제로도 철암은 새까매서 별로 색깔도 없어요. 그래서 목탄을 주로 쓰게 되었어요.


선생님만의 특별한 그리기 방식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흔히 이젤에 그림을 벽처럼 세워 놓고 이미 세워놓은 관념에 그림을 맞춰내는 게 아니라 고향의 느낌에 푹 젖어서 그리다 보니까 대상을 비교해서 측정을 한다든지 하는 거리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땅바닥에 놓고 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순간적으로 찍어 낸 사물의 이미지가 몸에 실려 손끝으로 내려놓이게 되죠. 또 목탄을 끌어당겨 긋는 설명적인 선묘보다는 감성의 일획으로 내치게 되면서 점에서 선 사이를 오가는, 말하자면 찍듯이 긋는 함축적인 이미지의 선묘가 되죠. 10월에 처음 그곳에 갔었는데 10월이 지나 11월, 12월쯤 되면서 추위 때문에 차분히 대상의 이미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이성이 개입하여 억제하고 절제해야 하는데 추워서 도저히 그렇게 그릴 수 없었죠. 그래서 원심적으로 뭔가를 내뱉듯이 야생적인 힘 위주의 그림이 그려졌어요. 미처 관념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대상과 내가 딱 붙어서 표현되는 어떤 이미지가 된 셈이죠. 이런 작법을 제가 처음부터 고안한 것이 아니라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겁니다.


철암에 한번 가시면 얼마나 계시나요?


- 정기적으로 매월 셋째 주에 철암그리기가 1박 2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참에 내려가서 일주일, 열흘씩 있다 오기를 여러 차례 했죠. 그 때가 좋았죠. 지금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가셔서 그리시는 양이 어느 정도 되나요?


- 56x76(cm) 크기의 목탄화 다섯 장을 하루 종일 그린 적도 있습니다. 정말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다방이었던 2층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 연탄난로가 벌겋게 타오르는 가운데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까만 철암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 장면을 마치 중계하듯이 그림을 그렸더랬죠. 해말간 막걸리와 노가리 안주도 있었어요.


풍경을 그리실 때 나름의 그리기 좋은 위치도 선정하실 듯 한데요.


- 위치를 정한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 광경을 정해 놓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어요. 여기쯤에 이것이 저기쯤에 저것을 배치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림으로 확인하는 거예요. 그래서 흔히 꼭대기로 올라가요. 한눈에 다 보려고 그렇게 하죠. 전체를 포획하려는 시선이 작동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한 자리에서 사방팔방을 그려요. 한군데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리다보면 거기 그 장소에 특징이 될 만한 선탄장 같은 기념비적인 건물이 담기기도 하는 것이지, 하나의 프레임을 정해서 사물을 그림에 들여오지는 않아요. 따라서 그림을 그릴 때도 전체의 윤곽을 잡고 안을 채워 들어가지 않고 안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죠. 안쪽 한 점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곳이 곧 사물의 경계가 되는 것이에요. 그려나가다 종이가 끝나는 것이지 정해진 종이 안에 사물이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다보면 종종 종이를 잇대서 그리게 되요.

제 눈이 주로 가 닿은 곳은 철암이라는 마을의 질감이었어요. 말하자면 촉각적 시각, 후각적 시각 같은 거죠. 사물이 가지고 있는 질감의 차이가 있잖아요. 질감을 좀 다르게 가면 산이 되었다가 건물이 되었다가 그러는 것이죠. 자연과 인간이 마주한 겹겹의 세월이 거대한 벽의 질감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어요. 후각을 자극하는 삶의 흔적 같은 겁니다.


그릴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감각은 무엇입니까?


- 육안, 맨눈이죠.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된 기억과 연결되어 사물을 설명하는 식의 그리기가 아니라, 시각이 기억과 연결되기 전 ‘잔상’에 머문 상태에서 손끝으로 흘러나오는 이미지를 그린다고 볼 수 있어요. 화가의 몸이 직접적으로 붓 끝에 묻어나게 돼요.


선입견 때문에 머릿속 기억과 연결되기 전 단계에 머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 어렵죠. 그래서 춥거나 눈비 올 때가 유리합니다. 생생하죠. 물리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이 상식적인 고정관념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거나 생각하는 머뭇거림을 허용하지 않는 거죠.


