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장복
  나오시마 문화촌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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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토요일. 이른 아침 6시 45분. 공항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을 향했다. 나오시마 문화촌 답사 일정을 소마(SOMA) 아카데미회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다. 공항은 붐볐다. 아침 10시를 전후해서 이륙하는 비행편이 많은 모양이다. 그럭저럭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기내에 올랐다. 그런데, 10시 15분 출발시각이 임박했는데 일행 가운데 한명이 탑승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3,4,5,6십대에 걸쳐 고루 분포된 일행 16명 가운데 20대가 빠지게 되었다. 공항 쇼핑을 위해 일지감치 무리를 떠난 그녀가 탑승 게이트까지 꽤 먼 거리를 예상치 못했을 거라며 모두 아쉬워했다. 비행시간은 2시간이 채 안되었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다카마쯔 공항에 도착했다. 조그만 공항의 검색원은 일일이 여행가방을 뒤적거렸다. 일행 중 한 분이 불만을 터뜨리자 마중 나온 다른 여행사의 여성가이드가 밝은 목소리로 얼마나 한적하고 무료했으면 그러겠느냐며 이해를 구했다. 말의 기술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흐린 날씨를 달렸다. 차창으로 일본식 2층짜리 회색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번화한 거리가 아닌데도 거리의 구석구석이 깨끗했다. 집도 사람도 차도 많지 않았다. 시간을 거꾸로 여행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예스런 거리는 차분했다. 일본식 식당에 도착했다. 하이, 아리가토 고자이마쓰, 일본여자 특유의 높은 톤에 염통이 간지럽다. 여행의 첫날 들뜬 마음에 모두 얼굴이 밝았다. 세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식사 후 어떤 회원이 물었다. ‘남자라곤 혼자라서 그렇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을 다잡아먹고 있던 중이었다.

조각가 이사모 노구치(1904-1988)의 작품과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적한 시골동네였다. 염전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곳은 뒷산의 아름드리 돌을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염전 대신 집들이 들어섰고 골프연습장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돌산은 절반 가까이 파헤쳐졌다. 브랑쿠지의 후예쯤으로 보이는 조각가 노구치의 작업실이 산기슭에 있었다. 자연을 파헤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조각 작품을 만든다는 게 혹여 넌센스는 아닐까, 공연한 데 생각이 미쳤다. 마주친 노구치의 작품들은 자연의 결을 쫒는 미니멀한 추상조각이었다. 150여점에 달하는 석조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작업실에는 작업 중에 있거나 원석 그대로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완성을 의미하는 서명이 각되어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하긴, 원형의 추상성을 추구하는 작업의 성격상 완성과 미완성의 경계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특히나 생전의 작업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마당에 그 조각가의 정신적 여정을 따라 가보는 것이 관자의 당연한 도리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기어가는 그의 장인적 손매가 돋보였다. 돌아 나오는 길 건너편에 산기슭에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는데 그것도 작품이라고 했다. 일행 가운데 누가 말했다. “저런 건 우리나라에 가면 사방 천지에 널렸어, 규모도 훨씬 크고.” 그대로 내깔겨 두는 듯 산수를 품는 우리의 전통적인 산수정원의 경지를 노구치가 알았을까?
이 미술관은 사기업의 소유로 2만원이 넘는 비교적 비싼 입장료를 받고 운영되고 있었다. 이사모 노구치는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주로 했다고 한다. 전통 수공예와 접목시켜 현대화시킨 아카리 종이조각이 유명하다. 인사동 어디쯤에서 흔히 보았던, 한지로 둥그렇게 싸 발라 만든 커다란 등이 그의 작품에서 연유한 것인가 보다. 중년의 관리인 여자가 사소한 것까지 진지하게 설명하는 동안 한 청년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진촬영 및 기타 행위를 제지했다. 관람하는 동안 중년의 아저씨가 계속 싸리비질을 했다. 결이 선명하게 드러난 흙을 밟고 지나가면 곧 다시 쓸었다.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담벼락에 핀 야생화였다. 소담스럽게 핀 엉겅퀴 같은 꽃더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잘 가꾸어진 화분 꽃으로 보일 정도로 주변이 말끔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채로 철부선에 올랐다. 커다란 배는 서서히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배 안에서 일본씨름 스모를 tv로 관람했다. 거대한 몸집을 굵은 끈 팬티로 드러낸 채 동그란 모래판 위에서 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보며 눈싸움을 하더니 이윽고 돌진했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체구가 큰 사람이 모래판 밖으로 떨어졌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약간의 호흡곤란을 느꼈다. 형식의 거창함에 비해 결투는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상대를 금 밖으로 밀어내기. 얼마나 간단한 룰인가. 시커먼 구레나룻에 넘치는 살들을 거느리고 거구를 꿈쩍거리며 위세를 한껏 떨치더니만, 고작 상대를 밀어내는 거였다. 이 순진무구한 놀이방식에 놀라 웃음이 밀려나왔다. 주변을 살폈더니 나 말고 웃는 사람은 또 없었다.

