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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선
  철암치경-수정
  

철암치경
2011.7.25
서용선

1976년 12월 이었을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 날 함박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연탄불 꺼져가는 을씨년스러운 보문동 화실을 벗어나 내키지 않는 발길을 성북동으로 옮겼다.
레포트 한 장을 써 들고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을 들어 섰다.
입구의 운치있는 소나무들 위로 함박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미국에 수출하는 가방에 그림을 그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1년 내내 시간을 허비하고
모든 일이 엉망으로 끝나던 년 말이었다.
이태원에서 수퍼마켓하던 친구의 형이 실제로 미국백화점에 가방을 수출하는 소규모 무역을하고 있었다. 그림 샘플을 보내고, 그쪽의 요구사항이 오고, 처음으로 들어 가본서울의 한 호텔방에서 미국에서 온 한국인 업체사장도 만나보고, 샘플을 그리는 물감 값도 조금 받고......
그쪽에서 OK사인도 받고,
1년이 빠르게 흘러 갔다.
계산대로라면 2년 정도의 등록금이 생길 수 있었다.
학교에 나갈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일은 어떤 메리야스 제조업체로 넘어 갔다.
아마도 학생신분인 내 환경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학교 성적이 안 나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렵게 들어 간 미술대학 학생의 직관으로, 실기 성적은 F를 잘 안준다는 느낌은 갖고 있었으나 이론과목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에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님은 내가 다니던 대학에 시간강사로 동양미술사를 가르키고 있었다. 수업은 두 세 번 들어갔었던 것 같다.
벨을 누르자 오래된 미술관의 철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사립 미술관 이었다. 눈오는 날, 제출기간이 지나간 레포트를 들고 찾아 온 학생을 담담히 맞아 주었다.
수업에 들어가지 못한 간단한 사연과 얘기를 나눈 후, 오히려 그분은 학업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극복해야한다는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미 정해진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마지막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으로 언덕길을 내려왔다.
눈 덮인 겨울 날이었다.
나중에 보니 2학년 2학기 전체평점은 학사경고 1.7을 가까스로 넘긴 1.71이었다.
이후 몇 번의 수업이외의 자리에서 조선 사대부 문인들의 정치세력과 진경산수 그리고 조경과 치경에 대한 그분의 생각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나는 수묵산수화보다 조선문인정치가들의 명멸에 더욱 재미를 느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간송문화'를 매년 열심히 얻어 읽었다.