동양화에서는 하나의 물고기를 그린다고 했을 때 이미 물고기를 그리는 방식이 있어서 물고기를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물고기를 화면에 펼치잖아요? 그것은 매를 그릴 때도 그렇고 사군자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구요. 나무를 그릴 때도 이미 나무의 가지가 자라서 뻗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체득해서 실제로 그릴 때는 보지 않고 자기가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는 거죠. 그런 부분은 서양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부분과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 동양화에서 사물을 떠올려서 그것을 그린다고 할 때 그것은 외워서 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그것이 되어서 그것이 되는 대로 그려내는 거죠. 만약 물고기를 그린다면 내 마음속에 온전하게 들어차 있는 물고기가 되어, 되는대로 그리는 거죠. 이때 물고기는 그릴 때마다 같지 않아요. 전통적인 서양의 화법에서 물고기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같을 수 있어요.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의 창조에 얼마나 더 가까이 다가갔느냐는 수직적인 차이가 서양의 모방이라면 동양의 전통화법에서는 수평적인 형제적 닮은꼴과 같은 다양한 차이를 허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마음속에 있는 한결같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지만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이 그런 것처럼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은 매번 조금씩 다른 것이거든요.

진짜 같은 그림과 실감나는 그림의 차이지요. 저는 작금에 회화의 존재방식에 대한 하나의 안으로 ‘실감나는’ 이미지로서 회화가 추구해야 할 태도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서양미술사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원근법의 회화체계가 다름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해내는 능력이었잖아요? 신의 창조 과정을 닮은 세계의 재현 능력으로 미술가들의 권위가 유지될 수 있었는데 결국 사진기가 등장함에 따라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게 되었죠. 과학적 무결함은 신의 완벽함과 닮는 것이고 그런 과학의 기계적인 실천이 사진기인 거죠. 사진 이후의 회화는 궁극에 스스로를 소멸해갔다고 생각해요.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의 회화를 비롯해서 현대회화의 개념의존적인 태도는 회화의 모험이 더 이상 할 필요 없는 지경을 초래했죠. 총체적인 구상의 이미지가 분석적인 추상의 이미지로 대체되는 과정 끝에 도달하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겠어요? 그런 점에서 영상미술은 세계에 대한 회화의 재현능력을 회복하는 적절한 매체라고 판단됩니다. 회화 내적으로 실감나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회화공간의 질서를 갖춘다면 또 하나의 적절한 대안이 되리라고 판단됩니다. 그 가능성을 빈 공간이 아니라 빛으로 충만한 여백의 공간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회화 이후에 나타난 사진 이미지를 회화가 쫒는 태도가 전략적으로 의도된 것이라 해도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해요. 추상형식의 모던회화 이후에 구상회화가 다시 등장하는 최근 경향이 있는데 그 가운데 사진 이미지를 복사하는 기법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의 회화가 꽤 많다고 여겨집니다. 거기에는 주제와 기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때문이 않을까 추측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회화의 기법은 이미 주제를 제한하거든요. 말하자면 원근법이나 명암법 이런 것들이 이미 제한하고 있는 재현된 이미지의 범주적 한계가 있는 거죠. 기법은 조형의 원리로부터 나오고 원리는 관점을 수반하고 관점은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세계관이며 그것은 하나의 가치관입니다. 기법은 곧 가치관인 거죠.

저는 수단과 목적이 따로 분리되는, 개념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서 회화에 정면으로 거슬러 그 자체가 자연으로 간주되는 회화, 스스로의 몸을 지니는 회화를 추구합니다. 개념을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에서 여러 가지 해석, 개념이 일어나는 거죠.


그런 태도로 한 작업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 저는 개념 의존적이든 감각 의존적이든 실제 작업은 몸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의식이 미처 개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가장 좋은 이미지에 다다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실제 그림 그릴 때 이것저것 따져서 그리지 않아요. 이것저것 따지면 그려지지가 않아요. 뭔가 마비된 몰입상태라야만 해요. 어떤 의식이 끼어든다는 건 애초의 계획이 잘못되어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지요. 사생인 경우에 특히 그렇다는 겁니다.

그림이 끝나면 작업실에서 다시 펼쳐 봐요. 그때 비평적 거리가 생깁니다. 나의 소유물로서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나라는 자연과 철암이라는 자연이 만나서 생겨난 또 다른 자연, 그러니까 그림의 자연을 멀거니 봅니다. 그림을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고 보는 거예요. 그림 자체를 하나의 자연으로 간주한다면 그림을 그릴 때 내가 관여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자라날지 모른다는 겁니다. 결과를 정해 놓고 그리는 게 아니니까요.


철암에 가시기 전에 작업 경향은 어떠셨나요?


