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철암,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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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7일 영월을 거쳐 태백으로 가는 시외버스길에 오르다. 혼자 떠나는 길은 마음이 고요한 행복감이 든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중에 가장 즐거운 일은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맘껏 누릴 수 있다는것. 더 예민해지는 자신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것. 오전 10시 영월에서 정차한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영월의 느릿하게 구부러지는 시골풍경으로 들어간다. 오전에 티비로 강원,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맑은 하늘과 단조로운 날씨를 보여주던 길은 영월을 지나 태백으로 향하며 첩첩히 들어서 있는 산뒤의 산과 산 건너의 산들이 눈으로 덮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높고 고고한 설산은 멀리서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나는 영월의 울렁거리는 고개짓의 아름다운 능선을 타며 이내 울컥하지만 그건 오래된 한국의 정서인 '한' 으로 느껴지는 슬픔이랄까. 내 오랜 여행의 아련한 슬픔이랄까. 붓필로 풍경을 빠르게 담아내는 동안 나는 그림의 단조로움속에 미의 정서를 찾을 수 있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서였을까. 멀미가 서서히 시작된다. 태백역을 지나 철암역으로 진입하며 나는 계속되는 멀미를 떨치지 못하고 철암에서 그리고자했던 스케치를 머릿속에 새긴다. 태백역은 가벼운 눈발이 지속되고 있었고 이미 한차례 터져버린 눈꽃이 철암의 어두움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눈꽃이 나무위에 얹혀져 ' 저 눈덩이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며 찬바람을 피해 미리 와 있는 일행들과 맞이방에서 만나 몸을 녹인다. 오후 3시 다시 그림 그릴 준비를 하다. 추워서 밖으로 나와 그릴 엄두가 나질 않자 철암역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을 크로키하자고 역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철암으로 돌아오거나 여행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도 내리지 않아 포기하고 철암역 앞 풍경을 그려나가다. 거리는 한산하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산은 하얗게 덮어있어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잔인하게 느껴진다. 멀미를 안고 오일파스텔로 그리다. 한 아주머니가 건너편에서 걸어오신다. 청록색 스웨터와 갈색 꽃무늬 몸배바지를 입으시고 바람을 맞대고 걸어오신다. 길은 엷은 노란빛으로 칠해버리다. 극단적인 검정과 흰색의 콘트라스트와 긁혀버린 파스텔의 표면을 지나 멀미나는 길. 그것은 나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철암역 광장의 여백에 공중전화부스와 자동차 한대와 아주머니를 초록바탕에 집어넣는다. 그것은 소통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은 괜찮아. 이동하고 있고 커뮤니티가 있고 사람이 존재하는 희망을 가지고 싶어했다. 또한 그것은 빠른 시대의 변화와는 상반되는 정체된 도시의 길에서 멀미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혼란과 그럼에도 멈춰진 시간속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저 철암의 수많은 새로 생긴 녹색 가로등의 기둥들. 그림을 그려내면서 흰색의 눈발이 살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며 그림을 끝내다. 오후 6시 일행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호산나상회를 들러 서용선교수님이 주인분과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신 후 우리는 근처 한아름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뒤 금강골숙소로 돌아와 낮에 그린 그림전시와 이야기 나눔이 진행되었고 이강우 선생님의 사진작업에 대한 워크샵이 실시되다. 주제는 사진작업을 할때의 기획과 진행사항, 선생님이 현재 계획하고 계신 철암작업에 대한 내용들. 또한 이태량 분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고 변함없는 작업과 많은 이야기들과 생각들이 오가다. 다음날 아침 금강골의 풍경은 은빛설원이 펼쳐진 산들의 축제였다. 다시 겨울로 돌아온 느낌. 한해의 마지막을 다시 보내는 허전함과 홀가분함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 그건 꼭 한해의 끝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일행이 옹기종기 한차에 몸을 싣고 철암역으로 돌아와 간이 맞는 김치찌개로 아침식사를 하다. 다시 이야기 꽃이 피워지고 서용선교수님은 요셉보이스로 시작되는 말씀을 이으신다. 샤머니즘과 원시행위예술에 영향을 받은 요셉보이스는 표현으로서의 예술을 중요시하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예술활동이 된다는 것과 음성에 대한 놀이들,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낸 다. 그가 영향을 받은 슈타이너 역시 그랬고 슈타이너가 영향을 받은 쉴러의 미적교육에 관한 12개의 서신을 통해 그 정신을 느낄수 있으며 그는 괴테로 다시 거슬러올라가는 ...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림작업을 시작하다. 