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예
  철암벽화 작업기록 20071027-28
  




20071026 금요일

호미화방에서 혜인씨와 물감재료를 사며 정선생님께 전화를 건다. 정선생님과 이태량, 차인국은 이미 철암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산 물감재료들을 어떻게 운반할까를 고민하다가 이경희교수님께 전화를 드린다. 토요일 아침일찍 이태란선생님과 올라갈 예정이며 몸이 안좋으신 듯 하다. 일단, 나는 토요일 오후에 출발한다. 오늘 산 슈미케유화물감과 골덴아크릴을 내것인 양 흐뭇히 짊어지고 어떻게든 가는것으로.


20071027 토요일

이른 아침, 엄마의 제안으로 바퀴달린 여행용 짐가방안에 물감재료를 넣는것으로 나의 고민은 해결. 이제 지구끝이라도 갈수있을것 같은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서울지하철 계단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천국의 계단같다. 오후 2시 일을 마치고 오후 6시 15분 태백행 버스에 몸을 싣고 물감을 싣고 출발하자마자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하루를 긴장한 탓일까 밝은 달을 하염없이 보다 잠이 든다.

휘엉청 밝은 저 달은 고향의 달일세. 고향의 달일세.
천리를 떠나와도 날 따라오네. 날 따라오네.
고향 산천 그리는 이 마음 이상 변할리 없네. 변할리없네.
저 달을 볼 적에 문득 떠오르니...


밤 9시 30분이 되어 마중 나와주신다는 이태란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버스시간 3시간 30분을 지나 잠깐 졸음에 깨어 눈을 뜨니 내 옆좌석의 남자와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따라 배낭을 짊어지고 내리는 사람들 틈에 서있자니 내 앞의 좌석들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태백이 종점일텐데... 그들은 마치 죽은 시체처럼 핏기없이 놓여있다. 내려서 짐을 꺼내들고 서니 이곳은 신고한. 아뿔사. 어둠이 뎅그라니 터미널만 드러내놓고 있다. 결국 밤 10시가량에 태백행 버스를 다시 타고 태백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정일영,차인국과 함께 숙소 수목원으로 무사히 도착. 하루종일 작업에 지친 이경희, 이태란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다 새벽 1시 취침.


20071028 일요일

아침 6시 30분, 눈이 떠지다. 오늘도 류광운 사장님이 일찍 출발하시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에 잠이 달아나 씻고 준비하다. 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이경희,이태란선생님이 잠을 깬듯하다. 아침잠이 많다는 이경희 선생님과 부지런히 아침 수다를 떨며 상쾌한 태백의 찬기운을 마시고 아침8 시 출발하여 근처 황태해장국집 에서 밥 한공기 반을 해장국에 말아 먹는동안 류광운사장님이 잠깐 들러 가시다. 식사를 마치고 전번에 만난 김영조다큐감독와 통화를 하고 철암에서 30분후에 만나기로 약속. 식사를 하고 이경희, 이태란, 진예 일행은 안개가 내려앉은 태백의 풍경에 감탄하며 철암역에 도착하다.

이경희선생님의 작품은 현재 설치작품이 걸려있는 외벽에 페인트칠과 드로잉이 된 상태이다. 지난 주에 못보던 발과 사다리가 그려져 있다. 그게 무얼 뜻하는걸까. 이경희 선생님이 입은 오늘의 녹색과 연두빛의 옷은 오늘 물감의 주조색이 될듯하고 그 색을 칠하여 보겠다고 하신다. 녹색과 연둣빛. 이태란 선생님은 오늘 이경희선생님의 작업을 돕기위해 함께 아시바위에 올라가 있다.

아침 식사를 안하신걸까. 우리일행보다 일찍 도착한 정일영, 이태량, 차인국과 인사를 나누고 모두 각자의 작업을 시작할 무렵 천변다리 방향 인도에서 은정씨가 걸어오고 있다. 반갑다. 오늘 작업의 관건은 외국 작가들의 작업이다. 다른 작가분들은 모두 작업을 이미 진행해오고 있고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으나, 외국작가들의 작품은 아직도 준비단계이기때문에 그것을 부지런히 작업해야 한다. 마리루이앤더슨과 크리스선생님의 작품 팜플렛을 보고 정선생님의 지시를 듣는다. 일단 마리선생님의 글자 설치 오른편 벽면의 가로 5미터, 위로 두칸 반정도 에 엷은회색으로 수성페인트칠을 하고 그 위에 글자를 써넣게 될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선생님의 작품은 현재 6개의 원에 우레탄이 칠해져있는데 그 위에 선생님이 드로잉하신 도안을 그대로 그려놓으면 되는것이다. 김영조감독이 도착하여 앤디선생님의 거울을 재단하기 위해 그의 작업실로 10시가량 가기로 이야기를 하고 그 동안 마리선생님의 벽에 수성페인트칠을 하기 전에 벽의 먼지제거작업을 시작하다. 제일 힘에 부치는 작업이다. 아무나 주지 않는다는 마스크를 류광운선생님께 받아 쓰고 부지런히 먼지제거를 하는동안 10시가 조금 넘어 김영조감독이 도착하여 열쇠를 받아 이태란 선생님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서 아크릴거울 재단을 하다. 오늘은 각종 먼지와 싸우는 날인가보다. 아크릴을 재단하며 나오는 미세한 가루들때문에 이태란 선생님이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작업이 대충 마무리가 되고 몇 개의 본을 다시 뜨고 재단을 하여 끝내자, 오전 11시 36분이 되가다.
자. 이제 점심을 먹고 마리선생님의 작업을 하면 된다. 이태란 선생님 다음으로 도착한 차인국과 함께 김영조감독의 거실을 쓸고 아크릴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철암역에 도착. 정선생님은 오늘도 아시바위에 서서 작업을 하신다. 왠일인지 오늘은 좀 여유가 있어보인다. 아마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이태량 선생님은 오늘도 벽에 가까이 서서 붓칠을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들. 그림이 조금씩 달라진다.


