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 E-mail ]
  철암그리기 67차(07.4. 21-22) 후기
  

철암그리기 전날 그리고 전전날도 비가 촉촉이 내려서
당일 날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였지만
막상 아침에 기차를 탈 때도 태백에 내렸을 때도 비는커녕 쨍쨍한 하늘아래 땡볕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괜시리 넣어온 우산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오는 동안 아침 일찍 출발한 터라 눈을 붙였다 뜨고 하는 동안 풍광은 제대로 못보고
태백시에서 철암에 오는 버스에서 주변을 보았을 때 생각보다 태백이 큰 도시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철암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는 생각보다 오래 갔습니다. 언제쯤 철암일까 언제 내려야 하나 초조해 하면서 방송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이제나 저제나 철암역이라는 소리는 안 들리기에 기사아저씨에게 조금 더 가면 된다는 다짐을 받고서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농공단지와 같은 유리온실이 보이더니 학교가 보이고 교회가 보이고 다닥다닥 늘어선 가게들이 보이더니 갑자기 철암역이라는 소리에 급하게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철암역을 내리자 약속했던 신토불이 식당이 바로 보였습니다. 그곳으로 건너가자 비로소 보인 선탄장, 땡볕아래 검은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제서야 철암에 왔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엄청나게 큰 초록색 비닐 천 아래 까만 탄이 무지하게 쌓여있고 그 아래 역 앞에 서있는데 이상하게 깜뿍 하게 숨이 막히는 느낌은 예전에 민둥산에 가려고 증산역에 내렸을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첩첩산골에 들어섰다는 느낌말입니다.
신토불이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할아텍의 서용선 님과 이태량 님, 정일영 님, 이영미 님, 박영숙 님을 만나 뵜습니다. 저희가 조금 늦은 터라 모두 자리하셔서 식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된장찌개를 시킨 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습니다.
커다란 영지버섯(?)이 있고 각종 살림살이가 있는 약간은 어두컴컴한 안방에 앉아서 끓고 있는 된장냄새를 맡으니 마치 예전에 외할머니 집에 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우선은 지금부터(약 2시경) 5시까지는 각자 철암을 돌아다니며 스케치, 사진 찍기, 산책 등을 하고 휴양림으로 가서 저녁식사와 발표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을 조금 신토불이에 두고 길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조금 막막해서 역 앞의 지도를 잠깐 보았지만 강원도 전체 지도인 듯한 큰 축적의 지도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 보았습니다. 가다보니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불이 나서 허물어진 듯한 집을 보았습니다.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안에 있었고 꽤 예전에 지어진 듯한 집은 한 쪽이 허물어져 있지만 간신히 전체를 지탱하는 뼈대만 남은 모습이었습니다. 옅게 남아있는 나무의 하늘색 페인트가 연약해보이기는 해도 좀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 옆에도 폐가였던 듯, 지금은 터만 남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용기에 흙을 담아 작물을 키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개조 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워있는 냉장고 속에도, 욕조 속에도 흙과 풀이 심어져 있고 남아있는 반쯤 허물어진 벽에는 창이 있어 건너편이 보이는, 버내큘러하다 못해 초현실적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내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같은 폐가인데도 그 활용방도와 모습에 있어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이 왠지 대조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남아있는 창 너머로 보이는 곳은 공원인 듯 깔끔하게 정리된 곳이었습니다. 어쩐지 도시에서 볼 법한 공원이나 정자 같은 것이 보여서 그곳으로 넘어가 보았더니 그 깔끔한 공원에서 보이는 풍경은 할아텍 사진에서 보았던 철암천변의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정말 놀라움이었습니다. 집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몇 개의 기둥, 혹은 몇 개의 철봉. 앞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길옆에 가지런히 있는 집들이 뒤에서 보니 길이 아닌(땅이 아닌) 허공에 떠있는 집들이었다니. 그 중에는 방금 전에 식사를 한 신토불이 집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보았던 건물의 전면과 완연히 다른 후면은 그 낡음과 약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예전에 청계천변의 판자 집들도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건너편 그 깔끔한 공원에서 천변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조금 걷다보니 이내 길이 끊기고 엄청나게 큰 계단인지 무언지 모를 구조물이 나와서 올라가 볼까 고민하고 있는 때 이영미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영미 씨는 철암이 고향이신 작가이십니다. 삼방동 쪽으로 올라가 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전화였습니다. 