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수
  2010.8.9. 태백일기- 할아텍 100회 기념전
  

: 오후 4시경. 나는 태백 시외버스터미널을 서성이고 있다. 낡은 건물 안에는 길게 놓인 의자에 사람들이 버스 출발을 기다리명 앉아있고, 군것질거리를 파는 매점 하나와 천정벽에 붙여진 오래된 시간표가 대충 대합실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
: 앞 의자에 앉은 모녀가 옥수수 얘기를 하며 옥신각신하자, 옆의자에 있던 젊은 남녀가 옥수수를 건네며 드시라고 한다. '미안해서 어쩌나'하면서 환하게 웃는 할머니. 이가 몇개 없으시다.
:
: 혹시나 하고 버스에서 내렸던 밖으로 나가보니, 버스 들어오는 쪽을 향해 서계시는 Y님이 계신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차에 탔다. 잠깐 사이에 어긋났나보다. 나는 안에서 그는 밖에서 기다린 것이다.
:
: 할아텍 100회 기념전시 오프닝이 열리는 곳은 해바라기 축제가 열리고 있는 구와우(고생자원식물원)이다. 이미 1시경에는 태백체험공원에서 세미나가 열려 태백시 관계자들과 작가들이 함께 담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시간이 끝나고, 철암역을 들러 이곳 구와우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
: 구와우 주인 김남표님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시원한 메밀차를 내주며, 해바라기 축제가 작년보다 많이 알려진것 같다며 밀려드는 문의전화와 방문객에 연방 웃음꽃이다. 입구쪽에는 무릎정도까지 오는 해바라기이더니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 일대가 해바라기 밭으로 장관이다.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다.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길이 나 있고, 내일 아침 시원할 때 걸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
: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음식상이 차려지고, 술잔을 기울이며 인사를 한다. 특별한 진행없이 오프닝이 시작되고, 축하케익에 불을 끄고, 아 참, 내가 준비해간 코사지를 달아드려야지. 나는 서둘러 코사지를 꺼내 가슴에 달아드렸다. 참여작가를 30명정도라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얼추 맞게된듯하다. 망개잎에 망개열매, 천일홍으로 만든 코사지를 가슴에 하나씩 다는데, 저마다 예쁜걸 달겠다고 왁자하게 떠들고, 가슴에 하나씩 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재밌고, 우습기도 하다. 그래, 작은 선물이지만 이분들 크게 받으시는구나 마음이 흐뭇했다.
:
: 준비해놓은 동동주가 몇순배 돌자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한영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포의 눈물'이 태백에 모인 이 이방인들을 버무리고 있었다.
:
: 나는 L과 함께 전시장의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회화와 조각, 설치 등... 태백이 주는 지역적 특성을 원천으로 탄생된 작업들. 거기엔 작가 나름대로 태백을 이해하는 방식이 담겨있었다. 거칠고 낯선 풍경으로, 삶의 단편으로, 우화적으로, 세련되게, 냉소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태백이 주는 물성으로부터 자신을 녹여내 소통하고 있었다. 결국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 그 생각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일 아침 다시한번 봐야겠다.

오프닝이 끝나가고, 바로 귀가할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고, 우리가 옮겨간 숙소는 휴양림의 통나무집이었다. 남자와 여자 숙소가 떨어져 있어서 나는 L과 여자 숙소에서 짐을 풀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행은 역시 쉬면서 뒹굴뒹굴하는 맛도 있어야지 하며, 밀린 얘기를 나누는데, 전화가 온다.

남자 숙소에 모인 인원은 12명- 중간에 어딘가로 샌 사람들이 5명- 우리가 들어가자 이야기는 한창 '접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왠 접지?"하며 의아했지만, 그 이유인즉은 소머리국밥의 후원자이신 넥센 타이어의 H대표님 덕분에 타이어의 접지력에 대해 A님이 이야기를 끌어가며 자연스레 화두가 된거였다. 여기서 '접지'는 단순히 타이어의 제동력뿐만 아니라, 할아텍 태백 방문 100회 기념 전시에 관한 태백시와의 관계에 비유되기도 하고, 단순히 행정적인것뿐만 아니라, 진정한 소통의 차원에서 태백시민, 또는 지역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도 담겨 있었다.

과연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작가들이 할아텍을 거쳐갔고, 지속시켜 왔는데 그 동안의 열정과 노력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이 미흡하지 않았나하는 반성과 자성의 말씀을 하시는 S님은 솔직하면서도 묵묵한 그 세월이 느껴져 한편 가슴 뭉클했다.

또, L님은 당신은 그 동안의 어떤 모임의 활동에 비해 할아텍만큼 매력적이고, 진지하고, 건강한 모임은 없었다며, 할아텍의 10년을 축하하셨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기 힘든 상황에서 100회로 끝내는 것도 좋지않은가하고 슬쩍 제안을 하신다. 거기에 대해 A님은 진짜 제대로 한번 '접지'을 해봐야 한다고 하고...

결론은 모르겠다. 다음 모임이 잡혔는지 이것으로 끝인지. 그러나 해산이라는 말이 없던걸 보면 아무래도 그냥 없어지진 않을것같다. 넥센 타이어의 H님이 자신은 경영자라 기계적인 것(아마 접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오늘밤 이 야심한 시간까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12명(나중에 J님이 합류해서 13명)작가들의 토론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솔직하고, 의미있는 시간인것 같다며 이것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하고 고무하셨다.

있던 술이 다 동이 나서야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고,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인쇄하기] 2010-08-18 19:48:31

이름 : 비밀번호 :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