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수 [ E-mail ]
  2010.8.10. 태백일기- 할아텍 100회 기념전
  

2010. 8. 10.


아침에 눈을 떴는데 6시. 날씨가 꾸물거리기는 한데 벌써 훤하다. 그래 아침에 구와우에 다녀오면 되겠다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챙겨, A님의 차를 빌렸다. 그런데 비가 굵어진다. 아침에 일정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 어찌 움직여야할지 알수없는 터라 구와우는 포기하고 가까운 철암역으로 가기로 했다.

철암역에는 류장복, 한응전님의 그림, 박미화님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었다. 적탄장 산아래 철암역. 역사에는 철암의 풍경이 목탄과 유화로 거칠고 힘있게 그려져 있었다. 제대로 철암을 느끼며 살며 작업한 작가의 호흡이 느껴진다. 역에서 나와 간곳은 한응전님의 작업실이 있던 골뱅이 PC방. 지금은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굳게 닫혀있다. 그 옆건물 2층 주택에선 아저씨가 베란다에 내놓은 화초를 살펴보며 이쪽을 내려보신다. ‘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한편 반가우면서도, 한편 생경하다. 내 인생의 어디가 저 사람과 닿아있을까? 내가 여기사는 저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 개울을 건너 공터에서 건너편 마을과 적탄장을 본다. 텅빈 집들과 낡고 허름한 건물에서 풍겨지는 묘한 긴장감. 사진으로 몇장 남긴다. 혼자 낯선 거리를 걷는다는 것. 역시 쉽지만을 않다. 이내 지치고 만다. 내가 지금 왜 이곳을 걷고 있는거지? 믿도 끝도 없이 이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 휴양림 숙소로 돌아왔다.

여자 숙소에선 다들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남자 숙소에선 깜깜 무소식이다. 어젯밤 분위기가 너무 좋아 늦게까지 이야기가 계속 됐다 한다. 어젯밤 늦게 일본에서 귀국한 J님은 철암역 설치작업 때문에 K님과 나가고, 남은 몇 명은 허기진 배를 달래다가지쳐 꾀를 내었다. 라면을 구할 수 있을까하고 옆방으로 갔는데,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야식으로 남겨둔게 있다며, 짬뽕사발면을 챙겨주신다. 계산하려고 하니 괜찮단다. 다음에 또 오란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너무 맛있다.

10시가 되어서야 집결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가보니, 둥그렇게 둘러앉아 어제의 그 분위기로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어휴 참, 이렇게 방안에만 있고 싶을까? 난 밖으로 나와 길을 거닐며 노래를 불렀다. 빗소리에 냇물 소리에 묻혀 아무리 크게 불러도 들리지 않는다.

잠시 후, 어젯밤에 사라졌던 몇분도 나타나고- 구문소 옆 정자에서 동네분들과 밤새 얘기하며 놀았단다. 제대로 태백을 느끼며 비박을 한 셈이다. 아침엔 라면까지 끓여먹고... 참, 정말 준비된 선수들이다- 식당으로 출발을 했다.

아침 식사는 올갱이 해장국으로 유명한 석탄박물관 아래의 ‘고사리 식당’이다. 비는 하염없이 주룩주룩 내리고, 올갱이 해장국은 너무 맛있다. 같이 나오는 명태조림, 나물, 콩자반, 된장바른 풋고추 등등. 이곳의 이 분들이 아니면 사라질 맛이었다. 너무 감사하다.

식사후, 모두와 인사를 하고, 각자의 일정대로 흩어졌다. 나는 P님과 함께 함태광업소 아래 체험관에 전시를 보러갔다. 사진과 회화, 조각, 음향 설치가 있었다. 지난 겨울 함태광업소에서 느꼈던 크고 육중한 빈 건물. 지하 400m 아래 땅속에서 전해지는 웅웅거림과 울렁거림. 지구의 열려진 땅 속을 보고있다는현장의 긴장감... 그대로 서 있었다. 안전상의 문제로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지 못해 많이 아쉽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다음에 들른 곳은 다시 철암. 삼표제작소였다. 이곳은 예전에 주물을 떠서 각종 석탄관련 제품들을 만들던 공장인데, 지금은 생활쓰레기가 모였다가 분류되어 사라지는 곳이다. 각 건물의 구역마다 생활 집기들이 쌓여있었고, 신기하게도 지난 3월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매번 내용물이 달라지는 거였다.

이번에는 안가본 곳을 들러보기로 하는데, 그곳 직원의 말이 어딜 가보면 “관”이 있을거라 한다. 참으로... 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다니는 것도 떨떠름한데 관이라니! 그런데 참 이상한게 혼자는 죽어도 안할 일인데, 같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게 너무 신기한다. 게다가 날씨까지 쨍하니 밝아져서 새로운 세계를 어서 탐험하라고 길을 내주는것 같았다. 낡은 건물의 2층에는 오락실에서 나온 기계들이 잔뜩 들어서 있고, 한쪽 구석에 십수년된 서류철이 가득 쌓인채 한쪽으로 무너져있고, 켜켜이 쌓인 먼지들 속에는 그만큼의 세월이 그만큼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빈 방과 창문들, 집기들... 용도 폐기된 물건들. 지금은 내가 그들을 보지만, 나 또한 용도 폐기되면 어떤 모습일까.

어느 방엔가 관이 있었다. 멀리 창밖에서 바라 보았다. 검정색 송판으로 길게 짜진 나무상자였다. 누군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 사람들의 얘기가 생각난다. ‘당신을 이제 죽었습니다’ 하면서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데 문이 닫히고, 못질이 되고, 사람들의 곡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때 진짜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진정 살아야할 이유를 가장 강하게 느낀다고 하지. 내가 살아야할 이유. 이유? 그런게 있을까?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람이 이유가 없어 죽진 않았을테니, 이유를 찾기보단 살아있는 지금의 기적을 느끼며 사는게 진짜일거란 생각이 든다.

쓰레기더미에서 건진 흥미로운 물건들을 좋아라하며 낄낄대었다. 우리는 왜이리 바보 같은가. 그런데 이렇게 하릴없는 짓거리가 왜이리 재미있는가!

서울로 출발하기전, 태백문화원 옆 '신토불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지난 3월 태백에 왔다가 H님 덕분에 알게된 동네 어르신이 고로쇠 약수를 떠왔다며 나누어주셨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있어 전해드렸더니, 사진을 보고 너무 좋아하신다. 그 중에 하나는 크게 확대해 놓고 싶다고 하신다. 신문지 반절 사이즈 정도로 말이다. 정말 이걸 걸어놓으시게요? 했더니 그렇단다. 식당에 걸어놓고 싶으시단다. 밝기가 좀 어둡고, 스냅이라 초점도 정확하지 않은지라 확대하기에는 조금 걱정되지만 암튼. 저리 좋아하시니 해드릴밖에! 한상 차려주신 청국장은 진수성찬이었다. 감사히 맛나게 먹고, 냉커피까지 마시고 일어났다. 밖에는 다시 비가 굵어지고 있었다.


서울 오는 길은 내내 빗속이었다.


거기, 철암 그리고 태백

구와우 해바라기밭의 땅거미, 휴양림 늦은 밤의 오가던 아슬아슬하면서 유쾌한 대화, 비오는 철암역의 아침 풍경, 잠깐 갠 오후의 쓰레기더미 산책... 이 모든 것이 내가 태백에 가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내가 할아텍을 만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진하고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이다!
[인쇄하기] 2010-08-24 19: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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