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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응전
  2011. 7.19. 여행 후기-합(수정)
  

세계를 작동시키는 장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다.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속에 속한 사람과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

일주일 동안 홍진표는 거의 매일 철암으로 넘어왔다. 딱히 도움이 되는 것도 없었지만, 번거롭게 굴지도 않았다. 조용히 구석에서 유리창의 이물질을 긁다가 사라지곤 했다. 역무과장은 종종 과도한 관심을 보였다. 표정은 미리 만들어 놓은 기성품 같았다. 철암역 화장실을 사용하는 인근 상가주민들이 오며 가며 기웃거린다. 무슨 작당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고하란다. 건축가 주대관은 엔지니어의 언어로 된 그림을 건네주었다. 상상력은 언어로부터 비롯한다. 건축적 상상력은 내연의 확장이 없는 무미한 언어들로 가득차기 일쑤고, 불필요한 비용의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여하간 친절한 그의 그림을 벽면에 붙여두고 까맣게 잊었었다. 兄은 처절하게 철암 곳곳을 쓸고 다녔다. 사생은 고단한 일이긴 하지만, 스스로 위안 받아 마땅한 일이다. 머리와 손끝으로부터 全 방위의 감각으로. 兄은 이전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감각적이다. 감각은 현재적이고 몸이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감각은 사유[思惟]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어진 거세된 감각[기억]으로부터 박리된 파편들이 찰나의 좁은 틈에서 쏟아져 나온다. 후각과 피부의 감각이 시각과 뒤엉킨다. 한바탕 난리법석 이후에 시선으로부터 손을 거둬들인다. 요란하고 유별난 이 의식[儀式]은 단지 몸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입에 담지 못할 통속어를 거침없이 시어로 끌어다 쓴 시인의 시처럼 날것이다. 兄은 눈앞의 풍광을 자신의 신체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경치를 그리는 일이 이상적 세계를 욕망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관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2002년 2월, 철암그리기 정기여행의 일정에 맞추어 역 갤러리가 완성되었다. 개관기념 류장복의 ‘겨울 철암展’이 열렸다. 꿈틀거리는 겨울 풍경들이 얇은 유리상자 안에서 가지런히 숨을 고르고 있다. 포획된 야생동물들과 한밑천 단단히 챙긴 것 같은 사냥꾼의 표정, 몰려온 구경꾼들, 방송카메라, 리포터, 언론, 그리고 얼치기 선동꾼. 식전행사는 현란한 수사들로 가득하다. 카메라를 따라다니는 조명은 실재[實在]의 각[脚]을 뜬다. 비현실적이다. 파상적 언어 폭격, 중추의 신경계로부터 말단의 조직까지. 빠짐없이 투항하고 싶다. 지난 일주일, 강원도 산골짜기에 내린 스산한 그림자는 아직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 투항할 기미 없이, 차라리 장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겨울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나는 몸을 두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몽상을 한다.