우리는 흔쾌히 이영미 씨를 따라가기로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천변에서 이영미 씨를 만나 가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길을 확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집들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일, 그리고 너머에 보이는 선탄장 건물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산업문화재라는 것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왠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재하면 석굴암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는데 철암선탄장역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지정이 되면 헐리거나 없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어떠한 예전의 물건, 흔적들을 보면 없어지거나 헐리거나 철거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선탄장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여튼 세계적으로 지정이 되었다는 문화재라는 것도 몰랐다는 것에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선탄장을 보고 있는데 그곳의 관계자이신 듯한 분이 뒤에서 계셨습니다. 원래는 출입이 불허한 곳이지만 살짝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선탄장 안은 철로가 놓여있었고 가까이 다가가니 더 거대해 보였습니다. 석탄이 어떻게 들어가서 어떻게 선별되어 나오는지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에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더는 보지 않고 삼방동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왠지 하루를 다 보아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을까요. 삼방동 쪽으로 가다보니 철암시장이 나왔습니다.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았고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봄인지라 여러 가지 산나물, 과일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다보니 연탄 통이 보였습니다. 아무리 탄광촌이었던 곳이지만 연탄을 아직 쓰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있었더니 이영미 씨의 말씀이 가옥의 구조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난방의 원료로 계속 연탄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옆 골목으로는 집들이 있었는데 그 집들 옆에는 예전에는 신작로였을 넓은 시멘트 길이 있고 그 옆으로 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없어서인지 길이 널찍하고 한가로워 보였습니다. 길로 나있는 벽 쪽에는 근처 미술학원장이 그린 것 같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둘기 모양의 가로수가 그 옆에 있는데 배 쪽에 등이 매달려있어 왠지 비둘기가 알을 힘들게 달고 있는 듯한 우스운 모양이었습니다.
길 한 편에 공동 수도인 것 같은 자그마한 수도가 있었는데 연한 에메랄드 빛에 옆에 위에 놓여 진 화분들로 마치 그리스에 가면 있을법한 수도가 참 귀여웠던 기억이 납니다.
길을 따라 죽 올라가니 홍수대비를 위한 대피소를 안내하는 큼직한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곳이 지난번 매미, 루사 때 큰 피해가 있었던 동네라는 것을 들으니 더욱 그 큰 표지판이 크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옆에 졸졸 흐르는 천이 어떻게 그렇게 불어서 여기를 덮쳤을까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늘 이곳은 조용하고 한가로웠습니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니 삼방동을 잇는 다리가 보입니다. 다리 위에는 광부를 형상화 한 듯한 캐릭터 조형물이 위에 있어 이곳이 예전의 탄광촌임을 조그맣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삼방동은 그야말로 가옥들이 골목골목에 있는 주택가였습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폐가를 이용한 전시 및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저에게 호기심이어서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군데군데 있는 폐가들이 눈에 더 들어오고 관심 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허물어지다시피 한 한 폐가는 그 골조와 내용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흙과 나무와 루핑종이, 슬레이트가 마치 켜켜이 쌓인 지질처럼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집을 보면서 이영미 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곳은 예전에 철암이 탄광사업으로 흥할 때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마구잡이식으로 지은 집들이 지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대단한 기술에 의해서, 계획에 의해서 주택이 지어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힘으로, 필요에 따라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지어졌던 집들에 이제는 사람이 떠나가면서 빈 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곳은 그래서 지나다 보면 마치 60-70년대 서울의 골목과도 견줄 수 있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고 합니다. 