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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토요일
새벽 6시 눈이 떠지다. 잠이 오지 않는다. 초침이 머리맡에서 움직이고 눈을 감기도 뜨기고 애매함.
결국 일어나서 철암으로 떠날 준비를 함.
아침 7시 30분 철암행 시외버스에 오르다. 널찍한 공간과 깨끗한 실내, 건너편 좌석에 앉는 한 아주머니는 비행기 탄것 같다며 발전된 버스실내에 감탄을 연거푸 하신다. 물론 나도 만족한다. 인도에서 35도의 찌는듯한 열기에 에어콘도 없는 앙상한 낡은 버스에 몸을 씻고 숨이 푹 커진 의자에서 덜컹거리며 5시간동안을 푸네시내관광을 하던 기억이 바로 몇 개월전이니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라고 잠깐 만족한 기분으로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댄다.
오후 12시 47분 태백에서 버스로 철암역 도착.
철암역을 바라보니 역 갤러리에 그림이 바뀌어있었다. 흑백의 어울림, 2001~2007 철암진경을 제목으로 류장복선생님의 그림이 전시중이었다. 이 전시회는 근처의 석탄박물관과 철암역 갤러리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21일인 오늘부터 한달간 전시 될 예정이다. 꾸밈없어 보이는데 근사한 그림. 싱거운듯 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역에 도착하여 서용선선생님과 통화. 4시경에 철암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모처럼 혼자 주위를 어슬렁거려본다. 간간히 빗방울이 옅게 떨어지고 철암역 앞에서 역전슈퍼를 스케치하고 근처 호산나 상회 뒤편의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낡은 회색 건물 뒷 켠으로는 밝고 깨끗하게 꾸며진 작은 집들이 나타난다. 여름의 풀들이 여러 화분에 나뉘어 심어져 있고 잘 자라나 보이니 이곳 주민들의 마음도 소란스럽지 않고 안정이 되어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후 3시가 넘으니 낮잠을 한 숨 주무시고 나오신 젊은 할머니 두분이 나른한 걸음으로 그림 그리고 있는 나를 흘낏 보시곤 내 맞은편 평상에 앉아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누신다. 세 분의 할머니 중 한 할머니가 내게로 다가서더니 뭘 그리 그리냐고 하시며 '어유 그림도 잘 그리네. 복숭아 나무 그리는거여? 하시며 손으로 나무를 가리키신다. 그것이 복숭아 나무였는지 그때 알았다. 한 참이 흘러 할머니 한 분이 내 곁으로 한 보따리의 검은 봉지를 양손에 들고 오시며 '아이고 오늘 막걸리를 조금 먹었더니 취하네 하시며 내게 다가시오더니 어디서 왔냐며 . 할아텍을 아시는지 그림도 그려주고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시며 언제든 당신네 집으로 와서 자고가라고 돈 한푼 안받겠으니 ... 할미 혼자사니까 걱정말라고 하시며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복숭아 나무 밑의 단칸방문을 열쇠로 열고 훌쩍 들어가신다.
오후 4시 가량이 되어 김용임님을 만나 석탄박물관으로 향하고 서용선선생님께 문자를 넣는다. 빗방울이 빈번해지고 도착한 석탄박물관 중앙 홀에는 류장복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2층 높이까지 양 벽에 걸려진 많은 그림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작가와의 대화에 앞서 석탄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때 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의 석탄산업의 역사. 끊임없이 광부들을 괴롭힌 진폐증과 광부들이 사용한 도구들. 캄캄한 지하에서 사투하며 생존을 위해 일 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타원으로 길을 만든 박물관을 둘러보다 쓰러진 광부와 천사가 그려진 액자속에 그려진 그림이 나를 놀라게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 류장복 선생님의 열네번째 개인전 철암진경 - 작가와의 대화가 석탄박물관 영상실에서 갖게 되었다. 흐린 날씨에도 찾아온 사람들. 작가의 그림영상을 보기 전 흥미로운 질의시간을 갖은 후 30분가량 2001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작업을 스캔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실로 많은 그림들이 그려졌고 그 세월동안의 작가는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잘 그리게 되었다' 라고 말한다. 그 그림들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는듯 했다.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30여분의 시간이 훌쩍 지난다.
저녁 7시가 되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동했고 근처의 보리밥집에서 곤드레비빔밥으로 19명의 사람들이 식사를 했다. 당 초 예상했던 15명을 넘은 인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혜인과 장성아님이 초등학생을 상대로 미술강의를 마치고 온 직후여서 많이 배고팠었다며 맛있게 식사를 한다. 8시가 되어 고원자생식물 휴양림에서 모이기로 하고 김용임님과 그녀의 남편, 장성아, 이혜인은 차로 이동하여 먼저 도착한 서용선교수님과 정일영, 차인국, 류광운선생님과 합류하였다.
