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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선
  김포 & 실비아
  

김포& 실비아
2010 11 8

오전 할아텍 철암게시판의 글을 조금 첨가하다.

웬지 그림에 달라붙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제 그제도 현재 그리고 있는 지하철그림에 별로 진전이 없이 지나갔다.
오후 2시경 천선생이 차를 가지고 왔다. 오늘, 미국이름 김포, 한국이름 김보현선생의
작업실에 가기로 한 것이다. 약속은 천선생의 주선으로 오후 4시 그의 작업실건물이 있는 라파이옛거리로 되어 있었다. NYU근처다. 눈내리던날 이 근처에서 졸업생들을 만나던 기억이 났다.
지난 번 회고전, 아마도 부인 실비아여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던, 전시장에서 잠깐 김포선생을 소개 받고 오늘 정식으로 들르기로 한 것이다.
부인 실비아여사는 기억력이 없어진 분이다.
방문시간 내내, 그리고 그후 이어진 식당에서도 그분은 맑은 얼굴로 가만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97세의 나이라고 한다. 아주 잠시, 수프가 오래된 것이라며 눈가를 찌프리며 짜증어린 표현을 웨이터에게 하였다. 사고의 기억력과 감각의 기억력이 다른 것이다. 아니면 표현의 기억력이 없어진 것인가?

김포선생은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미술계에 가끔 소개된 분이다. 95세의 백발노인으로 안경도 안쓰고 글을 읽는다. 자그마한 키에 마치 식물과 같은 수동적인 분으로 느껴졌다.
마침, 상당한규모의 그분의 옥상 화원에는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다소 결벽한 성격으로 느껴진다.
한국에서의 몇번의 전시가, 자신이 전시하자고 한 것이 아님을 여러 번 밝혔다.

한국의 화랑과 관계를 하느냐는 질문에 한 두번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비용을 못 받은 일도 있다고 하였다.

처음 한국의 미술잡지에 소개된 글을 읽었을 때, 이렇게 나이든 분이 미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던 기억이 났다. 그때만 해도 70대였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젊어서 일본에서 공부한 뒤 해방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 조선대학교 미술학부설립과 함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 90년대에 조선대학교에서의 회고전과 함께 300여 점의 작품을 조선대학교에 기증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었다.
한편 그는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전후해서 학생들을 데리고 섬으로 여행간 것이 오해 받아 경찰에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한다.
그 과정이 다소 궁금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묻지 않았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그리고 몸의 표정속에서, 전기고문의 고통스러움을 진저리 쳐 하는 느낌을 언듯 드러내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직접 손발로 당하는 구타였다고도 하였다.
그 모멸감이 심하였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동물취급을 받는 모멸감으로, 참을 수 없었음을 조용히 그리고 힘없는 말로 표현하였다.
나는 그 말을 옆으로 비껴선 채 지나가듯이 듣고 있었으며, 마치 창고 겸 전시장에 있는 실비아여사의 그림에 집중하는 듯 하면서 듣고 있었다.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나는 양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도 그 내용을 어디에선가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중학교 미술선생시절의 제자가 역사학자의 길을 걸은 후, 지금 겸재미술관 관장으로 있으며 그림도 그린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약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한국에서 항상 불안한 상태로 살았으며 더 이상 그곳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경력대로라면 교환교수 차 미국에 오면서 이곳에 정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또한 그는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와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관계로 서울에서 활동한 일은 없고 미국을 올 때 비자때문에 서울에 왔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미술사에서 빗겨있었다.
그는 당시에 유영국이나 김환기를 몰랐다고 한다.
그는 서울의 문화 예술계와는 분리되어 지방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우연한? 의심어린 행동으로 경찰의 조사와 고문으로 한국을 피하게 된것이며, 미국에 와서 조차 항상 불안한 느낌으로 살아온 것이다.
현재 그가 작업하는 건물내부에서 공간을 옮겨가며 구경하던 중 김00이라는 낯익은 항구풍경이 표지로 되어있는 화집을 보자, 자신의 후배?가 준 화집이라며 무거웠는데도 한국에서 들고 왔다고 한다. 그 그ㅡ림들은 오지호풍의 색채감각과 터치가 느껴졌다.
자신이 그 대학을 떠난 후에 오지호씨가 그 자리를 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영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분도 그런것 같다고 공감해준다.
[인쇄하기] 2010-11-11 01: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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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이석우관장님께 참석못해 미안하고 갤러리 소개를 못해 미안하다고 전해주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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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원 겸재미술관 이석우 관장님 인사동에서 곧 전시회 여신다고 준비중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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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예 책방에 들르는 기분이예요 ^^ 흥미로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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