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정
  98차 철암동행기
  

한번 날리고 다시 쓰느라 글이 늦었습니다.

미술교육전공으로 공부를 하는 중 철암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늦었지요. 멀리서 바라보다가 한 번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철암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참여인이 아니라 참여관찰자의 위치로 나름 제 자리를 선정하고.

그런데... 인생이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고 지금 동행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생각 밖의 일’을 ‘받아들이는 것’, 한번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철암을 가기로 하고 새벽길을 나서던 그날,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전날 저녁까지, 남겨두고 가는 아이와 남편의 주말을 위해 식사 준비해두느라 현실을 떠나볼 수가 없었던 때문입니다. 겨우 연구를 위한 녹취를 준비하고 떠난 아침. 양수리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 가는 내내 아이 학교 제대로 보내라는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서용선선생님과 현용호씨, 김태옥선생님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었습니다. 음...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은 인원이었습니다. 서선생님 동생분이 새로 뽑으셨다는 그 차를 타고 넷이서 출발했습니다. 차에는 비닐과 썬팅 신문이 그대로.. 그만큼 새차였는데. 차가 출발하고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김태옥 선생님이 넌지시 이르셨어요. “알죠? 너무 기대하지 말아요.” ...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많은 말이 그 속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저도 제게 당부하던 말이었습니다.

가다가 조양IC였던 것같은데 잘못 길을 들어 회차를 하고...무사히 철암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가 1시 30분 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철암역 옆 벽화가 일부분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윈도우 갤러리와 철암역 앞 풍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선탄장의 초록 비닐막이.
초겨울답지 않게 맑은 하늘 때문이었을까요? 인터넷으로보던 철암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냥... 철암이구나. 현실속의 철암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이 들어가고 그 나이는 다른 한국에서의 ‘나이듦’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편하기 위해, 불편한 것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좋도록 고쳐버리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토불이식당도 진카페도 없어졌고 천변 건물도 거의 사라지고 두채 정도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랑 두채만이 남은 천변의 집은 처음 철암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그 다단한 세월의 무게와 상처를 부분적이나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삼방동으로 이동한 것이 2시 30분쯤. 한시간가량 후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 헤어졌습니다. 서선생님, 김선생님은 그림그릴 자리를 잡으시고 저도 이리저리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어설픈 감상은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버려진 작은 것들, 살던 흔적들이 다소 남아 있었습니다. 옛집들이 그런 것처럼 키작은 폐가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손전등이 있었으면 더 들어가 보았을 텐데 조금 무서웠습니다. 웬지 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을 얕은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려는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조심조심 다녀보던 중 누군가가 절 뚫어지게 보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둘러보니 잘 생긴 개 두 마리가 고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저를, 마을을 관찰하는 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이지만 절 반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 생긴 진돗개 두 마리 고마웠습니다. 왜냐하면 마을에 있는 많은 개들이 인기척에 짖어대는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듯 경계하는, 위협하는 개가 많았거든요.
삼방동의 폐허가 된 집들, 몇 가구 남지 않은 마을 골목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을 보존해야한다고... 어떻게 살라고. 살 방편도 마련해주지 않고 마냥 보존을 외치는 것도 못할 일이라고. 기술적으로 그리고 통합적으로 잘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쪽에서 삼방동을 어떻게 잘 살려 남길 것인가를 궁리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어떻게 고스란히 혹은 개선을 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디나 그러하듯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건강한 삶의 장면들은 있었습니다. 담장에 말리려 걸어놓은 시레기, 낡았지만 이리 저리 고친 작은 의자, 손 때묻은 대문 등. 미안한 말이지만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을을 나와 구와우로 행했습니다. 사랑스럽고 영리한 개 두 마리가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김대표의 독일여행 이야기와 카달로그 등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가서 맛난 저녁을 먹고 김선생님께서 잡아놓으신 럭셔리 숙소 오투리조트(40평)으로 갔습니다. 김대표와 황원장, 이건우씨가 다시 맥주 등을 사오시고 숙소에서 철암 100회차 행사를 주요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황원장님이 함태광업소 장소 섭외를 확실히(반신반의하셨지만) 하기로 하시고 이건우씨가 조명감독을 맡으시고 김대표가 공연을 맡기로 그리고 저는 처음 참석한 사람임에도 불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과거 경력으로 전시자문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오고간 단군교, 천제, 한글에 관한 새로운 시각 등 김대표님과 두분이 가시고 잠깐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잠자리에 든 것이 2시 쯤인가 봅니다.
야행성이라는 김태옥 선생님과 단둘이 큰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들을 서로 했습니다. 사실 김태옥 선생님은 대학원 93년인가 즈음에 수업에서 잠시 뵙고 처음 뵙는 건데... 별이야기들을 다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들... 오고 가고... 시간이 가는 것이 점점... 부담이 되면서 이쯤해서 자야지 하면 다시 이야기가... 다시 자야지 하면 또. 신기한 것은 김태옥 선생님의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생기발랄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체력이 지극히 부실한 저는 선생님을 따라 밤이라도 새우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자야겠다고 결심한 시간이 4시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침 8시에 일어났습니다. 긴장을 해서인지...긴장된다고 일찍 일어나는데 몸이 협조(?)해주어 다행임을 느끼며... 나이가 드니 정신력도 몸을 따라가버리는 배신을 많이 경험한 터라...
서선생님은 마치 맛있는 조찬이라도 드신 듯 이미 그림 한 점을 끝내셨습니다. 담백한 선과 색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운데 서있는 작은 나무가 꼭 전날 삼방동에서 본 나무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색도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
현용호씨가 젊은이인 관계로 못 일어나 기다리는 동안, 김태옥선생님도 종이를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9시 경 알람을 거의 40분 가량 그냥 틀어놓고 못일어나는 용호씨를 서선생님께서 깨워 짐을 정리해 숙소를 나왔습니다. 김대표와 연락이 되어 호랑이해장국집에서 시원하게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잘 먹고 계산을 김대표와 황원장 두분 중 한 분이 하셨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초보라 그냥 하는대로 따라 잘 먹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원으로. 100회차 논의도 하고, 서선생님께서 기증하기로 하신 마고할미 드로잉을 전달하기 위해 문화원으로 갔습니다. 덩치좋으신 문화원장님께서 약주의 힘을 빌어 전화로 기증을 청해오셨다 했습니다. 문화원장님은 어찌할 바 몰라하며 작품을 받으셨고 이어 둘러앉아 철암100회 행사에 관해 논의를 했습니다. 다소 정형화된 문화원장님의 인사를 뒤로 하고 문화원을 나와 함태광업소로 향했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광업소는 어쩌면 철암에서 마지막 남은 보존할 그 무엇처럼 보였습니다. 그 ‘동생분’의 완전 ‘새’ 차로 올라가시려는 서선생님을 만류하고 걸어서 올라가본 광업소. 전날 삼방동에서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미안함은 이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광업소 내부에 드러난 시각적 상황을 그냥 ‘즐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많은 시간을 살다 남은 기계들과 소품,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포스는 제게는 유럽의 그 어느 성보다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그냥 정리해 조명만 주어도 그 자체로 아늑한 아픔과 자잔한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웬만한 작품은 걸어두면 기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벽에 비디오를 쏘아주면 그야말로 멋진 성체의 느낌이 든다고 철없이 생각했습니다. 이걸 살리지 못하고 그냥 그렇고 그런 체험관으로 새로이 돈들여 단장하려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참... 이런 걸 그냥 두고 강원랜드로, 골프장으로, 스키리조트로 지역을 살리려하는 사람들이 참... 문화원장실에서 들었던 ’호식총‘에 관한 이야기, 근처 산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을 잡아먹었는데 꼭 머리는 남겨두어 머리로 장례를 지내고 그 무덤을 호식총이라하며 철암 근처에 호식총이 제법 남아있으며 삼방동에도 호식총이 있다는 말, 그 호식총과 단군 천제와 함태광업소, 구와우 자생식물원, 그리고 할아텍까지 이들을 이어주기만 해도 철암이 어설픈 개발을 통해 취하려는 경제적인 이익의 몇 배는 올릴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 한 사람없는 철암, 태백, 강원 행정의 현실(서울도 마찬가지일테지요)을 개탄하면서 광업소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행하는 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린 휴게소에서 낙동강의 진원지인 황지 연못 등 철암 주변의 관광명소를 안내하는 안내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전국의 각기 다른 역사를 지닌 장소 그 풍광을 하나같이 똑같이 치장을 했을까? 혹시 한 회사가 전국을 다 독점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렇게 ‘전부 다 똑같이’ 특유의 미감으로 ‘싹쓸이’ 처리를 했을까? 함태광업소의 수갱도, 황지연못의 돌 장식도 모두 이마트 푸드 코트에 차려진 ‘전시용 음식’ 만들듯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한가봅니다. 좀 더 잘 살아야 되나 봅니다. 그러자면 더 기다려야겠지요.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이들이 남아날지... 안타까웠습니다.
100회가 가까워지는 철암그리기에 이제 처음 참여한 사람이 말이 많은 건 아닌지 글 쓰면서 염려가 됩니다. 대충 하기 좋고 듣기 좋은 수준으로 갈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느낀 대로 써보았습니다.
장시간의 운전해주신 서선생님과 (처음 본)용호씨께 감사드립니다.