나오시마 섬에 도착했다. 숙소는 별관과 본관 그리고 신관 3군데였다.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미술관에 본관 숙소가 있고 별관은 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섬의 꼭대기에 있었다. 신관은 일년 전에 숙박전용시설로 지어졌다. 별관숙소에 가보았다. 하루 숙박료가 55만원이다. 가운데 긴 지름이 20m쯤 되고 짧은 지름이 10m쯤 되는 도넛츠 모양의 타원형 건물이었다. 마찬가지로 타원의 얕은 분수대가 가운데 있었다. 하늘이 분수대의 물에 고스란히 비쳤고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계곡을 흐르는 시내를 연상케 했다. 바다를 향해 방문이 4개인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리차드 롱의 띠 그림이 하얀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특별히 띄는 것이 없었다. 싱글 침대 둘, 사각 탁자와 의자 네 개, 긴 소파 한쪽과 간이의자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마다 너무 평범하여 궁색해 보일 지경이다. 전면 창으로 자연이 하나 가득 들어왔는데 버튼을 눌렀더니 큰 창이 통째로 아래로 내려갔다. 실내와 풀밭 사이에 앉아서 둘러보았다. 바다와 침대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아! 더할 나위 없는 자연의 품이 느껴졌다. 요란한 샹들리에를 연상했던 나의 속물취향이 부끄러웠다.

별관에서 묵을 커플이 제공한 검붉은 와인을 앞에 놓고 첫날 저녁을 양식으로 먹은 후 신관에 여장을 풀었다. 샤워를 한 후 음악을 틀었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이 보였고 밤바다에 하얗게 불 밝힌 배가 천천히 지나갔다. 가까운 분수대의 물소리가 또 귀를 씻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tv가 없다. 확신에 찬 배려다. 저마다 맥주를 꺼내 들고 내 방에 모였다. 재즈가 흐르는 밤을 배경으로 담소를 나누었다. 환한 표정에 샘솟는 기쁨이 엿보였다. 훌훌 벗어던진 해방감에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그들에게 되어 있었다.


5.20 일요일. 어제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눈을 떴을 때 개운했다. 맑은 공기와 자연의 소리, 푹신한 침대가 결정적으로 숙면을 취하게 했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뷔페식 식당에 들어섰을 때 벽면전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심플한 감청색 바탕에 전통 고가구의 모서리 장식을 닮은 다섯 개의 유리조각을 붙여 놓았다. 창가에 앉아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멀리 지평선이 바깥쪽으로 길게 깔아놓은 마루바닥의 선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교육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각자의 생생한 경험을 근거로 꽤 오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교육이 방목을 말하는 게 아니듯이 제도교육에서도 절제의 미덕이 통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식사 후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망망대해를 연필로 끌쩍거려 보았다. 이 그림이 이번 여행에서 유일했다. 가는 곳마다 너무 인공적으로 다듬어 놓아서 그런지 그림의 충동이 일지 않았다.