2011년 봄, 철암지역 보존복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다양한 의견들이 봉두난발한다. 거칠게 정리된 기본계획안은 실체가 없는 ‘말’과 다르지 않게 읽힌다. 기본계획안은 납품용 도서 수준에 이르러야 시관계자와 소통이 가능하다. 문제의 진단과 방법을 논하는 건 관계의 초기에나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는 할아텍과 관계를 갖는 것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제안을 받은 바도 없고, ‘말’은 그저 떠돌아다닌다. ‘말’이 설령 거짓이 아니라 하더라도 덜컥 몸을 얹을 수는 없다. 할아텍이 자발적으로 기본 계획을 작성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발생하는 비용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선투자의 개념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할아텍은 개인의 자발적 참여조차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구조다. 비용의 문제에서 할아텍은 자유롭지 못하다. 영리단체가 아닌 이상 선투자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는 없다. 태백시는 이미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7월 말 쯤으로 예정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주민 이찬우, 김동현은 골뱅이피씨방과 맞벽으로 지어진 제일다방의 사용 권리를 얻어냈다. 그 즈음에 원음향사에서 신토불이까지 철거됐다. 보존복원 이야기가 나온 뒤의 일이다.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은 불쾌한 농담 같았다. 요참 형[刑]에 처해진 수형자들의 하반신들처럼 불편한 풍경이다. 김동현은 새로운 전시공간을 기대한다. 할아텍의 재정 상태를 얼추 알고 있을 터라 미안해 하기는 했지만,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이찬우는 번거로운 일을 스스럼없이 처리해 주었다. 기대했던 시의 지원은 요원해졌고, 그래서 파랑새다방의 활용 방안도 자연스럽게 논점의 밖으로 밀려났다. 골뱅이피씨방과 제일다방은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2011년도 할아텍 전시 예산을 덜어내어 두 공간을 하나로 만들었다. 철거 후, 폐기물 처리와 청소, 도배와 전기공사, 설비공사 등. 앞으로 진행될 공사내역을 개괄하면 그렇다. 철거와 폐기물 처리도 여러 사정을 들어 시의 지원이 불가하게 됐다. 느닷없이 늘어난 일의 양은 철암으로 향하는 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천 시외버스터미널은 심해의 생명처럼 발광[發光]한다. 여러 개의 구멍으로 섭식과 배설을 반복한다. 나는 네 갈래로 갈라지는 모서리 연석선 위에 서있다. 최종보는 약간의 여흥과 긴요한 무언가를 줄 것이므로, 이천의 망망한 어둠을 표류하기로 작정한다. 칠월의 밤공기는 농밀하다. 상점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드문드문 거리를 적시고 있다. 최종보는 숙소로 돌아갔고, 나는 기증 물품을 재촉할 수 있는 권리를 챙겼다. 허름한 여관은 방금 좌초한 난파선이다. 육중한 해치를 열고, 터무니없이 곯아떨어진 선장을 깨운다. 이튿날 늦은 오후에 영월을 거쳐 태백으로 넘어갔다. 또 시내버스를 타고 연화산 옆구리를 돌아 철암으로 들어간다. 세상의 끝 쯤 어딘가에 버려진 기분이다. 기억은 때때로 잔인하고, 또 사실과 다르지 않아서 절망하게 한다. 기억은 시공간의 영역 밖에서 부단하게 안으로 파고든다. 1구 2탄 난로 불구멍을 맞추던 할머니는 여러 번 겹쳐진 투명한 레이어들 어딘가에서 잔상으로 남아 있다가 홀연 사라진다. 막 고쟁이를 추스르고, 주름진 손등을 닮은 낡은 지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철암연립상가는 불빛 한 점 없이 묵묵히 웅크리고 있다. 철암로 가로등은 헛헛한 뱃속에 어둠을 채우고 있다.

하루 종일 시답지 않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제일다방은 지긋지긋한 삶의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몇 년간 갇혀 있던 공기는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한다. 오물과 먼지, 오래된 낡은 공기의 냄새, 얄궂은 옷가지, 치장된 레이스, 빨간 보온병, 취기로부터 배설된 욕설과 자족적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몸의 치기[稚氣], 이웃의 기억에 자자[刺字]된, 진저리나는 몸들의 자취.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식성 좋은 대식가, 마대자루는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점심나절에 진주성 짬뽕과 빙초산 이복형제 쯤 되는 중국산 배갈로 허기를 채웠다. 작품설치 답사 차 동행했던 진예는 서울로 올라간다. 여분의 시간을 쪼개 사생[寫生]할 요량은 말 그대로 요량이 돼버렸다. 일주일의 시간은 소소한 일거리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이찬우는 본인의 업과 병행하느라 번거롭고 부산스런 한 주를 보냈다. 쓸데없어진 구조물을 철거하거나 수도시설을 옮기고, 전기배선을 하는가 하면, 구석구석 몰탈과 합판으로 땜질하고 다녔다. 김동현은 퇴근 후 고단한 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워지고 정리된 공간은 낯 선 의복을 걸친 모습 같다.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공간의 쓸모를 염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골뱅이피씨방이나 제일다방처럼 지천에 널린 빈 상가들은 수많았던 사람들의 영욕이 각인된 공간이다. 수없이 지나온 계절들의 밤을 꿈꾼다. 추억들은 지나 온 일들을 그 자리에 무심하게 놓아둔다. 공간의 새로운 쓸모를 기대하며,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산화한 많은 ‘말’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 졌다. 가로의 불빛들이 쇠꼬챙이처럼 바닥으로 쏟아진다. 시속 백 킬로미터와 수 톤에 이르는 무게를 감각한다. 잠이 든 사이에, 반환점 없이 마라톤풀코스를 달려온 버스는 장렬하게 전사했다. 인식표를 떼어내듯 재빨리 가방을 낚아채고 지하철로 환승한다. 시계는 자정 언저리에서 머뭇거린다.
수서타워 1710호.
중정은 날카로운 예각을 가진 이등변삼각형이다. 리프트는 현기증을 달고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저당 잡힌 몸값의 독촉과 맛있는 것 사이에서 여행의 명분을 저울질한다. 나도 누군가로부터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 싶다. 조르고 윽박지르는 것 보다는, 어쨌든. 아무래도 ‘맛있는 것’ 쪽이 한결 수월해 보이긴 한다. 어두운 복도 끝에 현관문이 열려있고, 한 무더기의 빛 덩어리가 낯 선 이방인을 반겨준다. 공기는 조밀하다. 작업대와 이젤들 저 너머에서 힘겹게 목소리가 넘어 왔다. 그 소리는 상식적인 음속은 고사하고, 내 귀에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발가락이 보인다, 연신 까딱거리는. 기묘한 착각과 또 충동을 억누르는 동안, 패대기쳐 놓은 반죽 같은 몸이 반에 반 쯤 세워졌다.
“멀어서요.”
늦은 이유는 없고, 단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동안 여행의 채비를 해 놓은 것도 아니니, 나는 또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를 서로 기다렸고, 그 중 절반은 사람이 아닌 시간을 기다렸다.