철암그리기를 시작한 후 몇 년 뒤의 일이다.
철암의 한 탄광을, 한보광업소(?) 직원 안내로 지하 600m인가 까지 답사한 후 그 곳 숙소에서 하루를 자고 나니 태백산간지역 전체가
눈으로 덥혀 장관을 이루었다.
차는 아예 눈속에 묻혀 꺼낼 엄두도 못낼 지경이다.
우리는 차를 눈속에 남겨둔 채 서울로 탈출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덮어버린 흰 눈으로 부터의 통쾌한 탈출이었다.
나는 그때, 그해 간송미술관의 소나무에 쌓인 눈을 떠올리었다.
우리의 기억은 수십 년을 가로 질러 그 눈 내린 경치와 함께 신체의 경험을 되살린다.
내게 철암의 흰 눈은 대학시절 아니, 재수하던 그 불안한 청년기 전체의 겨울 날들,쉐타속으로 스며드는 찬 바람의 겨울날씨에 대한, 신체의 기억과 닿아 있다.
그것은 황폐해진 탄광잔해들과 헐어져가는 상가건물들, 무엇보다 6,70년대를 가로 질렀던 간판의 글귀들,미용소 광고그림, 건물의 형태들이 더욱 그것을 부축이었다.
이후 눈 덮인 철암을 마주할 때면 불안과 기대에 진저리쳐대던 젊음의 통증이 내 몸 어딘가를 휘감아 도는 것 같다.
감각은 예민한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났던 광부출신의 한인협회 대표가 한 말, ‘기회가 주어지면 철암을 관광으로라도 가보고 싶다’던 그 말은, 아마도 인생전환기에 겪은 광부훈련 체험의 기억과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독일에 오기 직전에 태백에서 광부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수많은 철암과 태백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탄광의 산업풍경은 그들의 삶 전체를 녹여 내주었을것인가?
하물며 철암출신 이영미작가의 어린시절 친구인 무당 딸에 대한 기억속에도 그것은 어김없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한 문학평론가에게서 받은 질문, 왜 풍경이라는 용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가? 에 대한 답변의 한 부분이 여기에도 있다.
유럽의 경치그림, 즉 일본인이 번역한 ‘풍경화’라는 말에는, 원래의 용어인 랜드스케이프(lANDSCAPE),에서 느껴지는 대지를 바탕으로 한 소유와 비소유, 하느님이 창조한 성스러운 삶의 터전이라는 생생한 느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람에 따라 구름 떠다니는 목가적 전원생활이 상상되는 그런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유럽의 역사에서 땅의 소유와 그 표현인 그림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회계층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또한 풍경화의 발달이 중세가 지난 후 제국주의의 발달과 연관된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설사 그것이 도교적 사고의 풍류사상을 끌어들인 자의적 해석이라 하더라도 메이지시기 이후 산수화 풍경화의 발달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모더니즘시기 척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용어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용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다.
눈앞에 펼쳐있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 경치그림은 결국 우리가 처한 현실과의 문제이다.
현실을 넘어서는 저멀리 순수자연의 모습을 지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과의 거리문제이다. 경치그림은 자연과 인공의 모습전체를 아우른다.
그런 점에서 철암은 인공을 포함한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은 인간에게는 거친 삶의 터전이다.
살을 에는 철암의 추운 겨울과 태백산맥 깊숙이 살고 있던 호랑이 늑대에게서 피해야 될 움막을 지을 통나무를 베어내야 하는 노동과 바위를 뚫고 석탄을 캐내야하는 석탄광차를 끌어내야하는 치열한 자연정복의 도구가 필요한 곳이다.
일본 메이지시대 사무라이계급들이 붙여준 명칭, 풍경화에는 웬지 물레방아간 돌아가는 낭만적 모습이 물씬 풍긴다.
하긴 서구산업혁명에 매진하는 당시 일본의 군벌들에게 그림은 단지 상공부 무역을 통해 국부를 쌓아가야 할 수출품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기타자와 노리야끼의 말이다.
케네스 클락은 10살 때 이러한 일본 그림을 런던에서 보았다고 하지 않던가?
더욱이 식민지시대 왜곡된 교육의 현실에서 아시아 수묵산수화의 전통과 서구의 경치그림을 같은 문제로 연결시킬 힘이 없었던 우리에게 예술의 근대화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이 조경해 놓은 덕수궁 정원의 아릿다움이나 도시근교의 과수원그림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더더군다나 철암과 같은 산업경치를 그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왜곡된 일본 말 ‘미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진경산수전통은 커녕 서구 경치그림의 올바른 수용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철암은 또 다시 2중으로 소외된 곳이다.

알래스카 가까운 이곳 로돈도해변에서, 저멀리 햇볕 밝은 여름날에도 캐스케이드 산맥 북쪽, 해발 삼천미터 하얗게 눈덮인 올림피아 마운틴국립공원을 바라다 보면서,
그리고 철암게시판 골뱅이PC방 앞에서 찍은 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철암그리기에 참가한 작가들의 기념촬영사진을 보면서,
철암의 구석구석 파헤쳐지고 뚤려진 갱도의 모습들은 문명을 향한 인간의 치경으로서 그리고 삶의 상처로서 다가온다.
그곳은 자연의 상처가 인간의 상처로 치환되는 곳이며 수 십년 간 지속된 탄광산업이 몰락하여 떠나간 이들의 기억이 존속하는 한, 그들의 몸속에 숨겨져 도시 번잡한 이곳 저곳의 공간을 떠돌다, 불현듯 철암의 어느 경치를 어느 예기치 못한 곳에서 떠올리게 하는 원천의 그 장소이다.
그곳은 또한 흥복사 조그만 딋방에 모셔져 있는 연고없는 죽은 광부들의 영령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철암의 석탄을 캐내기 위한 온갖 광산조형물들은 녹슬어 가고 파헤쳐진 경치들은 광산특별법으로 인한 막대한 예산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복구는 커녕 천연의 자연생태에만 유지하는 지방의 관광산업과 그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허용된 자연파괴가 그릇되게 반복되고 있다.

남은 것은 작가들의 몫이다.
기억과 사실은 예술표현의 무한한 통로이다.
[인쇄하기] 2011-07-26 08: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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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철암에 관한 선생님의 속내를 처음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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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천 좋은글들이 많이올라오네요! 드로잉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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