섬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작품들을 돌아보았다. 월터 드 마리아의 거대한 구체가 한쪽 벽이 터진 지하에 설치되었고 수평선 작품의 모니터가 해변에 보였고 배를 조각내서 섬 여기저기 놓은 작품이 있었다. 발걸음은 본관으로 이어졌다. 웬만한 현대작가의 작품이 거의 있었다. 스텔라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다. 세간에 말이 많았던 스텔라의 20세기를 상징하는 기계꽃이 떠올랐다. 중간에 한 쪽 벽 전체가 30여 미터가량 되는 유리벽을 손으로 밀었더니 레일을 타고 서서히 열렸다. 순종적인 초식공룡이 떠올랐다. 밖에는 하늘이 보이는 사각 홀에 인절미처럼 주물러놓은 커다란 돌이 두 덩어리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사각의 가장자리에 앉기도 하고 돌 위에 눕기도 하면서 파란 하늘을 만끽했다. 관람동선의 끄트머리에 의미심장한 백 개의 단어를 번갈아 네온사인을 밝히는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을 배치했다. 둥근 홀의 뾰족한 천정에서 자연광이 쏟아져 내렸다. 지하와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건축의 실내 구조는 매우 동적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레스토랑이 연결되어 있었다. 앞이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에서 음료를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 회원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수학여행 온 소녀들처럼 사진 찍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주변에서 열정이 식어버린 회색도시의 냉동인간들처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버스로 이동하여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200년 이상 된 목조건물이 즐비했다. 집이 비워지면 작품을 공모하여 영구히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마을 입구에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원통형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간단한 디자인이었지만 미적 균형이 뛰어났다. 첫 번째 아트하우스는 대나무가 심겨져 있는 정갈한 마당을 지닌 큰 집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안으로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얼마동안 지나자 희미한 푸른빛이 저쪽에서 보이기 시작했고 그 빛을 따라 다시 나올 수 있었다. 마음의 빛을 견인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혀졌으나 체험의 과정이 다소 어수선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척을 받아들였다. 나는 백열등의 노란 불빛을 줄곧 보고 있었다. 두 개의 불빛은 인체의 둔부를 연상시키며 아른거렸다. 줄서는 동안 내내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전통적인 일본기와집과 정원에 눈이 끌렸다. 인간의 수명을 훌쩍 너머서는 세월이 거기에 묻어있었다.
두 번째 아트 하우스는 야트막한 동산 위에 있었다. 신사의 자리에 하얀 강돌을 깔고 유리로 만든 계단을 지하에서부터 지상의 목조로 연결시켜 놓았다. 우회하여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니게끔 좁은 지하의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5명씩 짝을 지어 후레쉬를 들고 토굴에 들어갔다.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고 유리계단이 지상에서 내려와 있었다. 돌아서 나오는 좁은 통로에 어항의 물처럼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세 번째 아트 하우스는 캄캄한 집안의 네모난 마당에 물을 채우고 물 속에, 순환의 의미를 위해 0을 제외하고, 1에서 9까지 색색의 디지털 숫자를 밤하늘의 별처럼 혹은 피어나는 연꽃처럼 시간차를 두고 점멸시켰다. 좁은 마루에 쪼르르 걸터앉은 사람들에게 우주적 상념에 젖어들도록 작가는 유도했다. 내 머리 속에는 카지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밖에 창문유리에 투사된 디지털 숫자의 이미지가 서서히 바뀌게 장치한다든지, 나무계단을 몇 개 올라가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을만한 좁은 마루에서 마주보이는 정면에 디지털 숫자 풍경을 아래층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족자에 그려 넣는다든지 하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정면으로 충돌시키는 전략을 작가는 구사했다.
동네를 둘러보았다. 골목을 지나는데 문 앞에 걸어둔 화려한 문양의 헝겊 가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표시하여 걸어둔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행인은 조용히 걸어야 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의 심심한 거리가 짐작되었다. 어떤 집은 창문에 작은 그림 한 장을 걸어 두었다. 창문의 기능을 뒤집어 안을 내보이는 수단으로 그림을 걸었다. 창문 위에 ‘일창 갤러리’라고 써두었다. 마음이 담긴 자그마한 볼거리가 골목길을 환하게 해주었다.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베어있는 어디를 보아도 구석구석 깨끗했다. 묵은 색깔은 전통을 상징했고 청결은 인간의 채취를 드러냈다.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아트 숍도 동네 한 가운데 있었다. 헝겊으로 만든 가방과 작은 스케치북을 샀다.
네 번째 아트 하우스는 외곽에 떨어져 있었다. 치과로 사용되었던 박스형 이층 양옥의 안팎으로 온갖 잡동사니를 덕지덕지 붙이고 잡다한 오브제를 들여놓았다. 정크아트를 연상케 했다.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형트럭의 백미러가 모퉁이에서 아래를 비추었고, 천정에 닿을만한 크기의 자유의 여신상이 건물 안에 느닷없이 있었다. 돌아 나오는 문 옆에 녹슨 펌프는 그대로 조각 작품이었다.