숙소 303호에 도착하니 류광운 선생님은 저녁을 먹기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고 서용선선생님은 오늘 낮에 철암에서 열기로 한 벽화동의 주민 공청회가 그 곳 주민들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며 아쉬워하셨고 주민들이 벽화작업에 관심이 없는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서용선선생님은 8월 3일부터 말일경까지 중국에 가시게 되었다고 하셨고 8월 4일부터 구와우에 있는 할 갤러리가 새롭게 단장을 하여 할 갤러리 개관기념으로 전시회를 한 달간 열기로 하였으며 지난 번 헤이리에서 전시했던 철암그리기전 작품들과 추가되는 작품들을 모아 새롭게 전시회를 열게 된다. 또한 이태량님이 제작하여 보내 준 벽화 전시 포스터를 펼쳐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일정에 관한 논의들을 하였다.
10시가 되어 숙소에 도착해 장성아 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와 이혜인은 산책을 하며 모처럼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태백에는 모기가 살지 않는것으로 유명하다는 말. 여름이어도 시원하기 때문이란다. 역시 낮의 찌는 듯한 더위는 사라지고 시원한 냉기에 긴소매가 생각났다. 숙소앞에서 만난 정일영님과 차인국, 김정락님과 맥주 한잔을 하고 서용선선생님이 계신 숙소에서 류광운선생님, 류용문님, 김정락, 정일영, 차인국님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을 위해 취침.
7월 22일 일요일
아침 8시.
아침 6시부터 부지런히 일어난 윤선희님의 기척이 느껴진다. 뉴욕에서 온지 몇일 되지 않아 아직 시차적응이 안된다고 하시더니 그래서일까. 눈을 떠보니 다른이들은 오늘따라 늦장이다. 어제의 피로가 컸었는 듯.
문을 나서니 낮은 돌 담에 류장복선생님이 잠을 덜 깨신듯 앉아계셔서 음료수를 전해드리고 어제 작가와의 대화에서 다뤘던 얘기를 넌지시 여쭤본다. 어제 새벽녘에 잤는데도 잠을 일찍 깨셨다며 이제 잠이 없어지는가... 라며 아쉬워하면서도 나의 질문에 말씀을 참 잘 해준다. 훌륭한 선생님의 화교술에 감탄을 거듭하며 흥미롭게 경청하고 있는동안 선생님의 그림의 공간감이 갑자기 확장되어 보이는 느낌! 과연 장복교주라 할만한 언변이십니다. ^^
신토불이에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차를 나눠 타고 이동을 했다. 나와 이혜인, 장성아, 윤선희 님은 씩씩하게 류광운 선생님의 트럭 뒷칸에 몸을 싣고 야생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는지 오랜만의 낯선 경험에 즐거워했다. 신토불이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이강우님과 한문순님과 몇 분은 나누어 철암 주변을 돌아보러 가고 몇 분은 벽화작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 몇개월 뒤면 철암역 왼편으로 가로 4미터의 벽에 벽화가 그려질것이다. 그리고 철암역에서 왼편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벽에 이혜인,장성아, 배석빈님이 벽화를 장식한다고 하니 이 곳은 거대한 그림속의 공간이 될 듯하다. 부디 철암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또한 작업이 별탈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오후 1시 반이 되고 나와 이혜인님은 류용문, 배석빈, 김정락님과 함께 구와우로 먼저 이동하였고 뒤이어 류광운선생님과 윤선희, 장성아, 서용선선생님과 차인국씨가 도착하였고 구와우에 계신 김남표사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드넓은 구와우에 해바라기는 다 심어졌고 뜨겁고 맑은 햇살이 천지에 숨을 불어 넣고 있었다. 두 달만에 보는 구와우는 아름답기 보다는 너무 이뻤다. 조금씩 키가 커지는 해바라기와 달라지는 자연이 기특해보였는듯하다. 할 갤러리도 새롭게 단장을 하느라 한창 분주하다. 지붕과 외벽도 다시 바뀌었고 안의 인테리어가 이전의 텅빈공간에서 짜임새있는 공간분할을 하고 있었다.
서용선선생님은 망생이 작업준비로 흙을 섞고 계셨다. 가마터에 가마를 짓고 도자를 구울 거라고 하신다. 망생이는 금요일부터 내려온 일행들이 이천에서 황토와 흙을 가져다가 작업을 하였으며 어제는 100개의 망생이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오늘도 구와우에 모인 사람들은 류광운, 서용선 선생님의 지도하에 망생이를 만들었다. 망생이에는 진흙과 흙과 짚의 배합이 잘 되고 반죽이 잘 되어야 부서지지 않는다. 장성아님은 명품 망생이를 만들겠다고 정성스럽게 반죽을 오래 만지고 온몸에 흙을 묻힐까바 안만질꺼라던 윤선희님도 어느새 손에 망생이를 들고 있었고 류광운선생님은 밀가루 반죽하듯이 쫄깃쫄깃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중간에 류장복선생님의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은 일행과 함께 구와우를 둘러보고 떠나시고 우리는 다시 망생이 작업을... 노동의 땀은 먹는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우리는 서용선선생님께 새참을 요구하였고 망생이 작업이 끝난 후 옹기종기 모아둔 망생이처럼 모여 짜장면과 콩국수를 먹으며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후 4시가량이 되어 이번 철암그리기 일정을 마무리 하고 각 차에 올라타고 태백역에서 버스탈 사람들을 내려주고 나머지 일행은 귀가길에 오른다.
이번 철암일정도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고 많은 일들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다시 8월전시가 시작되면 많은 일행들이 또 분주히 철암을 오고 갈 것이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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