도착 예정 시각 새벽 다섯 시.
긴 어둠의 튜브, 거뭇한 주름투성이의 오물처럼 배설된 시간들을 거슬러 철암을 만난다. 폐광 이후 햇수로 13년의 세월이 흐른 2001년 여름이 처음이고, 그 해 가을부터 철암그리기 정기여행이 변변한 절차 없이 결정되었었다.  철암은 문명 격동기의 중심에서 빠르게 주변으로 밀려나고,  또 비워지고 있었다. 그 빈자리에 일군의 예술가, 건축가들이 스스로 채워지기를 갈망했다. 예술가들의 생산자적 염려와는 달리 건축팀은 매우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들의 보폭은 크고 거칠었다. 동행자로서 보폭의 차이는 예정된 결별을 암시한다. 철암역갤러리를 태동시켰고,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마련해 주기도 했던 건축팀과의 관계는 그런 이유로 끝이 났다. 만난 지 수개월 만에 공식적으로는 단절된 채 각자의 행보를 걷게 되었다.
철암은 대부분의 역사가 지명과 지형에서 유래한다.  문명사라기보다 자연사에 가깝다.  철암이 최초로 문명을 일으킨 게 석탄문명이고, 그 사회구성원의 총체의 합이 탄광촌 문화다.  강원산업의 폐광은 생산의 몰락이자, 문명과 그 주변을 에우던 문화의 동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철암은 손에 쥔 도구를 바꿔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광부들을 잃고, 그의 가족들과 수많은 상인들을 잃어갔다. 예술가들은 다소 의뭉스런 구석이 있다. 생산자로서 사회적 책임의 경계는 모호하고, 개별 참가자의 몫으로 분산되었다. 철암을 그리고 기록하는 행위들은 공동의 신념의 범위 밖에서 머뭇거리고, 두서없이 진행되었다. 창작행위들은  지역의 예민한 정서를 다행스러울 정도만큼 빗겨나 있었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의 행보가 늘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도시건축팀,  시공무원이나 유관기관,  관변단체,  상이한 견해의 지역민들과의 관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별자로서 나는 무장공비처럼 철암 곳곳을 염탐했고, 때때로 중앙에 보고하기도 했다.  욕보거나 배척당하는 기분이 들 때면 공연히 귀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암역갤러리가 설치되고, 남동에 작업실이 확보되면서 정기여행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즈음, 그 해 여름과 이듬해 수해로 철암은 아수라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림 그리며 돌아다니기도 송구해서 한 동안 집짓기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 두 번의 수해가 철암의 지형을 바꿨다. 이제 겨우 철암천 바닥에 무한궤도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을 뿐인데, 2011년 현재 철암의 모습은 보다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철암모텔 간판이 걸린 옛 황실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철암역까지 걸었다. 여전히 짙은 여명 길을 되돌아온다. 兄은 이불 속인 양 모텔로 빨려들어 갔다. 새벽 4시 40분. 나는 동현씨를 깨워 골뱅이피씨방 열쇠를 얻었다. 세 시간 먼저 출발한 진예는 아직 연락이 없다. 피씨방갤러리는 허름한 티셔츠에 정장바지 차림으로 나를 반긴다. 배열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옅은 푸른색이 창에 번질 무렵에서 덜컥 깨어났다. 누군가가 문을 흔들었다. 잠시 행간을 두고 계단을 총총 내려간다. 그리고 또 잠간의 사이, 망치소리 같은 찬우씨 목소리가 들렸다. 부지런한 새벽 새소리의 진예는, 지금 막 도착해서 작품을 조립하는 중이다. 매우 불친절하게 작품의 설치를 도와주고 아침을 얻어먹었다.