섬처럼 연결되어 있는 관람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즐기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질적으로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으나 보여주는 방식과 관리의 철저함이 만들어내는 전시효과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야영지가 있는 섬의 어딘가에 버스를 세우고 언덕을 걸어서 바닷가로 갔다. 식당을 제외하고 주변에 인가가 없었고 저만치에 낚싯배가 떠 있는 꽤나 한적한 곳이었다. 회원들은 바깥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둥실 떠가고, 바다에 물결이 잔잔하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었는데 어쩐 일인지 비릿한 갯내음이 전혀 없다. 평화로운 풍경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이었다. 온 몸의 작고 큰 근육들은 일시에 긴장을 풀었다. 눕고만 싶었다. 주인아낙네는 밝은 표정으로 양념 그릇과 물 잔 따위를 잽싼 손놀림으로 놓았다.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치러본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와중에 간장이 엎질러졌다. 맘씨 좋게 생긴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하이 톤으로 뭐라 뭐라 말했다. 괜찮다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셀프서비스라 가져다 먹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꿈쩍 않고 앉아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앞바다에 살고 있었던 물고기의 싱싱한 살점을 곁들인 점심은 맛과 양에서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찰랑찰랑한 물가를 거닐다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 주차장까지 다시 걸었다. 포장된 도로는 깨끗했다. 풀 섶과 길의 경계가 분명하다. 왕래가 잦은 길도 아닌데 소리 없이 사람의 손길이 미쳐 있었다.

지중미술관을 향해 이동했다. 사진촬영을 절대 금한다며 입구에서부터 짐짓 요란을 떠는 싶더니 입장료가 원화로 2만원이 넘었다. 포장도로 옆으로 고불고불 꽃길을 따라 언덕길을 걷자 곧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가에 핀 갖가지의 야생화가 맑은 햇빛에 찬란하고 졸졸 흐르는 물 위에 수련이 군데군데 피었다. 지루한 줄 모르고 20여분을 걸었다. 관람 전에 그렇게 감각을 주물러 주었다. 안도 타다오의 시멘트벽이 나타났다. 표를 건네고 입구에 들어섰다. 미술관의 대부분은 지하에 묻혀있었고 여기저기 하늘이 뚫려져 있었다. 지나는 곳마다 풀과 나무와 꽃과 하늘과 흐르는 물이 있어 공기를 감싸고돌았다. 안도 타다오는 집요하게 자연을 제시했다.
먼저 제임스 터랠 James Terrell 의 작품을 만났다. 한번에 8명씩 관람을 제한했다. 어두침침한 실내에 들어서자 제단 같은 10여개의 계단 위에 3m x 6m(?) 크기의 커다란 벽면이 뚫려 있었고 안쪽에서 파란 네온의 형광 빛이 새나왔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안내자는 뚫린 벽 안으로 안내했다. 벽 안쪽은 아래로 비스듬히 10m가량 들어갔다. 두어 발걸음을 떼자 짙은 안개 속처럼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푸줏간의 고기가 된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불확실한 두려움으로 돌아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신비한 빛의 세계로 나아갔다. 입구의 커다란 직사각형이 주황빛의 무한한 평면으로 보이는 환상의 이미지가 연출되었다. 주황빛의 사각형과 푸른빛의 바깥으로 대비를 이루며 황홀한 빛으로 공간은 채워졌다. 서있는 공간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면서 무중력의 세계로 순간이동이 이루어졌다. 주황빛은 미세하게 전진했고 푸른빛은 끊임없이 후퇴했다. 빛의 호흡을 이렇게 가까이 느껴보기는.. 그야말로 첫경험이었다. 기다란 푸른 형광등이 안 쪽의 양 벽면에 붙어 있었고 바깥의 높은 천정 모서리에 몇 개의 백열등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작가는 첨단의 조명기술을 구사하여 육안을 현혹시키지 않았다. 감동은 배가되어 몸속 깊숙이 각인되었다.
