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장복 [ E-mail ]
  6.16-17 철암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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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17 철암그리기

2007.6.16 20:11 상철암, 카드보드에 오일 바와 목탄, 39x54cm


6.16 토요일. 이영미님이 텐트를 전해주기 위해 집으로까지 찾아왔다. 고맙다. 꾸물대다 오후 1시 반쯤 출발했다. 환한 낮의 정기를 마시며 럴럴 달렸다. 상동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로 접어들자 어둑해졌다. 정적이 감도는 산속이 낯설다. 금강골 휴양림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상철암 갈림길에서 그림을 그렸다. 되는대로 카드보드를 인도에 펴고 오일바를 그어댔다. 가파른 뒷산이 덩그렇다. 그 앞에 납작하게 일렬로 집들이 늘어서있다. 썰렁하지만 그래도 예스런 동네 분위기가 남아있다. 철암역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 곳이 철암의 중심지였다가 상철암과 하철암으로 구분되었다. <20:11>

캄캄한 휴양림에 사람들로 북적댔다. 삼겹살의 잔해가 철망 위에 몇 점 남았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서성였다. 그들의 얼굴을 채 분간하기도 전에 방안에서 정현영의 벽화 특강이 시작되었다. 필라델피아 커뮤니티 벽화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작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강의였다. 몇 가지 제작기법과 그에 따른 미디움의 다양한 활용방법을 비롯해 현실적인 비용 산출방법을 설명했다. 작가주의의 태도에서 벽화를 실현하는 경우와 벽화의 실현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향유를 이끌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가 다르다. 전자의 작가주의는 기념비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시하여 주민들의 취향이 배제될 수 있는 반면에 후자는 벽화놀이?의 흔적으로서 몰취향적 선전화에 불과한 미적 수준에 만족해야 하는 수가 있다. 현시점에서 철암이라는 장소성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지, 결국 감독의 권한과 책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특강이 끝나자 김남표의 권유로 이강우와 구와우로 넘어갔다. 구와우의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2007.6.17 08:50 양귀비꽃 너머에 구와우 아침, 카드보드에 목탄과 연필콘테와 파스텔, 54x39cm


6.17 일요일. 이른 아침에 이태란과 특강했던 처자가 구와우에 왔다. 시끌시끌하더니 조용해졌다. 이 참에 일어나 구와우의 아침에 발을 내밀었다. 주저앉은 발끝에 양귀비가 투명한 빛깔을 발하며 시선을 부여잡았다. 숲의 나무가 저마다 다르게 뭉쳐 보송보송하다. 하늘에 구름이 크림처럼 몽실몽실하다. <08:50> 산보에서 돌아온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맑은 공기를 갈랐다. 얼마 후 나머지 일행이 들이닥쳤다. 은회색의 머리카락이 성성한 안성복 선생님이 반갑다. 한 학기 동안 조소를 배웠던 옛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김창세 선생님을 비롯해 목포그리기의 목포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그들은 목포에서 철암까지 차로 9시간을 달려 왔다. 경상도에 가까운 태백의 사투리와 호남의 방언이 섞이자 특유의 억양으로 입체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다. 존 포일의 꾸부정한 몸짓도 보였다. 그의 사생화를 이번에도 보았지만 사물의 윤곽이 채 형성되기 전의 이미지가 구분이 모호하다. 그림보다 그의 감각이 흥미롭다. 구와우의 오수를 즐기며 커다란 버드나무의 찰진 잎사귀를 목탄으로 찍어 종이 위에 두들겼다. 출렁이는 구름과 반짝이는 햇살이 살아있는 생물을 한데 모아 커다란 호흡을 지어내었다. <13:54>


2007.6.17 13:54 구와우, 종이에 목탄,

홍천으로 이동했다. 재작년 여름에 묵었던 정섭이네 내촌 마을에서 천정이 10미터에 달하는 농협 곡물창고의 문화전시공간 개축을 기념하여 ‘문화라는 몸짓으로’ 라는 제하의 전시를 연다고 한다. 입체와 평면작품으로 김태호, 김창세, 오원배, 서용선. 네 사람이 출품했다. 말끔히 청소를 하고 전기를 끌어와 임시 조명을 비추고, 창고 앞에 간이의자와 탁자를 준비하고 고기도 굽고 있었다. 평론가 이인범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칠순의 노신사가 축사를 했다.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때는 먹고 살기 위해 곡물저장고를 지었고 그것을 기념하여 이 농협창고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지금은 정신과 영혼을 살찌우게 하기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작가들의 소개와 더불어 뉴캐슬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영국 작가 크리스 존스의 비디오 영상 작품이 15분정도 상영되었다. 간략한 작가의 설명이 있었다. 시간의 문제로 공간을 다루는 세련된 작품이었다. 이어서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마을 주민이 올라가 망치로 부수자 커다란 소음을 내며 조각들이 떨어졌다. 뚫린 지붕으로 첨단의 레이저 무기마냥 빛이 바닥에 꽂혔다. 장관이었다. 지붕 걷어내기가 위험한 일거리로 보이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도예가 장수홍의 퍼포먼스, 비움의 그릇을 위한 통나무 가르기가 다음 순서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세로 방향으로 갈랐다. 가느다란 허리의 마른 몸내의 사내가 신중하게 똑바로 선을 그었다. 마른 나뭇잎이 오그라든 것 같은 그의 목기를 만드는 첫 번째 순서에 다름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서둘러 급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산골동네에서 벌어진 문화행사의 신선함이 훨씬 앞질렀다.
오프닝이 끝나고 삼겹살과 막걸리가 사람들의 손에서 입으로 부지런히 운반되면서 동네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졌다. 그간의 정섭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의 작업실에 가보았다. 한 건물에 목가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동전의 양면인가, 전문가의 냄새를 풍기는 만큼 풋풋함은 사라졌다. 깜깜한 밤하늘 아래 한옥의 조그만 툇마루에 걸터앉아 이수학의 일행과 낄낄거리며 잡담을 즐겼다. 이윽고 마리 루이 앤더슨과 이태란을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한국말로만 주로 이야기해서 그녀에게 미안했다. 이태란의 차를 세워둔 양수리에 도착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게 작별했다. 이태란의 성화에 못 이겨 마리와 몇 마디 나누었다. It's silent night! Good night! 섬세한 감각을 지닌 지긋한 중년의 그녀가 충분히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터. 졸린 눈을 부릅뜨고 일산까지 한달음에 내달렸다. 2007.7.27 20:24 륮.






[인쇄하기] 2007-07-28 13: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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