동네 자체가 마치 그대로 박물관이 되거나 영화세트가 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골목모습, 정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판자로 울타리를 해놓은 모습이나 아무리 큰 집이라고 해도 2층짜리가 없고 집들 하나하나는 모두 작고 좁아보였습니다. 오히려 요즘 집들이 너무 커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골목은 좁고 집들은 모두 골목에 딱 면해 있어 어깨만한 담장너머로 집안이 모두 보입니다. 골목 끝 어떤 집은 주방 살림살이가 모두 마당에 나와 있습니다. 작은 빗자루와 거울 등 집안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집기들이 가지런히 외벽에 걸려있고 냄비가 있는 화로도 한 편에 놓여있어 이것이 부엌인지 마당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작고 아담했습니다. 남의 생활을 엿보는 듯한 죄책감과 호기심이 섞여 조심스레 셔터를 누르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형태야말로 필요 속에서 탄생하는 조화롭고 다양한 구조, 삶의 형태, 조형이 아닌가 하는 것 이었습니다. 필요가 곧 삶이 되고 그 모습이 조형이 되는 자연스러운 상태. 사람들이 살려고 모였고 살다보니 형성된 다양한 모습의 가옥 구조, 배치, 변용된 활용, 그 양태와 모습이 그야말로 전형화 된 도시, 폐쇄 된 도시의 가옥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에 더욱 소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와 다른 골목으로 가보니 여느 폐가와는 다르게 아직은 쓰레기로 완전히 덮여있지 않은 한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앞면이 완전히 열려져 있어서 그 내부가 모조리 햇빛아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장롱은 열려져 이불이 보이고, 벽에는 스티커가 여직 붙여져 있고 선반위의 페트병은 가지런히 먼지와 함께 서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몇 년을 모은 것 같은 누렇게 바랜 영수증 뭉치들이 집혀져서 벽에 걸려있는 모습, 문간방 너머에 못에 걸려있는 수건과 작은 창문이 아주 조금 열려져 있고 그 아래 있는 스킨 샘플 병 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살다가 그대로 사람만 증발해 버린, 마치 사람을 잃어버린 집과 같았습니다. 생활이 계속 진행되다 어느 날 전쟁이나 천재지변, 피치 못할 일로 그저 사람만 뚝 없어져 버린 것 같고, 그리고 생활의 잔존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완전히 개방되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 생활의 아주 섬세한 주름까지 볼 수 있었던 경험은 후에도 참으로 잊지 못할 어떤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 이 집의 사람들은 그처럼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수 있고 그리고 그대로 놔두고 갈 수 있었는지 저에게는 그것이 계속 떠오르는 의문입니다.
이렇게 골목골목 집들을 보고 나오는 길에 요즈음에 새로 수리를 한 것 같은 집 앞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해사하게 웃으시더니 아들 손자 생각이 나셨는지 커피한잔 하고 가라십니다. 처음에는 사양하려했지만 할머니는 극구 마시고 가라는 말씀에 마지못해 평상에 앉아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집을 수리해 주었다는 아들자랑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사람자취를 보기 힘든 곳에서 할머니는 웬 낯선 사람들이 반가우셨나봅니다. 커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자리를 뜨려 해도 마시고 가라며 계속 부르시는 통에 조금 더 기다려 커피를 받아들었습니다. 한 대접은 될 법한 커피를 꿀떡꿀떡 마시는데 그렇게 달고 뜨거울 수가 없습니다. 조금 남길까도 했지만 할머니 정성에 마저 다 마시고 길을 나섰습니다. 속은 뜨겁고 더부룩했지만 할머니가 대문까지 나와 손 흔드시며 또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먹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방동에 있는 동안 이영미 씨의 초등학교 동창분이 오셨습니다. 마침 그분께서 차를 가지고 오셔서 이영미 씨 박영숙 씨와 더불어 신토불이에서 짐을 가지고 휴양림에 먼저 가기로 했습니다. 신토불이에 가서 짐을 찾으려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문을 잠가놓고 주인분이 어디론가 가셨습니다. 옆집에 물어보니 산나물을 뜯으러 가셨답니다. 한참 장사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처음이라 어찌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 흔한 휴대폰번호도 남겨져있지 않았지만 시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겠거니 생각하니 웃음도 나왔습니다. 생각 끝에 일행은 우선 후미끼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후미끼리는 이영미 씨의 예전 살던 집이 있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구조가 조금 바뀌었다고 하지만 옆에는 개울과 산이 있고 꽃나무가 풍성한 집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예전에 집 앞 개울에서 놀던 이야기 옆에 집에서 굿을 하는 것을 본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집을 둘러보고 마을을 보러 돌아다녔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왠지 아주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 집에서 살던 기억이 났습니다. 외할머니 집은 동해 묵호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여서 그 앞에는 할머니가 줍고 만든 의자들이 있고 그곳에 주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있고는 했습니다. 주변 집들의 문은 항상 열려져 있거나 천 한 장만 드리워져 있어서 이야기소리가 다 들리고 작고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보면 골목 겸 남의 집 마당을 지나야 했습니다.