육신의 무게감을 채 되찾기도 전에 모네의 수련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내딛은 바닥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히 보니 주사위 크기의 하얀 돌이 넓은 방을 온통 메웠다. 한걸음씩 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중간 홀을 지나 빛이 새 나오는 환한 전시실 입구에 섰다. 모네의 수련이 눈에 아련히 들어왔다. 보드라운 빛이 작품을 신비롭게 감싸고돌았다. 눈짐작에 대강 폭 2m에 길이가 6m 정도되는 두 폭의 캔버스로 이루어졌다. 좌우 양쪽 벽면에 정사각형에 가까운 또 다른 수련 그림이 걸려 있었고 입구의 왼쪽에 더 작은 수련 그림이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그림은 없고 하얀 틀만 남아 있었다. 외부에 나들이 중이라고 했다. 홀의 천정은 10m, 바닥은 100평쯤 되어보였다. 온통 하얀 방에 수련그림의 불그스레한 주홍빛과 푸르스름한 녹색이 선연하게 빛을 발했다. 그런데 조명장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천정의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간접조명의 효과를 내며 실내를 밝혔다. 빛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하얀 방을 호흡했다. 그 때마다 모네의 수련은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하며 시야를 점거했다. 이미지와 실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또 흐리면 흐린 대로 수련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거대한 생물체로 숨쉬고 있었다. 안도 타다오는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게 빛의 공간을 연출했다. 보는 것은 모네의 수련이 아니라 모네의 수련이 있는 공간이었다. 중력으로부터 더 멀어져 가뿐해진 몸으로 모네의 방을 나왔다. 구름 위를 떠가듯 천천히 걸었다. 미니멀한 콘크리트 벽과 벽 사이에 하늘과 식물과 물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월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의 작품이 있는 세 번째 방에 다다랐다. 입구에 섰을 때 아! 하고 탄식의 숨을 뱉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0도 정도의 경사를 이루며 계단으로 점차 높아지는 공간은 폭 15-20m의 직사각형으로 길게 50m쯤 안쪽으로 열려 있었다. 중간쯤 평평한 곳에 지름이 3m도 넘어 보이는 까만 대리석이 놓여있고 바로 그 위에 직사각형으로 천정이 뚫려 있었다. 직사각형의 가장자리가 바깥쪽으로 경사지게 깎여 있어 두께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각형의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층계를 따라 천천히 올라 구체가 있는 중간지점에 다다랐다. 돌을 먼저 놓고 마지막으로 지붕을 덮어 건물을 파괴하기 전에는 운반이 불가능하다. 통 돌을 깎은 까만 구체의 표면은 매끈하게 마름질되어 실내가 그대로 비쳤다. 기하학적 구체는 신의 완벽함을 상징하며 이 세상을 이미지로 품었다. 나무에 금색을 입힌 1.5m정도 높이의 삼각, 사각, 오각기둥이 세 개씩 짝을 이루어 일정한 간격으로 입구에서부터 벽면을 장식했다. 신성한 아우라가 공간에 더해졌다. 사람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구석이나 계단에 앉아 있거나 우두커니 서 있었으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리기도 했다. 빛으로 충만한 공간은 솜털 같은 사유의 공간에 빠져들게 했다.
먹먹해진 눈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달콤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샴페인과 쥬스 가운데 하나를 웨이터는 권했다. 샴페인이 찰랑거리는 글라스의 가는 허리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실내를 가로질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계단식 절벽 위에 서너 개의 파라솔이 있었고 두터운 멍석도 준비되어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잔을 기울여 혀를 적셨다. 몸 구석구석에 엔돌핀의 분비가 느껴졌다. 안도 타다오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신의 품안에 안기듯 세 개의 방을 통과하는 짧지만 긴 여정을 자연의 빛으로 이어주었다.

