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할아텍에서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한다는 것은...
  

안녕하세요. 김경미입니다.


제가 처음 할아텍에 인연을 맺은 것은 뉴욕으로 떠나기 전인 2004년 겨울 후원인의 밤에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그때 저는 media city seoul 2000에 발표한 Sound Interactive Art 기록의 원본을 잃어버려 VHS 비디오테잎에 간신히 남겨놓은 기록을 여러개 다시 VHS에 담아 New York University에 제출할 포트폴리오 중의 일부를 가지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참석하였습니다. 다행히 제 기록 영상을 보여줄 비디오 데크와 AV 잭이 있어 시연은 할 수 있었으나 후원인의 밤이 열렸던 오데뜨 카페에서 스크린이 있거나 조명의 제어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기에 원본도 아니고 어두운 VR theater에서 촬영한 영상은 엉성한 화질과 매끄럽지 않은 사운드로 인해 참석한 많은 분들께서는 썩 상쾌한 기분을 받지 못했으리라 저는 연말 후원인의 밤의 분위기에 누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자책을 한 편치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2008년 초 부터 할아텍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2년 동안 미디어 아트 작업을 설치하면서 느꼈던 점을 앞으로 있을 그리고 기획하실 전시에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적습니다.

2008년 2.16-3.15 <자연,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전시 이름으로 영상전을 하기위해 구와우로 미국에서 쓰던 맥퀸토시 랩텁(노트북)을 들고 갔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시한 작업은 Processing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인터랙티브 영상작업이었습니다. 제 노트북에서는 구현환경이 맞아 별 문제 없었으나 할아텍의 노트북은 Vista로 OS가 한글로 되어 있어 한글을 인식 못하는 Processing 프로그램과 제 프로그램과 연동되는 JAVA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저는 제가 평소때 모든 업무를 보는 저의 하나 밖에 없는 노트북을 두고 가면서 컴퓨터에서 제 영상을 끄는 법과 다시 다음날 켜는 법, 제 프로그램을 여는 법을 여러 번 알려드리고 노트에 적어 직접 연습해 보시게 하고 며칠 후 셋팅된 컴퓨터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고 떠났습니다. 며칠 후 강원도에 폭설 주의보가 내려진 날 혼자서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늦은 오후에 구와우를 다시 찾았을 때 제 컴퓨터에 영상은 켜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실외라 분실위험이 있다는 김남표 대표의 말은 그때의 나에게 충분히 이해가 되었었던 반면 그럼 구태여 상영하지 않을 작품이었는데 왜 나는 나의 업무용 노트북을 남겨두고 다시 찾아가는 수고를 눈비로 꽁꽁 얼은 강원도 고개를 목숨 걸고(?) 와서 다시 그 밤에 위험을 감수하며 넘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꽁꽁 얼은 그 고개를 기어가듯이 차를 몰고가면서 네비게이션이 이름 모를 무덤가에 향해 그 외딴 무덤에서 빠져 나오는 경험을 가지게 되면서 그 이후로 나는 겁없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지방 곳곳에 차를 몰고 다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죠.
2008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를 하면서 구와우에 다시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업을 걸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4월에 개인전을 한 후라 여러대의 프로젝터와 컴퓨터를 소지하고 있어 업무용 랩탑을 쓰는 상황은 아니었죠. 전시 장소도 나름 마음에 드는 구와우의 전시 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 하게 되어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업을 위해서 센서와 컴퓨터와 프로젝터를 어렵게 설치했습니다. 한달 동안 습기가 많은 전시장에 설치될 컴퓨터 장비가 별탈 없이 잘 견뎌줄까하는 우려와 파워를 잘못 내려 프로젝터의 볼브가 나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무심한 편인 저에게는 아주 미비한 걱정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전시장에서 장비를 건네 받았을 때 함께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제 작품은 거의 켜져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따라서 장비가 고장 나지는 않았을 꺼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라이앵글 프로젝트의 작품으로 오사카로 가게 되었을 때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은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리타 공항에 항상 스탑만 하던 곳이었는데, 일본의 제대로 된 첫 방문을 관광이 아닌 전시로 찾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제 작업은 일본을 가는 것에도 문제가 따랐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그림이니 나중에 배로 한꺼번에 붙이면 된다고 하는데 저는 컴퓨터 장비라 한달 동안 배로 옮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려가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전시가 끝나면 따로 붙여 주십사 하고 30만원을 준비해갔습니다. 그러나 작년은 원화 가치가 형편없어 30만원은 반으로 쪼개져 FEDEX나 UPS로 붙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돈을 최석호 선생님께 드리는 손이 부끄러울 정도였고 번거로움을 저로 인해 드리게 되어 마음이 썩 편치 않았습니다. 다행히 제 컴퓨터 외 기계 장비들은 최석호 선생님이 한국으로 오시는 비행기편에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해가 바뀌어 할아텍의 전시를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로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양구로 가는 전시도 오사카로 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게 되었죠. 또한 서울에서처럼 제가 간간히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여서 전시해놓고는 관리에 신경이 많이 쓰지 않는것이라는 것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전시장 상황이 빛을 차단해서 따로 사용할 만큼이 공간이 여의치 않을꺼라는 얘기도 한 몫 했습니다.(나중에 박수근 미술관은 미술관 자체 인력이 있어 관리가 가능할뿐만 아니라 운송 또한 탑차로 집에 직접 방문해서 주신것에 제가 잘못 판단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할아텍에 소개한 제 작품은 디지털 작업으로 이미지가 자동으로 프로그래밍되기 보다는 손으로 혹은 마우스로 그린 그림이 백그라운드가 되거나 나뭇잎 같은 그려진 이미지 소스가 모션 디텍팅되서 날아가는 것을 소개했었습니다. Generative sound나 픽셀 이미지로 real time으로 프로그래밍에 의해 드로잉되는 것은 소개하지 않았네요. 할아텍의 그간의 전시 성격과 맞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할아텍이 아닌 다른 전시에 많이 소개가 되기도 해서였는데 어쨌든 나무 이미지로 백그라운드에 썼었던 이미지들이 모두 그린 것이니 전시 설치와 관리, 회수 모두에 용이하지 않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업이 아닌 그냥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20년 전에 베를린 쿤스트 아카데미로 유학을 갈거라고 미친듯이 그렸던 그림 이후에 중단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습니다.