- 엄청 헤맸죠. 너무 엉성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민중미술과 모더니즘 회화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고민을 했었죠. 그런데 마땅치가 않았어요. 민중미술에 체감적인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림을 이념적으로 수단화한다는 점이 탐탁하지 않았어요. 또 모더니즘의 특성상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는 곧 지금 모든 것을 다 낡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거지요. 계속 앞으로만 가면서 현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그런 모습들이 저에게는 어지럽기만 했어요.

둘 다 회화의 수단적 기능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죠. 민중미술은 이념적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회화의 주제적 범주 속에 갇혀 있었고, 모더니즘도 결국 이것이 새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품이기는 마찬가지죠, 그렇잖아요? 그림이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권력적인 권위를 갖게 되고 그에 따라서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거죠. 회화의 모험이기에 앞서 생활의 모험이 된다면 일종의 도박이 되는 거죠.

어디에도 거처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런 와중에 우연히 철암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아무런 생각이라도 멈춘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생각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몸으로 저질러지는 그림 그리기가 가능했다는 거지요. 당시의 저로서는 돌파구였죠.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그림이 먼저인거예요. 그리고 난 다음에 생각하는 것이죠. 전에는 그리기 전에 생각했어요, 뭘 그릴까 하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마음이 확, 가는 것을 그리면 되는 거더라고요. 철암 가기 전과 후가 그렇게 달라졌던 것 같아요.


작품 크기에 대한 욕심은 없으셨어요?


- 철암가기 전에는 작품을 엄청 크게 했죠. 수동적인 숭고미라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색면 추상의 무한한 크기와 비슷하죠. 그땐 그게 또 유행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물리적인 그림의 크기와 회화공간의 스케일은 다른데 말이에요.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계신데요. 요즘에 작업하시는 책이 있습니까?


- 두 권을 준비하고 있는데 가제로 ‘회화의 몸’과 '그리면서 배우는 서양미술사'에요. 하나는 회화공간의 새로운 질서를 그린 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배경이 되는 미술사적 회화공간의 변천을 다룬 거예요. 책을 준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그림의 정체성, 곧 나의 역사적 정체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고 응답이에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죠. 허구한 세월이 억울해서 책으로 정리해봤어요.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걸까 아는 대로 그리는 걸까? 왜 여전히 그림인가? 실감나는 그림과 진짜 같은 그림은 어떻게 다를까? 새로운 그림은 좋은 그림인가? 그림은 어떻게 생각을 낳는가? 좋은 그림에 법칙이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응답이에요. 화가의 체험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그림 실제에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얘기가 진행되죠.


선생님의 작업하시는 태도는 스스로 질문을 계속 던져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 같습니다.


-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과 응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가는 미술을 수단으로 진리를 추구합니다. 진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술이죠. 진리로 설득 되어야만 가치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물질적으로 아주 성의 없이 찍-(?) 그려놓았는데도 작품가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것의 진리적 가치를 설명하려고 계속 얘기를 합니다. 미술가가 직접 말하든 평론가를 동원해서 말하든지 간에 이것이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지를 얘기해야하죠. 그 진리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거지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창백한 개념주의'에 불과할 겁니다.

그에 비해 화가는 그림 그리기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림이 생활의 수단인거죠. 시대적으로 볼 때 진리를 말하는 미술가는 몇 명 없어요.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가의 바람직한 상을 똑바로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그림 그리기가 생활이 되려면 그림이 돈이 돼야 하잖아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사줘야 해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동네사람' ‘마을사람’이죠. 그러려면 마을사람이 좋아하는 그림을 화가는 그려야 해요. 마을사람이 좋아하는 그림은 어떤 것일까요? 마을사람 중에 돈 많은 한 사람의 미적 취향에 부합하는 그림인가요? 물론 그런 그림도 생활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보다 화가는 마을사람의 개별적인 미적취향을 넘어서는 가치지향점을 향해 있어야 해요. 꽤 많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좋다니까 좋아하는, 다시 말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데 길들여져 있지요.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도 사실 어렵습니다. 그건 의식의 표면 아래 훨씬 더 근원적인 심층에 닿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내가 뭘 좋아하는 지가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궁리해야 해요. 그것이 보편적인 가치일 수 있어요. 화가의 은밀한 내면은 본디 주름진 외면인거죠. 사람들이 그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야 그림을 사고 팔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말씀드리는 마을화가란 이런 거예요. 마을에 의사도 있어야 하고 음악가도 있어야하고, 다 골고루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 마을을 이룰 수 있잖아요. 마을에 당연히 화가도 있어야 하죠. 그런데 우리에게 마을화가가 있나요? 만약 마을화가가 생긴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거예요.