버스는 시간에 맞추어 간신히 부두에 닿았다. 철부선을 타고 섬을 빠져 나왔다. 한 사업가가 컬렉션한 작품들로 채워진 미술관을 찾았다. 큰 길에 면한 쪽문을 열고 한사람씩 정원에 들어섰다. 르네상스식의 건축물이 눈앞에 우뚝 솟았고 양 편으로 오퀴스트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 가운데 하나인 입상 조각이 놓여있어 시선을 제압했다. 관람시간에 쫓겨 종종 발걸음을 옮겼다. 작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는 친구였던 화가의 도움으로 인상주의 작품들을 꽤나 많이 모았다. 작품마다 진정성이 서려 있다. 화가가 작품 수집을 주도해서 그런가 보다. 작가들이 모여 장기간에 걸쳐 만든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 미술관에서 보았던 컬렉션들도 그랬다. 아무래도 같은 화가의 입장에서 볼 때 형식적 완결성이 두드러지는 그림보다 화가 본연의 고뇌에 찬 육질이 베어있는 그림에 애착이 가는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수준이 들쭉날쭉하지 않았다. 친구였던 그 화가의 작품도 있었다. 기법의 치밀함은 있었으나 인상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간파한 성공적인 작품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어쨌든 전시작품의 면면을 보아 오너의 안목이 상당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았을 성 싶다. 인상주의를 비롯해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대부분의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이 망라되었다. 1층에 로뎅과 부르델과 마이욜, 헨리 무어와 자코메티를 비롯하여 당대 조각가들의 소품이지만 수준 높은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2층에는 평면작품으로 이어졌다. 콜비츠의 판화를 보았고 로트렉의 어머니 초상화를 보았다. 마티스와 브라크, 칸딘스키와 레제.. 작품마다 화가의 은밀한 채취가 물씬 풍겼다.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미술관을 중심으로 일대가 미관지구로 지정되어 예스런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폭이 10여 미터 정도 되는 수로가 가운데 흐르고 양편으로 나지막한 버드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휘휘 가지를 늘어뜨렸다. 선죽교 같은 돌다리에 걸터앉아 힘껏 숨을 들이켰다. 한 줄기 상쾌한 바람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동네 한바퀴를 작게 돌았다. 선물가게가 입구에 즐비했다. 멀뚱멀뚱한 채 있다가 ‘게다짝’을 생각해냈다. 엔화를 진즉에 다 써 버리긴 했지만.

어스름해질 무렵 시내에 위치한 고층의 호텔에 투숙했다. 여실장은 슈퍼에서 주류와 음료수 따위를 장만하여 큰 방에 일행을 모았다. 첫날에 비해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갔으나 아직 서먹서먹했다. 무언가 일전을 불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과시하는 데 그쳐야 했다. 많은 여성들 앞에서 주눅이라도 들었나. 피곤해진 몸을 일찌감치 눕혔다. 16층에서 항구가 내려다보였으나 1인용 객실은 비좁았다. 고소공포증에 폐소공포증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결국 잠을 설쳤다. 2007.6.9 20:20 륮.


5.21 월요일. 호텔 뷔페식으로 아침을 마치고 게니치로 이노쿠마의 미술관을 찾았다. 20m x 30m쯤 될까? 전면의 하얀 벽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그린 선 드로잉이 음각되어 있었고 널찍한 광장 왼편에 수수깡 공예품 같은 기둥이, 오른편에 소라모양의 시커먼 청동상이 여러 개의 뾰족한 가시를 위로 돋은 채 기우뚱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작가의 자그마한 노트에 간략하게 스케치되어 있던 걸 몇 백배로 확대하여 실체화했다. 양 편에 콘크리트 가벽이 앞으로 나와 광장을 보듬었다. 왼쪽 가벽 상단에 조그만 네모가 뚫려있어 벽의 육중한 두께를 드러내며 숨을 트이게 했다. 거기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섰다. 학예사의 지루한 설명을 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게니치로의 회화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었다. 서구 현대미술의 회화적 평면성을 근간으로 하는 추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서구 형식미술의 본류에 미치지 못했다. 섬세한 감각으로 회화공간을 연출하는 솜씨가 있었지만 독창적인 세계를 구성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미약해 보였다. 그렇다고 아류로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3층에는 몸을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곰리, 길버트 & 조지 따위의 작가를 포스트로 세우고 일본작가를 그 사이에 포진시켰다. 요즈음 트랜드인 신체성을 모티브로 말초신경계를 건드리는 촉각적인 작품이 대종을 이루었지만 기획자의 해석에 못 미치는 졸작이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단선적 연결 정도에 그치는 주제의 해석으로 충분한 미학적 거리의 확보에 실패했다.