양구 박수근 미술관 전시를 올리고 상명대 전시를 설치하던 날. 배석빈 선생님께 이런 얘기를 한게 생각나네요. “나는 영상작업을 하면서 어쩌면 선생님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르니까) 그런데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깨달았다. 내가 물감을 컨트롤 못한 설익은 그림을 들고 박수근 미술관에서 선생님들을 기다리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그림을 찬찬히 보면서 알게 되었다.”
결국 할아텍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예술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배우는 그림 그리기를 넘어서는 좋은 배움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이 기뻤습니다. 상명대에서는 계획되어 있었던 대로 박수근 미술관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픽셀을 연상시키는 분할된 캔버스에 그린 이미지를 다시 픽셀의 구성으로 영상작업을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청주 공예 비엔날레 일로 바쁜 이지영씨에게 역시나 컴퓨터 켜는 법과 끄는 법, 영상 파일을 여는 법, 오전부터 미술관이 닫는 저녁까지 영상이 꺼지지 않게 루프를 거는 법을 종이에 적어서 알려주었지요. 그러나 내가 한 번 더 단단히 실망한 것은 인터랙티브 미디어도 아닌 미디어 아트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간단한 구동법을 가진 싱글채널비디오 작업으로 전시를 했는데 루프를 거는 법을 모른 조교가 한 번 영상이 돌아가면 파일이 닫히고 바탕화면이 뜬 채로 전시기간 내내 상영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이 이임 받으면서 설명서를 제대로 전달 받지 않았다면서 철수하러 간 저에게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마침 전시가 진행되는 곳에서 달려올 수도 있는 가장 가까운 대학에 강의를 하고 있던 저에게 왜 한 통의 전화도 하지 않았는지 많이 안타깝더군요. 이렇게 제대로 전시 기간 내에 온전하게 작품이 보여지지 않은 경험을 여러번 가진 데다 이번 일본 전시에 직접 참석할 수 없던 사정을 가진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은 운반, 설치, 관리, 철수에 용이한 작업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심플한 미디어아트작업인 싱글채널비디오를 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다른 학회에 발표할 논문과 미디어아트 전시작업의 이질감 하에서 나는 또다시 익숙하지 않지만 그러나 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그림을 또 그려서 민폐가 되지 않은 최선의 범위 내에서 허윤희 작가 편에 그림을 보내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 있을 철암 100회 전시인 2월, 10월의 전시 참여와 함께 앞으로 할아텍에서 미디어아트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철암을 방문하면서 서용선 선생님께 빌 비올라가 독일의 탄광 천정 위로 프로젝션한 비디오 아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영상작업을 하지 않은 작가들도 가슴이 두근거릴 겁니다. 참고로 저는 두 개의 석사학위 논문 중 하나가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를 현상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1997년에 미술학 석사를 받은 봐 있어 어느 정도 비올라의 작업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꼭 비올라의 작업의 예가 아니어도 함태 광업소를 한 번 돌아본 사람은 그 곳에서 영상작업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영상작업의 기본인 전기는 들어오는지, 전시 기간 내내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을 책임져 줄 사람이 있는지가 선행되지 않고 작업의 기본인 생각의 지평에 지평을 넘은 오직 작품의 내용에만 집중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할아텍에서 미디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할 아트 & 테크놀로지의 약자인 할아텍에서 테크놀로지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기우를 합니다.





[인쇄하기] 2009-12-20 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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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들어보고, 잡지에서나 본....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미술의 장르인거 같습니다. 이런 훌륭한 작업을 하시는 선생님의 글속에 고충이 많이 따르는 것이 읽는 저로서도 엄청 공감합니다. 질문하고 싶은것이 있는데요^^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같은데 어찌보면 개인의 포만감을 느낄 작품인지? 아니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인지?몰려다나니는 소수(서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단체)의 작가들을 위한 작업인지가 궁굼합니다. 아직 이쪽을 공부를 못해서요.... 제가 아는 교수님도 이 쪽 작업을 하는데 참 난해하더라고요. 대충 태백이란 곳에 오셔서 작품을 하려고 한다면 지역민들이 공감하고 참여 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전시기획을 하셨으면 합니다. 훌륭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데 지역에선 지역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그런 기획전은 누굴 위한 것인지 참 궁금하네요^^ 답변 주시면 감사하고요. 안주셔도 됩니다.열심히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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