여기에도 온갖 의자들이 골목으로 나와 있고 남의 집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지나다 보니 예전 그곳으로 온 것 같았습니다. 어떤 곳은 이미 집터만 남아 완전히 밭이 되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화분이 아닌 비닐봉지에 종자를 심어놓은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참 부지런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아있는 땅을, 용기, 화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심고 있고,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후미끼리 끝에는 천이 있고 기차가 지나가는 통로 아래 즉, 다리 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는 넝마주이들이 주거지를 삼아 살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영미 씨는 무서워서 그곳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나갔다는 이야기와 다리위의 기차 길 옆을 사람들이 지나다가 피할 곳이 없어 사고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은 수심이 꽤 깊었는데 예전에 용감한 아이만이 이곳으로 목욕을 하러오곤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송사리가 가득 있는 것이 다리에서 거리가 조금 되어서 섬뜩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더운 날인지라 약수 옆의 공터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내려와서 잠시 놀다갑니다. 아마도 옆에 학교가 있었나봅니다. 학교는 보이지 않고 하얀 자작나무들만이 가지런히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조금 쉬고 후미끼리를 나와서 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그전에 신토불이에 들러서 짐을 찾고 갔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신토불이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류장복 선생님께서 주인아저씨와 함께 머루주를 들고 계셨습니다. 짐을 찾고 곧 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조금 들어가서 있는 휴양림은 꽤 깊숙이 있었습니다. 차가 아니었다면 가기가 조금 힘들 정도로.
휴양림은 공기가 맑은 것이 대번에 느껴질 정도로 찬 기운이 확 닿았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서 조금 지쳐서 저는 방으로 들어오고 이영미 씨와 박영숙 씨는 산책을 하러 가셨습니다. 와중에
서용선 선생님과 정일영 씨, 이태량 씨께서 돌아오셔서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밖에 나가 고기와 약간의 술, 쌀을 사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영미 씨의 친구 분이 치킨을 사가지고 오셔서 다 같이 우선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현수 씨라는 이영미 씨의 친구 분은 철암에서 도시 가스 집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잠시 다른 고장에서 사시다가 철암으로 다시 오셔서 살고계신다고 했습니다. 고향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반가움이 참 지극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아텍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하시면서 반가움을 표하셨습니다. 이분을 통해서 철암에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각을 약간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자신은 감수하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희망의 정체상태 같은 것을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한 통씩 주문전화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에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매미, 루사 때 고생했던 일이며 여러모로 힘든 일들을 겪은 것을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영미 씨와 같이 철암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전체 인원이 3000명이 넘을 정도로 큰 학교였다고 합니다. 오전 오후반을 할 정도였고, 학교 주변에 집을 짓고 살던 선생님들 이야기라든지, 눈이 오면 어깨까지 와서 한 길을 내어 학교에 자박자박 걸어갔던 이야기들,
그 때는 아직 비포장도로라 온통 까맣게 질퍽거렸던 길, 그리고 물.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물을 온통 까맣게 그리곤 했다는 이야기들, 어렸을 때는 물이 원래 까만 색 인줄 알았다는 것이, 그리고 그러한 환경이 창피했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서글펐던 것 같습니다.
일이 있으셔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셨지만 다음에도 또 볼 수 있기를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저녁식사 전에 각자 그린 스케치 등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만 해서 내놓을 것이 없었던 저는 다른 분들이 그린 스케치를 감상만 하였습니다.
이태량 씨 이영미 씨 서용선 선생님, 그리고 류장복 선생님의 스케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음날 철암역 갤러리에 모두 전시가 되었습니다.
스케치를 보는 동안 서용선 선생님께서 몇 가지 자료들을 프로젝션하여 보여주셨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있었던 전시사진들과 철암주변 사진들, 그리고 독일의 폐광활용 예(루르공업단지 엠셔파크)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독일의 폐광활용 예에서 주민과 작가 시가 컨소시엄해서 하나의 문화주식회사를 만들어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철암역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하나의 희망적 신호 같았고 참으로 선진적 방향이 아닌가 하고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현실적 문제는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가능성이 어떤가에 대한 질문을 서용선 선생님께 드렸지만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태백시와 철암의 알력관계, 국가적 차원에 있어서 폐광촌을 보는 시선의 고정적 정태 등등 그 사회적인 문제는 단순한 노력과 기지, 아이디어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 근방의 역사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도 잠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석탄합리화과정에서 사북, 고한이 강원랜드가 생기는 과정에서 자연파괴까지 허용하는 개발권을 정부가 내렸다는 것, 60.70년대 노동 민주화운동의 시발이 사북이었고 그것이 완전히 진압되는 과정에서 이후 억압의 역사까지...
이어 한응전 씨와, 류장복 선생님, 구와우 대표님이신 김남표 씨께서 오셨고 곧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구와우 대표님이 오시고는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가 곧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 해바라기 축제 후 해바라기들은 된장을 만드는데 모두 쓰였다고 합니다.