미술관 커피숍에 앉아 밖을 보며 차를 마셨다. 저 건너 고가도로 위로 이따금씩 차가 다녔다. 한적한 도심의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2시간 쯤 달렸다. 후박나무의 녹색과 밀밭의 연노랑이 번갈아 나타났다. 들판에 띄엄띄엄 군집해 있는 이층 기와집이 새끼를 엎은 거북이 같다. 몇 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동집에 도착했다. 주변은 한가한데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집 가장자리의 좁은 마루를 따라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소우주를 본뜬 아기자기한 정원은 나무와 화초와 돌로 빽빽했다. 담장 너머 나뭇가지에 매인지 올빼미인지 모를 커다란 새가 눈을 꿈쩍거렸다. 이윽고 자리가 만들어졌다. 핫또와 콜드 라는 말로 두 가지 우동을 주문했다. 가이드는 발로 밟아 밀가루를 반죽하는 전통을 말하면서 요즈음은 발바닥과 밀가루가 맞닿지 않도록 철저하게 위생관리를 한다고 덧붙였다. 일행들은 방문을 활짝 열고 다다미방의 양쪽으로 앉았다. 커다란 벌 한 마리가 들어왔다. 모두 긴장했다. 상 위를 탐색 비행하더니 일행 중 한사람을 감싸고돌아 한껏 위협을 가하고 나갔다. “그래도 꽃인 줄 알아보네.” “느릿한 비행솜씨로 봐서 영감 벌이 틀림없어.” “어서 따라 나가보시구려.” 농담은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무한정 리필이 이 집의 유명세를 더하는 요소였는데 얼마 더 먹지 못했다. 다른 상에는 빈 그릇이 수북이 쌓여 탑을 만들었다. 입맛이 참 다른가 보다.

안도 타다오의 솜씨를 잘 엿볼 수 건축 가운데 연못을 지붕으로 삼은 사원을 찾았다. 가파른 언덕길을 10여분 올라갔다. 요새의 외벽 같은 5-6m 높이의 콘크리트 담이 크게 휘어져 있다. 담을 돌아 들어가니 또 벽이다. 벽과 벽 사이에 주먹만한 흰 자갈을 깔았다. 이중벽을 빠져 나오자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곳에 수련이 있는 둥그런 연못이 대나무를 배경으로 나타났다. 지름이 30m쯤 되는 원형 지붕 연못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내려가는 계단이 나있었다. 그 아래가 사원이었다. 원형의 가장자리를 따라 2m가 채 안되는 폭의 복도가 빙 둘러 있었다. 안쪽 원을 반으로 갈라 한 쪽은 신상을 모시는 공간으로 맞은편은 예배를 위한 마루공간으로 구분했다. 신상의 후광을 이루는 창의 햇빛이 찬란했다. 비탈진 사면에서 바다 쪽으로 터진 창으로 채광이 이루어졌다. 복도의 벽과 천정을 온통 칠해진 주홍에 가까운 주황색이 반사광 효과로 서서히 발광하면서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만들었고 전통적인 오밀조밀한 문양의 창살 그림자가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안도 타다오가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 서양의 성당건축과 같거나 다른 면이 동시에 보였다.
터덜터덜 내려와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방문기념 스탬프가 나지막한 담장 아래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새로 산 스케치북에 도장을 찍었다. 작은 인연이 기억 속에 모여서 큰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겠다.