운전 경력 10년 차 진예는 방금 면허증을 딴 아줌마처럼 운전한다. 흥복사 가는 길이다. 절이라고 해봐야 암자 하나 종각 하나 허름한 별채가 전부다. 흥복사에는 130여 기의 광부위폐가 모셔져있다. 시원스럽게 뻗은 소나무 숲을 지나 녹색의 철다리를 건넜다. 진예는 경내로 들어가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위폐를 모두 치웠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현씨와 약수터에 나란히 서서 물을 한 모금 씩 마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완만한 경사의 언덕으로/ 급하게 솟아오른 멧부리/
잡목과/ 납작 상수리나무./
말라붙은 황토 잎 새는/ 혈흔./
무너져 내린 갱목은/ 꺾어진 뼈마디./
사는 게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그렇고 그렇게 해결한/
부릅뜬 눈들의 沒落과,/ 온통,/ 돌보지 않은 무덤./
그믐 밤 검은 하늘 닮은 무덤./
    
 1991 성주산 광부 공동묘지

위폐든 위령탑이든, 무덤이나 제례의식 따위든 그게 뭐든, 대수롭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진예는 자꾸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한다. 솔밭에 앉아서 미인폭포와 비와야폭포를 다녀왔다. 입으로 다녀왔건만 그 마저도 힘에 부친다. 진예는 몇 번을 더 칭얼거리다가 결국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로 향했다. 피씨방갤러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분주해졌다. 나는 유영하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반가운 얼굴들이 일순간 모였다가 흩어진다.

兄은 철암역 앞에 있다. 팔짱을 낀 채 윈도우갤러리를 바라보고 있다. 성성한 백발이 시간의 층위가 다름을 상기시킨다. 철암역갤러리, 이후 10년. 부침과 곡절의 세월이다. 철암역갤러리는 과도한 기대를 견딜 운명이 아니었음에도, 2년여 동안 유지되다가 지금의 윈도우로 자리를 옮겼다. 명맥이 남아있음을 감사한다. 兄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걸고 나자 나른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온 몸의 신경과 관절들이 으름장을 놓는다. 태업이라도 할 기세다. 시간은 건너 뛸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게 늘어난다. 兄은 건너편에서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부채의식과 채무상환의 사이에서 꼴랑 이자 몇 푼 쥐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경남반점과 역전수퍼 사이로 철제 인도교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다만 허공에 불과해서 시선은 신설동 산자락에 꽂힌다. 흔적은 언젠가 지워지기 마련이고, 기억은 압축기를 달고 다니는 청소차마냥 이것저것 구분 없이 묶어버린다. 이제, 철삼교에서 옛 남동교 까지 온전하게 기억의 목록으로 남게 됐다. 신설동이 그랬고, 월천동이 그랬던 것처럼 목록은 내용을 무심하게 지시할 뿐이다. 누군가 푸성귀를 심었다. 또 문득 씨앗이 날아와 콘크리트 갈라진 틈에서 한 순간을 살다가 영면한다. 현장을 목도하는 눈 또한 무심하다. 햇살이 따갑다.

행사준비를 마치고, 모두 피씨방 앞 인도로 쏟아져 나왔다. 40개가 넘는 피사체는 빠르고 능숙하게 처리됐다. 바로 이어진 트라이앵글프로젝트 철암그리기展 오프닝 행사도 매듭 없이 유려하게 흘러갔다. 가장 오래된 두 분 선생님께서 철암그리기를 회상하셨다. 적포도주 잔은 주마등이라도 담긴 양 투명하고 붉은 빛이 돌았다. 누군가 건배를 제안하고, 또 누군가는 이배 삼배의 잔을 부딪쳐 주었다. 번거롭고 고단했던 일들이 아스라하게 멀어진다.



ps.
이찬우씨와 김동현씨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먼 길을 오신 작가 분들과 할아텍 여러분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인쇄하기] 2011-07-25 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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