[인쇄하기] 2009-12-04 2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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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허수정 선생님 글을 읽으니 저도 함께 다녀온듯 합니다.철암역 앞 개울가 집들은 어찌 되었는지... 지난여름 맛있게 먹은 냉면집 아주머니가 궁금하네요...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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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정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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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호 허수정선생님 글을 너무 잘 쓰셔요^^ 다음에도 같이 갔으면 합니다.^^ 근데 서용선 선생님은 철필로 화선지에 난을 칠듯 무서워요ㅠ,.ㅠ 전날 출고한 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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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인 서용선선생과 할아택의 100주년 축하드립니다.글을 읽어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아요. 하지만 서용선선생과 할아택이 지역을 위해 진솔하게 다가섰는지 반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져 이 곳을 밥상 정도로 생각하진 않으셨는지.... 몇 몇 지인들을 통해 내려꼿고 예술이다 라는 말로 치부를 감추며 말입니다.진솔 했더라면 그 많은 세월에 철암의 문화와 태백의 큰 화폭은 지금쯤 완성되어 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현실 속에 녹아있는 지역의 예술인들은 배제되고 몇몇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철암을 어떻게하고 함태광업소를 어떻게 한다는 것은 저 개인적으로 막을 것입니다. 숨김없이 쇼하지 말고 진실한 게임을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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