최종 목적지는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호텔로 세 번째 숙소로 삼은 곳이다. 인공의 섬에 공항을 짓기 위해 대규모의 흙을 채취하여 황폐해진 곳에 이 호텔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골프장을 만들 계획도 있었으나 대회의장과 숙박시설 따위를 건축하여 문화행사와 워크숍을 열 수 있는 생산적인 휴양지를 조성하는 게 좋겠다는 방침이 최종적으로 내려졌고 그에 따라 고베지진의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백단화가 호텔과 더불어 안도 타다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백단화는 2-3만평의 경사면에 조성되었는데 바둑판무늬의 산책길이 100개에 달하는 2mx2m의 정방형 화단을 둘러싸고 나 있었다. 화단마다 다른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경사면을 따라 2-30m 폭의 계단에 찰랑찰랑 거리며 물이 흘렀다. 계단 모서리가 이빨 빠진 톱니처럼 불규칙하게 깨져 있었고 평평한 바닥에 자갈이 박혀 있었다. 때문에 불규칙한 물의 흐름은 자연을 닮은 다양한 물소리를 냈다. 물은 낙차가 큰 인공폭포에 모아졌다가 10cm 정도로 얕고 너른 인공호수로 퍼져나갔고 호텔 안쪽으로 편입되어 흘러갔다. 인공호수의 바닥에 아기 손바닥만한 하얀 조개가 일정하게 촘촘히 박혔다. 모두 백만 개라고 했다. 백단화의 오른편으로 등고선을 따라 각국의 고유한 화단이 연이어 나타났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로를 얼마쯤 가다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를 향한 가는 다리의 통로 끄트머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 멀리서 돌아보니 경사면에 꽂혀 있는 거대한 기역자로 보였다. 같은 길을 돌아오는 지루함을 덜어줄 요량이었지만 자체로 훌륭한 전망대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문 앞에서 백단화의 전체 규모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여장을 풀었다. 호텔방은 쾌적했지만 나오시마의 정취는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분분한 의견 끝에 일행은 긴 다리가 보이는 전망 좋은 옥외탕을 찾아 가이드와 함께 나섰고 남은 일행과 나는 호텔 바에서 칵테일을 즐겼다. 노곤해진 몸은 칵테일의 달콤한 맛에 급속도로 젖어 들어갔다. 벽의 검은 거울에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이 비쳤다. 뽀얀 얼굴로 사람들이 돌아왔다. 얼마 후 모두 한 방에 모였다. 일본 병맥주를 앞에 놓고 음악을 배경으로 소파와 바닥과 침대에 기대 앉아 밤늦도록 수다를 즐겼다. 나는 또 알코올 기운에 업되어 웅변적 수사를 곁들인 독백에 가까운 말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5.22 화요일. 몽롱한 상태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숙취와 모자란 잠 탓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구름의 존재감이다. 반의식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세상은 창너머 피안이었다. 호텔을 나와, 스케일 면에선가? 그 유명한 다리 아래 일행을 태운 버스는 정차했다. 다리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단체사진을 찍는다. 캔 커피를 손에 들고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오라고 손짓한다. 퍼뜩, 온의식이 돌아왔다. 단체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저마다의 특별한 자세와 표정 사이에 엉거주춤 끼었다.

고베 시의 어느 호텔에서 살짝 익힌 고기를 샐러드와 곁들여 먹었다. 이 지방의 소고기가 일품이라고 했다. 호텔 밖으로 보이는 청결한 거리에 문명의 정적이 감돌았다. 공항 가는 길에 대형 쇼핑센터에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백화점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풍경이 펼쳐졌다. 그냥 걸어 다녔다. 옷가게, 전자제품가게, 신발가게 .. 대형 모니터의 디지털 TV 앞에 멈춰 섰다. 누군가가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길게 질의하는 동안 몇 발자국 앞에 아베 수상이 사람들 틈에 앉아 있었다. 수상이 되기 전 모습인가 했으나 곧이어 수상으로서 그는 답변했다. 살롱의 분위기에서 대정부질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천천히 걸었다.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모조리 긁어 올려 두정 위에 꽁지머리를 묵고 다니는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미래인 같은 그들의 눈에 내가 안보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판기 앞에 섰다. 남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숙취의 갈증을 달랠만한 음료수를 찾았으나 도무지 알쏭달쏭했다. 뒷사람에게 양보를 거듭했다. 쇼핑을 마치고 모여드는 일행의 소란스러움에 눈을 돌렸다. 반가웠다.

건축을 전공한 일본인 가이드는 한국에서 5년 동안 유학했다. 현재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이 일을 부업으로 가끔씩 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느슨한 친절함이 인상에 남았다. 며칠동안의 인연에 서로 감사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창가로 내려다보이는 파란 바다와 육중한 솜털구름은 언제보아도 신비롭다. 땅의 지형이 손바닥처럼 보일 때쯤 창에 기댄 머리 속에서 나오시마의 섬이 다시 그려졌다. 질끈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섬이 그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런 문화촌을 갖고 있지 못할까! 2007.6.21 23:19 륮.

[인쇄하기] 2007-06-23 10: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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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란 선생님의 그림 같은 설명 덕분에 나오시마 다녀 온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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