해바라기 된장이라니 왠지 향긋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흘러 흘러 고라니와 고라니로 만든 육포이야기로 가다보니 이어서 할아텍은 철암에 고기집을 낼 예정으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맥주와 소주가 오가는 동안 구와우 대표님은 가시고 석탄박물관 관장님께서 마가목주와 함께 오셨습니다.
석탄박물관 관장님은 이곳에서 자라셔서 이곳에서 사시는 토박이이신 것 같았습니다.
이날 밤 철암에 대한 예전이야기들을 한보따리 풀어내셨습니다.
예전에 통리-신포리-도계를 잇는 스위치백 열차가 있었는데 강릉을 가려면 기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한 2km정도 20도 정도경사를 내려와야 했다고 합니다.
눈밭에 이 길을 가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어쩌다 처녀들은 하이힐을 신고 갈라치면 더더욱 고통스러웠던 길. 그리고 빨리 내려가서 열차에 자리를 맡아주는 사람, 소매치기 등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철암 주변에는 통리, 도계, 황지 등의 지역이 있는데 예전에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먹들이 있고 학생들도 자신의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혹은 구역)으로 가면 크게 위협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왠지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영미 씨 박영숙 씨는 그 시절 남학생들은 자신의 구역을 지키려는 본능과도 같은 것을 그래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며 추억 섞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에게는 그저 놀랍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무모한 힘의 긴장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흥미진진한 시대였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때는 이렇게 깡패들이 자신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탄광을 훔쳐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개인탄광이라고 할 수 있는 대덕탄광(?)은 사장도 일해야 하는 소규모의 사업장이었고 깡패들은 주로 이런 곳을 밤에 트럭을 몰고 와 탄을 몰래 빼갔던 것입니다.
유유히 달아나려고 할 때 그 지역 깡패들이 길가에 돌을 얹어놓고 막아 서로 싸움이 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철암 주변은 군사정권이전 무력이 장악하던 무법지대와도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같은 성질에 잭나이프를 소지하고 있는 노인 분들이 간혹 있답니다.
무법지대라는 것이 서부영화에서나 볼 법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시대에
벌어지던 세세한 일들을 들으니 실감하기 힘들면서도 섬뜩한 기분입니다.
대밭촌이라는 창녀촌이야기도 슬슬 풀어주시기 시작합니다.
축구를 하고 단체로 몰려가던 이야기, 참 착하던 아가씨들. 한 때 돈이 돌았던 그래도 융성했던 시대의 철암이야기입니다.
서용선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치 이미지처럼 펼쳐집니다. 까만 산들 위 꼭대기에 눈이 살포시 쌓여있고 까만 산들 마냥 사방이 온통 거묵해지면 하나둘씩 떠오르며 화려하고 휘황한 간판과 색등이 줄줄이 진열되었던 장관. 흰색과 검은색, 핑크색으로 물드는 하나의 긴 길
그곳에는 무슨 옥, 무슨 정 등의 방석집도 있었는데 이영미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탄광에서 사고로 죽은 젊은 광부들의 아내들이 과부가 되고, 그러면 마치 어느 소설의 한 토막처럼 누구네 엄마가 화장을 곱게 하고 밤이 되면 조용히 나가더라 하는 이야기가 마을 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부들이 주로 나가던 곳이 앞에 말한 방석집이라고 합니다.
관장님은 한 때 탄광의 안전부서에서 일한적도 있으셨는데 갱도에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으면 보상 문제 등을 처리하는 일을 하셨답니다. 그렇게 보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으레 그 가족내력이 다 나오는데 거기서 이 동네의 일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좁은 동네이고 젊은 광부들이 혼자 와서 사는 총각들도 많고 불륜이 생기기 마련인 이 동네에서 이러한 일들에 그 가옥구조도 한 몫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광부용 무상임대 아파트가 있지만 그 때는 판자집이 원룸처럼 방하나 주방하나 있는 식으로 해서 다닥다닥 붙어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집과 집 사이는 판자하나로 이어진 방들의 연속인 것이고 그러다보면 고요한 밤에 모든 소리가 넘나들기 마련입니다.