12시가 넘어 이경희, 이태란 선생님이 태백에 갔다가 오뎅과 김밥을 사오셨다. 류장복선생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신다. 신토불이에 9분이 모여있다. 오늘의 작가 구성원. 이경희, 류장복, 정일영, 이태량, 이태란, 류광운, 진예, 차인국, 이은정.
너무 많은 반찬과 음식에 버거워 하며 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1시 반이 되어간다. 정선생님이 만들어놓은 정화이트 물감을 사용하여 마리선생님의 벽면을 칠할 것이다. 2시부터 4시까지 벽면을 칠한 후 계획대로 4시부터 6시까지 크리스선생님의 작품드로잉을 할 것이다. 서선생님의 주문으로 사온 저 좋은 물감을 언제 쓸까의 즐거운 고민을 하며 마리선생님의 벽면을 칠하는 동안 너무 색상이 희다고 하여 정선생님이 먹물을 가져와 페인트통에 짜 넣는다.다시 회색의 벽면을 칠하는동안, 은정씨는 류장복선생님의 타일부착을 돕고 이태란 선생님은 이경희 선생님의 페인트작업을 도와드리고 마리선생님의 벽면페인트칠을 거들어주었다. 간간히 차인국이 들러 커피도 갖다주고 촬영도 하고 김밥도 주고 말도 걸고 가고, 이태량선생님이 도로 건너편으로 건너가 마주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고심하며 바라보고 차인국, 정일영선생님과 간간히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오후 4시가 되니 마리선생님의 벽면에 쓰일 페인트가 다 떨어질 무렵에 페인트 칠은 끝나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벽면의 가로선들을 어떻게 깔끔하게 선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 결국 물감도 없고 시간도 모자르다는 변명으로 마리선생님의 오늘 작업은 마무리하고 크리스선생님의 드로잉이 시작됨. 오후가 되니 바람이 분다. 도로 변에 심어져 있는 붉은 단풍의 나무가 바람에 날리며 내게로 날리어 온다. 이런 상황이 행복한거지. 그 시간성속에서 나는 아득함을 느낀다. 내가 지탱하고 있는 사다리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대어 살아있으며 무언가에 골똘해있다....

이경희선생님이 갤러리에서 꺼내온 크리스선생님의 작품을 들고 와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신다. 원의 바탕칠 없이 드로잉을 하여 라인만으로 구성하자는 것. 6개의 원의 철판위에 불과 달, 석탄을 캐는 도구와 해바라기, 집과 나무를 그릴 것이다. 목탄과 젖은 수건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 사다리가 불안하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어 지고 어둠이 연기처럼 스며들고 있다. 철암역 주차장앞에 이경희선생님과 정일영 선생님의 작업현장이 멀어져 보이고 어느틈에 내 몸이 어둠에 담가져 있는 기분이 들때즘이 되니 마지막 나무를 그려내고 있었고 노란 가로등이 달빛처럼 느껴진다. 바람이 많이 불고 어둠이 내려앉자 작업철수가 시작되고 다시 창고 문턱이 바빠진다. 정선생님이 다했냐며 말을 걸어왔을을땐 막 드로잉이 끝나고 있었고 사다리와 물품들을 들고 바삐 창고쪽으로 향한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달려가며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04분.


이경희 선생님의 설치물의 색상은 역시 연두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좀 탁한 색상이 되어 있었다. 정일영선생님의 작업은 거의 마무리가 되는듯했고 그동안 초조해하던 선생님의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이태량 선생님의 작품에 두 그루의 나무는 다시 녹색빛으로 그려져 있었다. 고민의 흔적이 지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듯 하여 안도감이 든다. 류장복선생님의 타일작업이 진행되던 동안 나는 선생님의 작업의 끝이 어디즈음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귀가 하는동안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이미 관통하여 끝을 알고 시작하였으니 끝이라는 단어의 무의미함을 말씀하셨다. 과정의 흐름만이 진행될 뿐이라고,


오후 7시 가량 태성실비

모두 오랜작업으로 지치셨던지 태성실비집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갈비살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 작업에 대한 계획과 약속들을 하였다. 식당으로 늦게 도착한 류광운 사장님은 서용선선생님과의 통화 후 마리 벽면은 광부들과의 인터뷰 내용(철암의 과거와 현재)을 벽면에 기록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한, 이틀후가 될 간담회건과 - 그 약속은 오늘 문자로 오는 일요일 철암에서 진행되는것으로 변경-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일 수 있는 날짜들의 의견을 교환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밤 8시가 되어 가다.

밤 8시 다시 출발

류장복선생님과 내가 출발하고, 이경희,이태란 선생님이 출발하고 정선생님과 차인국이 출발하고 류광운사장님과 은정씨는 다시 태백으로 돌아가고, 이태량 선생님이 출발하였다.

먹물속으로 다시 담가질 것이고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고 길고 긴 도로의 들뜬 회색빛 도로위로 달리고 영월을 지나 간간히 폭우와 개임의 상태. 무거운 주제와 졸음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휘엉청 밝은 달과 함께 집으로.



[인쇄하기] 2007-10-29 23: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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