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
  철암그리기 100회 기념전 후기입니다
  


100회 기념전 후기를 이제야 올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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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을 다녀와서


대학에 들어와서 예술인 공동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환상을 가지고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예술과 거리가 먼 나로서는 아직도 예술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이 대체 무엇인지, 예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이다. 이런 내게 ‘할아텍’과 ‘철암그리기’에 대한 이인범 선생님의 소개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왔고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철암그리기=공공 예술 프로젝트’라는 공식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서 8월 9일 ‘철암그리기’ 100회 기념전이 열리는 철암을 향하는 차 안에서 ‘예술의 공공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기회를 얻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많은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대부분 ‘공공성’ 혹은 ‘예술’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지 예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서울의 중심부가 아니라 낙후된 주변부에서 행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공공’ 그리고 ‘예술’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과연 ‘공공성’이라는 것이 낙후된 지역에서 펼치는 예술인들만의 파티를 지칭하는 의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솔직히 내 눈으로 보면 그 지역과 지역 주민들에 대한 이해 혹은 그 지역의 상처에 대한 고찰 없이,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던 강을 헤집어 놓는 불도저 같은 식으로 주변부의 지역과 삶에 침투하여 자신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여졌다. 아마도 이런 실망감으로 인해 ‘예술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할아텍은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공공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예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 거칠지만 예술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는 ‘소통’이다. 이 때 소통은 인간과 인간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으로 확대되고, 또는 예술가와 비예술가, 예술가와 예술가 자신과의 소통까지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겠지만 철암그리기에 대한 첫 인상은 예술가와 자연간의 소통, 예술가와 예술가 자신의 소통을 이루었다고 여겨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에게 있어서 ‘철암’은 단순히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감히 내가 다가가고 정의내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만큼이나 ‘철암그리기’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철암그리기가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어느 한 가지의 의미에서 작동되는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적 존재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암그리기엔 회칙도 이렇다 할 회원 명부도 없다”고 하셨던 서용선 선생님의 말씀은 바로 철암의 이런 특징을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런 점이 철암그리기를 10년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크나큰 원동력이 라고 여겨졌다.
철암을 알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내 눈에 비친 철암그리기의 활동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과 더불어 공공성을 고려하면, 공공성이란 예술가와 주민들과의 ‘소통-접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은 사실 삶의 모든 행위에서 중요한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지만, 특히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근간일 것이다. 물론 일상의 삶과 경제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게 여기는 지역 주민들이 예술의 가치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지역 주민의 삶이 만나는 지점, 그것이 예술의 공공성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쉽게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철암그리기’라면 그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이 모임을 이끌어온 힘, 그리고 쉽게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철암그리기’이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공간’은, 사람들이 그곳을 스쳐가고 그에 따라 거기에는 흔적이 남는다. 철암 역시 석탄산업의 정점에서 있던 때를 지나 지금의 시점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던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철암그리기 역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100회의 철암그리기 동안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철암그리기에 흔적을 남겼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철암그리기를 형성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철암그리기는 자신과 같은 존재인 철암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그러한 스침들을 지난 10년 동안 남기려는데 힘썼다고 여겨진다. ‘철암그리기’ 그리고 ‘철암’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또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앞으로의 또 10, 20년이 기대가 된다.

철암에 있는 동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철암그리기 100회 기념전 <거기, 철암 그리고 태백>에서 ‘거기’가 어딘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다. 그 지점을 찾는 일, 그것에 동참하는 것이 곧 나의 꿈을 실현하는 길임을 확인시켜준 철암에 감사드린다.



[인쇄하기] 2010-08-21 12: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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