또 여름이면 너도 나도 문을 열고 지내고 앞집과 앞집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마을에서 사생활이란 이미 다 노출될 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류장복 선생님의 표현대로 동포애랄까 애정이 질질 넘친다고 할까,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근방의 길이 확장되는 것에도 하나의 역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청교육대와 같은 것으로 박정희 시대의 국토개발단이라 불리는, 말하자면 전과자들을 집합시켜 만든 일단이 여기에 와서 돌과 산을 깨고 도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부고속도로에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약 7개월 정도 인근학교에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하며 힘들고 위험한 환경에서 강제노역과 비슷한 노동 속에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길이라니 어쩐지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이면이란 들여다볼수록 시꺼먼 우물 속 같이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마가목주를 먹으면서 마가목을 채취하는 이야기들, 아예 나무를 베어 열매를 채취하는 사람들, 그 시절 터프한 고등학생들, 똘똘 뭉친 형제들, 무서운 형과 어벙한 동생, 채송화를 먹은 이야기, 빨래며 심지어 아기까지도 집어가는 넝마주이, 항상 2끼를 먹고 일찍 잠들었던 이야기, 아플 때 먹던 정말 맛있었던 라면이야기 등등 시간이 가도 이야기의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와 이영미 씨 박영숙 씨는 내일의 스케줄을 고대하며 자리를 뜨고 남자 분들은 나머지이야기들을 더 이어가셨나봅니다.
방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려볼까 하여 뒤적거리면서 서용선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던 휘황한 간판과 색등이 까맣고 하얀 산 아래 늘어지던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어쩐지 그 장면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그려보았지만 그릴수록 그 이미지가 멀어지는 것 같아 이내 그만두고 눈을 감은 채 눈 속에서 떠올려보려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안이 후끈합니다. 불을 잔뜩 떼었는지 건조할 정도입니다.
아침을 먹기 전에 이영미 씨 박영숙 씨께서 추천하는 휴양림 산책을 꼭 해보려고 일어나자마자 이불만 개고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휴양림은 꽤 긴 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는 표지판을 보고 중간까지만 갔다가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았고 바로 옆에 계속 물이 흐르고 있어서 시원하고 조용한 산책이 되었습니다. 나무와 돌에는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고 드문드문 어떤 건축물의 흔적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돌이 많은 물길은 엄청 맑아 보였습니다. 나무찌꺼기도 거의 없고 물고기도 없었습니다. 그저 맑은 물만 있어 길을 가다 세수를 하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물이 유연해서 씻고 나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나무는 많았지만 글쎄요. 아직 겨울이 이곳에서는 다가지 않은 듯 나무들은 아직 회갈색조였고 휴양림이라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그저 어느 산길을 가는 듯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해서 였을까요.
중간에 가다가 길이 꺾이는 듯하여 그곳에서 발길을 돌려 방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늦게 아침식사에 도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다른 분들은 식사를 마친 상태여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치찌개에 고기볶음으로 밥을 먹는 동안 다른 분들은 차를 마시면서 철암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폐광을 활용한 방안에 대해서 의견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실제 버려져 있는 폐광을 저장음식의 창고로 활용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김치, 묵은지나 장류 등 특히 김치의 경우 이 근방의 고랭지 배추를 이용하면 아주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이영미씨를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철암에 사는 동창의 경우 김치공장을 하는데 고랭지 배추가 단단하고 고소하여 김치를 만들면 아주 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 여름에는 폐광이나 터널이 아주 서늘하여 피서의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호텔로 이용하는 예도 언급이 되었고 미국의 캘리코에서 지금은 폐광이 된 은광을 활용한 모노레일도 이야기 되었습니다.(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캘리코마을은 서부개척시대인 1881년을 기점으로 년간 1,200만불 규모의 은 발굴량으로 인해 급속도로 인구가 늘면서 캘리포니아 최대규모의 도시 중 하나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1896년경 갑작스런 은값의 하락으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고, 이내 유령의 마을(Ghost Town)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캘리코 은광촌이 관광명소로 복원된것은 LA의 테마공원 "넛츠베리팜"(Knott Berry Farm)을 세운 월트 넛츠(Walter Knott)가 은광촌 당시 모습의 사진을 기초로 복원해서 1966년 샌버나디노 (San Bernardino county) 정부에 기증하게 된 것에서 기인한다. 이로서 캘리코 은광촌은 유령의 마을 카운티 리저널 공원으로 주요 관광명소가 되었다. )
이영미 씨께서 작품으로 구상하신 바도 있고 철암역 갤러리에서 볼 수 있듯 조경을 하시는 분이 고안한 모노레일 설계도도 있어서 반달모양의 철암지대를 둘러보는 모노레일이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차동쪽에 남아있는 폐선 흔적도 이러한 모노레일 구성에 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방에서는 이정도로 이야기를 마치고 일정에 대해서 공지가 되었습니다.