이강우선생님의 느릿하지만 의미있는 사진작업을 슬쩍 바라보며 다시 정일영선생님의 예쁜색깔의 풍경을 슬쩍 훔치고 강가건너편 언덕으로 오르는 연두색 난간의 가파른 계단을 쓱쓱 그려나가다. 계단은 가파르고 불편하게 구부정하고 꼭대기에 보이는 집은 위용을 자랑하는 듯 하다. 계단옆 잘려진 돌벽과 거칠게 자란 나무들이 무관심하게 서 있다. 적나라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방치. 정오즈음이 되어 이태란분이 그토록 고대하던 풍성한 점심식사를 하고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차에 몸을 싣고 기차를 타는 몇을 위해 기차표를 예매하고 (이선생님 덕분에 정말 예매하기를 잘했다고 기차를 탈때 느꼈더랬습니다. ) 구와우의 서교수님의 포효하는 사람의 조형물을 지나 삼수령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향하다. 길고 긴 산길. 어느것은 희고 어느것은 검다. 어느것은 마르고 어느것은 젖다. 묵묵히 걷고 걷다. 산은 그대로이고 길은 점점 단단하지만 나의 마음은 계절과 같다. 이읔고 도착한 검룡소. 작년 여름 이후에 설치된 갈색빛 거대한 다리에 약해진 검룡소. 문명은 자연의 위대함을 나약하게 보이게 한다. 파헤쳐진 자연은 결국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아픔은 지속되고 우리는 결국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고 헤매는 상황을 지속한다. 무언가를 개발해야한다는 이 강박증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연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연의 아류를 포장하여 인간속으로 끌어들이댄다. 비록 나는 설치물이 없을때를 보지는 못했지만 미리 와보신분들의 허탈한 심정을 십분 가늠할 수 있을것 같다. 산길을 내려오는 길에 길이 미끄러워 양손에 꺽여버려진 나무가지를 잡고 스키를 타듯 미끄러져 내려오다 넘어지고 만다. 유치하지만 이런 즐거움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후 4시 37분 태백역에 도착하여 나와 선희.제임즈는 기차를 타기 위해 내리고 나머지 분들은 다시 한 차에 몸을 싣고 길은 계속된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역사 맞이방 속으로 숨어든다. 그릴것이 많고 이야기 할것이 많은 역사. 나는 작은 스케치북을 열어 사람과 실내를 그린다. 6시 가량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태백역으로 모여든다. 등산복차림의 남녀들, 가방을 든 아주머니들과 아이들, 젊은 부부와 아기, 중년의 남자가 허름한 옷을 입은채 티비의 무한도전을 보며 텃텃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 역안은 벌써 북적해지고 나는 맞이방을 나와 개찰구 중앙공간에 서다. 웅웅 거리는 소리. 웅성거리는 사람들.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는 말소리가 아닌 구체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소리들 소리들. 그것은 파동처럼 역안에서 진동한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서서 소리를 응시하다. 그것은 영월에서 느껴지던 정서의 '한'에서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내면의 파동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기억들, 상처들, 삶의 변화들이 검룡소의 지하수처럼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 아닐까. 그 오랜 나의 숙제는 하나의 환경에 편입되지 않은 여러 개체들이 한꺼번에 뿜어져나오는 기운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내가 울렁거리며 바라 본 늘 아름다운 영월의 시골풍경과 내가 찾고자 하는 창작에 대한 열망과 숙제들과 그것이 내안에서 찾으려고자하는 근본과 겪어내야하는 삶의 파란들이 만들어나가는 놀이. 진지한 놀이. 나는 그림을 찾으려고 한것이 아니었다. 어렸을적 내 손을 보며 나는 전생에 내가 마법사가 아니었을까를 느끼듯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한다면, 단순히 나의 표현으로서의 창작의 방법이 사회성과 결부되지 않고 떠돌면서 나는 사회에서 만들어나가는 예술이라는 교육과 사회적인 인식의 방식에서 점차 주눅들어버리고 소외당해버리게 되었던 문제들. 용기없는 내가 따라가려고 했던 기존사회의 방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나 자신의 창작과 소통에 대한 접근방식을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근본을 책에서 찾으려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왜 사회로 부딪치지 못하느냐에 대한 비판에 고개를 돌리며 학문적인 틀이 창작의 틀의 가능성을 제공해주지 않을까라는 나약한 물음 등에 수긍하듯 고개를 떨구며 머리 속 혼란을 잠재우려 하고 있었다. 결국, 예술과 창작의 문제는 사회속의 학문적인 틀과는 별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술에 대한 고민해 본 창작을 꿈꿔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뼈로 새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교육의 인식과 예술에 대한 거창한 단어로 인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에 한발을 담그고 절뚝거리며 불구자가 되버리고 만다. 문제는 창작에 대한 욕구는 기존사회제도에 굴하지 않고 예술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창작이라는 놀이속으로 용기를 내어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기가 필요하게 될수밖에 없게된 현실적인 제약이 안타깝게 여겨지고 그것을 부수려는 또 다른 교육의 노력이 늘 돌고 돌고 만다. 20070319
	[인쇄하기] 2007-03-20 00: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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