조금 다른 애기 같지만 새로운 그림보다 좋은 그림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좋은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죠. 좋은 그림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저는 생각해요. 새로운 그림일수록 좋은 그림이어야 호소력을 가질 수 있거든요. 조악하면 새롭더라도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죠. 제가 좋은 그림을 주장하지만 좋은 그림 타령이 지루하기만 해서 파괴력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자극적인 새로움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좋은 그림을 잘 몰라주는 경우가 많죠. 그런 반면 새로운 그림을 추구하는 경우에 개념주의적인 자폐성에 사로잡힐 수 있어요. 스스로 정한 개념적 범주의 깜깜한 구석에 처박히는 태도죠. 그러니까 세상의 단면을 잘라내는 개념적인 전략으로 새로움의 미학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고 자기만의 방에서 암호처럼 중얼거리는 거예요. 자폐적인 동어반복이죠.

저는 화가와 미술가 사이에서 나를 고민합니다. 화가의 눈으로 사물과 낯설게 마주쳐 능동적인 감각으로 숭고미를 좇고, 미술가의 태도로 먼 기억을 현재의 수준으로 끄집어내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주로 풍경화를 그리세요? 책에 보니까 인물화도 등장하던데요.


- 저는 사람을 풍경으로 봅니다. 풍경을 그릴 때 사람들이 거리에 얼쩡거릴 때가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눈에 띄어요. 걷는 모양새나 차림새 따위를 유심히 보게 되죠. 풍경화의 표면으로 어떤 질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사람의 흔적이겠죠. 거기서 산 사람들의 흔적이 표면질감의 더께를 만들었을 거잖아요. 미시적인 풍경의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흔적으로 드러나는 살갗의 표면을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상상을 해보죠. 그래서 사람을 그릴 때도 사생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윤곽을 정해놓지 않고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번져 나오듯 그려요.


한남동에서 하신 작업에는 인물화가 많이 보입니다.


- 네. 한남동 사생을 하면서 인물화를 병행 했죠. '너 그리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 번에 3시간 정도를 그려요. 일단 모델에게는 처음에 가만히 있으라고 해요. 침묵의 시간을 갖는 거지요. '죽은 듯 살아있기'죠. 자면 안 되는 거죠. 죽은 듯이 살아있어야 하니까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움직이는 동물을 정지시켜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겁니다. 살아있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 낼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해보니까 딱 40분이 한계에요. 40분을 넘어가면 대개 무너집니다. 그러면 그에게 말을 건넵니다. 말을 하게 하는 거죠. 대화는 언제나 언제 가장 슬펐는지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먼 기억 속으로 돌아가 뭔가를 끄집어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런 얘기가 그 사람의 존재론적 맥락을 드러내 줍니다. 어쨌든 풍경의 연장선에서 인물을 바라본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작업하시는 곳은 어디신가요?


- ‘성미산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작업하려고 해요. 서교동 맞은편 성미산 자락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 사람들이 생활협동조합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해마다 마을 축제도 하고, 마을극장도 만들어서 연극도 하고… 10년이 넘었을 거예요. 동생이 그 마을에 살고 있어 소식을 계속 듣고 있던 차에 마을극장 개관 프로그램으로 '너 그리기'를 해 본 적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모델로 선정하여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대화를 하며 인물화를 그리는 거였죠. 그게 계기가 되었어요. 거기 사는 사람들을 '너 그리기' 방식으로 그려 보려고 해요. 인물화를 그리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거지요. 언제나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는?


- 누구든지 좋아서 그림을 시작했을 거예요. 그러나 실제로 현실과 부딪혀 보면 난감하지요. 저를 돌아봐도 그렇고 후배나 제자들을 봐도 그래요. 4학년 학생을 가르칠 때였어요. 그림 그릴 때 아르바이트 걱정하고 아르바이트 하고 있을 때 그림 걱정을 해요. 어떻겠어요? 둘 다 잘 못하겠지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언제나 이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기가 일쑤예요. 그림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수단과 목적이 다른 거죠. 수단과 목적이 다르면 다를수록 그것은 노동에 가깝지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화하는 거니까요. 거기에 과정은 어때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나오기 마련이죠. 과정 그 자체가 진짜 현실인데도 말이죠.

[출처]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깃, 인터뷰rhkdvk작성자 류장복


[인쇄하기] 2011-07-27 14: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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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복 아, 맞아요. 경기도 산중의 미술관에 스스로 갇혀 잘 지내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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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이제서 읽어보네요. 올초에 닻프레스 김용민 기획자랑 함께 런던 연수 갔었는데.. 그분이 취재한 거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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