우선 고기집 계약을 위해 철암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스케치를 조금 한 뒤
구와우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오늘일정을 마무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철암역 옆의 상가를 하나 임대하여 고기집을 하려는데 오늘 주인을 만나 가게 안을 좀 둘러보려 하는 것입니다. 철암에서 여러모로 활동을 도와주시는 주민이신 김동현 씨도 오셨습니다. 같이 계약을 하고 구와우로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인이 교회에 가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남아 다른 분들은 주변을 좀 더 돌아보며 스케치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서용선 선생님이 말씀하신 전차동 부근의 폐가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전차동은 그 지역으로 전차가 지나간 터널이 있고 몇 개의 집들이 있는데 거의 폐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서용선 선생님께서 조경 팀과 함께 공간을 사용할 목적으로 먼저 둘러보신 터라 약간의 정보를 받아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철길을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니 폐가들이 가까이 보였습니다. 불에 모조리 타서 뼈대가 온통 숯이 된 집도 있었습니다. 더 올라가니 온 살림살이가 어질러진 한 폐가가 보이면서
그 위로 폐가가 몇 집 더 보였습니다. 첫 번째 집은 꽤나 어지러이 되어있고 무너진 곳도 많았지만 다음 집은 노란 덧문이 쫙 쳐져있어서 잘 보존이 된 듯한 집도 있었습니다. 집 앞은 누군가가 밭으로 쓰려는 듯 땅이 갈아져 있었습니다. 노란 덧문은 나무와 유리로 되어있는데 그 안으로 방안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위에는 한문으로 누군가의 이름인 듯한 것이 쓰여 있었고 방안의 비교적 깨끗했습니다. 노란 문을 자세히 보자 켜켜이 갈라져 조금씩 들뜨고 벗겨져 있었는데 그 사이를 보니 페인트를 몇 번씩 덧발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색, 그다음에는 빨간색, 그 다음에는 파란색, 그 다음에는 에메랄드색 그다음에는 노란색, 하는 식으로 덧문의 오랜 시간 동안의 변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폐가를 활용한 작업을 한다면 이 집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올라가니 한 폐가는 그 당시의 집 치고는 썩 잘 지어진 집이었습니다. 대문 주축이 되는 시멘트 기둥과 시멘트로 정돈된 앞마당 그리고 집이 꽤 튼튼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쪽 지붕은 모조리 날아가서 그 안은 그대로 야외가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문고리도 꽉 닫혀있어 안이 어떤지는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손을 본 듯 철심을 세우고 땅을 다져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집은 앞은 멀쩡한데 뒤가 다 허물어져 안의 장롱이 보이는 집도 있었고 작은 덧문이 열려 그 안의 컴컴한 내부가 조금 드러나면서 베갯잇 등이 보이는 집도 있었습니다.
더 올라가 보니 몇몇 분이 밭을 일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괜히 저 애들은 뭔데 여기를 헤집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그러나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그래서 여기서 뭐하는 거냐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별로 상관치 않으신 듯 묵묵히 일만 하셨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는 광부로 일하셨는지 작업복을 입으시고 괭이로 밭을 갈고 계시는데 웬일인지 어제 관장님께 들은 무법시대의 철암이 생각나면서 조금 무서워져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이런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날 보호해줄 것이 없다. 라고 생각이 되어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노랗고 붉으죽죽한 사당이 보였습니다. 저 아래 철암역에서도 꽤 눈에 띄는 곳이었는데 역시나 사당인 것 같았습니다. 줄이 쳐져있고 현판 같은 것도 걸려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보면 간이 다리 같은 것이 있고 그 밑으로 밭이 있는데 그곳이 예전에 전차가 다니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주변으로 전봇대 같은 것이 늘어서 있고 그 길 바로 옆으로 축대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전차길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다 밭으로 이용되고 흙으로 덮여 철길 같은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쯤 올라와 내려다 보니 거쳐 왔던 폐가들이 보이는데 여름에 수해가 있었는지 땅이 쓸려간 자국과 집들의 한 부분이 폭삭 내려앉은 것이 한 줄기로 일치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더 올라갈 수 있을 듯 했지만 약속한 시간이 되어 종종걸음으로 내려왔습니다. 길은 거의 한사람걷기도 힘들게 좁은 흙길이어서 조심조심 내려와야 했습니다. 어제는 따사로운 날씨여서 더위를 느끼기까지 했는데 이날은 조금 쌀쌀했습니다. 콧물을 훌쩍이며 철암 역 쪽으로 가는데 몇몇 분이 역사 옆 한 편에 구유 같은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역 앞에서는 류장복 선생님이 마주보이는 가게들을 스케치하고 계셨습니다. 아직 계약일이 마무리 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추위를 피할 겸 역사 안 대합실에 앉아 창밖을 보면서 조금씩 끄적이고 있는데 철암역 갤러리에 어제 그린 스케치들을 예전 그림과 바꿔 거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린 것이 있으면 어서 걸라는 권유를 하셨지만 조금 부끄러운 마음에 계속 끄적이기만 했습니다. 이쯤에 모두 일이 정리되고 차를 타고 구와우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구와우로 가는 차안에서 철암을 다시 한 번 훑으며 가고 있는데 서용선 선생님이 요즘 철암이 들썩인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정말 여기저기서 뭔가를 뚝딱뚝딱하는 소리와 모습이 보입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들썩임일지는 알 수 없음에 마냥 달갑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참 길을 따라가는데 웬 운동장이 보입니다. 그것도 전광판까지 설치된 나름 시설을 갖춘 운동장이 세 ,네 개가 줄지어 있습니다. 첩첩산골 도로만 있는 곳에 운동장이 조금은 난데없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주변 학교 축구부들이 모여서 시합을 하나봅니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스치며 생각이 납니다. 설마 그런 광풍이 여기까지 몰려온 것일까요.
구와우에 거의 다 왔습니다. 해바라기 축제 때 쓰였던 듯 해바라기가 큼직하게 그려진 매표소가 보이고 할아텍에서 전시장으로 활용했다는 할 이라는 공간도 보입니다.
구와우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구와우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온 저로써는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약간의 안개같이 습기가 내려앉은 완만한 언덕배기들에 둘러 쌓여있는 이곳은 군데군데 심어진 나무들로 인해 마치 저 외국의 한 언덕이나 동산과 비슷하면서도 포근하고 아늑했습니다. 아홉 마리 소가 배불리 먹고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뜻의 구와우라는 이름도 참 정겨웠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구와우 대표님은 엄나무를 심기위해 땅을 파고 있는 중이셨습니다.
아직 구와우에는 해바라기가 심어지지는 않았습니다. 5월 정도에 심으면 7-8월에는 다 큰다고 하니 그 장관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 너른 평지에 해바라기가 가득하다면 정말 볼만할 것 같습니다. 잠시 인사를 하고 우선 근처의 순두부집으로 가서 점심을 하였습니다.
이곳도 꽤 이름 있는 곳인지 여러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끈한 두부와 강된장으로 식사를 하고 약간의 나른함을 제치고 다시 구와우로 향했습니다.
언덕위의 굽이굽이 난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다보니 바람에 휘어진 듯한 정자도 보이고 군데군데 언덕의 끝자락에 조형물도 보입니다. 그곳을 하나하나 거치며 언덕을 돌아봅니다. 조형물들은 크다고 할 수 있는 스케일이었으나 너른 언덕위에 하나하나 놓여 지니 멀리서 볼 땐 풍광과 어우러져 나름의 풍경을 다시 자아냅니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길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느릿느릿 걸어오는 모습도 왠지 하나의 풍경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씨를 다 뿌리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에서 할미꽃 같은 야생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 돌아본 뒤 구와우 대표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지난 2년간 노력으로 이제는 야생화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합니다. 해바라기들도 이번에는 지난해의 실패를 경험삼아 더 멋지게 자리 잡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7-8월엔 구와우에 와서 꼭 해바라기를 봐야겠습니다. 그 때는 야생화도 만발할 것이고 지금과는 또 다른 구와우의 모습으로 반겨 주리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2일간의 일정은 끝을 맺고 각자는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철암 주민 분이신 김동현 씨의 차로 태백까지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태벽역 너머 저기 추전역에 있다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너울너울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가면서 철암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창 밖이 점점 흙빛이 되어가기는 하나 왜 그런지 철암의 선탄장에서 보았던 까만 흙빛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에 그보다 진한 검은색은 예전에 불빛이 없었던 까맣디까만 밤에만 속해 있었던 듯 이제는 찾기 힘든 무엇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의 멜랑꼴리에 슬며시 젖어들었습니다.
[인쇄하기] 2007-05-01 13: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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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예 자세한 기록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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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대단히 사실적인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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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진희씨,, 참 자세하게 스케치 하셨습니다. 놀랍네요. 그 맑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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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너무 늦게 올려드려 죄송합니다. 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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