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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적 입체와 회화적 공간
참된 실재는 원자(아토마)와 공허(케논)의 두 가지 뿐으로, 원자는 불괴(不壞)의 궁극적 실체이고, 공허는 원자가 방황운동을 하는 장소다. 에피쿠로스(Epicouros, B.C.341?-B.C.270?)
1. 조각적 입체
종이에 그려진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조형방법으로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는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의 입체성’과 ‘어떤 물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성’에 관한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1)
먼저, 불투명한 조각적 입체에 대해 말해보자. 지상의 만물은 부피를 지닌다. 부피의 입체성은 사물의 공통된 본질이다. 태양아래, 땅 위의 모든 물체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신의 창조적 정신을 닮은 태양은 신의 창조과정을 거쳐 이 세계로 던져진 만물을 비춘다. 신성한 빛은 현실세계의 태양광선이나 인위적인 조명과 다르다. 이 빛줄기는 신의 무한한 창조력을 상징하며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피조물에게 3차원의 부피감을 부여한다. 미술가는 단지 조물주의 눈을 대신해서 신의 창조과정을 좇아 회화공간에 물체의 입체성을 재현할 따름이다.
그림 1 : 조각적 입체의 개념도
그림 2 : 명암법과 볼륨
그림1은 절대적 개념으로서 신성한 빛에 의해 사물이 드러나는 현상을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서처럼 물체의 표면에 도달하는 길이가 짧을수록, 빛의 각도와 표면이 직각에 가깝게 만날수록 빛의 손실이 줄어든다면, 물체의 가장 높은 정점으로부터 가장자리에 이르는 빛줄기 1, 2, 3, 4, 5, 6 이 닿는 지점은 순서대로 어두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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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뇌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보이는 세계는 뇌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차원의 망막에 포착되는 시각정보는 뇌의 과정을 거쳐 3차원의 이미지로 해석된다. 망막에서 뇌로 이어지는 시신경이 100만 가닥이나 되고 실제 시신경의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시신경이 차지하고 있는 망막의 빈자리는 이미지의 연속성에 따른 모종의 해석으로 보충된다. 더구나 오늘날 대중화된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수도 오백만이 훌쩍 넘는데 시신경이 100만 가닥이라 해도 받아들여진 시각정보 그대로라면 세계는 당연히 거칠게 보일 것이다. 유연한 뇌의 자발적인 해석이 가해짐으로써 현실세계의 이미지는 매끄러워질 수 있다. 부정확한 시각정보와 애매한 기억이 뇌의 응용력을 길러준다. (이케가야 유지의 뇌과학, 2005)
3차원의 사물들을 2차원에 재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 전통회화에서 재현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것은 3차원의 사물들과 2차원의 요소들(색, 형태, ... 등) 어떤 일정한 관계를 정립한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재현이란 사물들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일정한 코드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재현하는 것과 재현되는 것 사이에 일정한 규칙이, 코드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재현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려지는 것과 그림 사이에 화가가 어떤 코드를 작동시키고 는가가 중요하다. (이정우,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 자료집 p.90, 2006 여름)
이를 회화공간에 적용시켜 보자. 그림2에서 화면은 대지와 같고 하나의 폐곡선은 물체의 실루엣을 따라 형성되는 윤곽선이다. 물체의 외부 즉, 대기와 만나는 경계를 외윤곽선이라 한다면 물체의 내부에 생기는 윤곽은 내윤곽선이다. 이 윤곽선을 등고선 삼아 광원을 향해 단계적으로 밝게 처리하면 볼록한 착시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평평한 면에서 튀어 오르는 듯한 부조의 입체감은 양감, 즉 볼륨이다. 이러한 조형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형상은 또렷한 외곽선과 부푼 양감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림 3-1 : 단순한 물체
그림 3-2 : 복잡한 물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물체의 음영을 처리해보자. 그림3-1처럼 단순한 것에서 그림3-2와 같이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벽에 장식된 조각상과 같은 부조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외윤곽선이나 내윤곽선을 기저선으로 삼아 다양한 볼륨을 구할 수 있고 볼륨의 정점은 그 볼륨이 향하는 곳으로 가장 밝은 음영의 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윤곽의 가장자리로부터 명암의 단계가 촘촘하면 경사가 급한 볼륨이 형성되고(그림4-1), 성기게 되면 볼륨은 완만하게 만들어진다.(그림4-2) 이렇게 명암을 조절하여 볼륨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그림 4-1 : 급한 경사
그림 4-2 : 완만한 경사
이 때 빛은 현상세계의 그것과 다르다. 만물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비추는 추상적 개념으로서 빛이다. 이러한 빛의 개념으로 구해진 볼륨은 사물의 입체적 본질을 설명한다. 볼륨은 매스, 괴감과 다르다. 괴감은 무게감으로 중력을 느끼게 한다. 조형의 방법적 측면에서 괴감은 질감과 더 관련이 있다. 그림 5-1, 그림 5-2처럼 거칠거나 촘촘한 질감의 차이는 괴감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볼륨은 아래로 끌어당기는 무게감보다 사방으로 팽창하는 어떤 기운을 지시한다. 물체의 내부에서 바깥쪽 표면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시각현상이다. 볼륨은 마치 생물체의 살갗으로부터 감지되는 호흡의 에너지와 흡사하다.
그림 5-1 : 성긴 질감
그림 5-2 : 촘촘한 질감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인체의 볼륨을 통해 신성한 생명력을 구현하려고 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볼륨의 표현은 두드러진다. 그의 드로잉이나 회화, 조각 등에 표현된 인체는 한결같이 부풀려진 근육의 볼륨으로 과장되어 있다. 역동적인 생명력을 한껏 분출시키는 볼륨은 신의 창조적인 숨결을 받아 최종적으로 모든 물체에 입체성을 불어넣는다. 볼륨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미술가 미켈란젤로는 신과 대등한 판단력으로 창조의 미적 신화를 구현한다. 그림 6-1, 그림 6-2, 그림 6-3
그림 6-1 드로잉
그림 6-2 회화
그림 6-3 조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조형예술의 과학적인 산출력보다 신으로부터 전달되는 영감을 중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오직 신으로부터 부여받는 고도한 직관력에 의해 정확하게 판단될 수 있다. 예컨대 대리석 덩어리를 마주해 미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영감으로부터 떠오른 형상을 제외한 나머지 불필요한 돌조각들을 떼어버리는 일이다. 그런 다음 ‘훅-’하고 신성의 숨을 불어넣으면 최종적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이 조각상은 신성을 담아내는 밀폐된 그릇과도 같다. 신에게 연유하는 정신성을 절대 우위에 두고 형상의 질료로서 대리석의 재료를 다루는 그의 태도는 신플라톤주의와 사보나롤라의 신비주의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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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라톤은 이데아의 원상을 쫓아 만들어진 이 세계를 다시 모방하는 재현예술은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과 멀어질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데아의 원상은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 속에 참여함으로써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하느님의 영성이 만물에 고루 나뉘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서구의 전통은 플라토니즘과 기독교의 정신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림 7-1 지옷토
그림 7-2 마사치오
그림 7-3 봇티첼리
그림 7-4 미켈란젤로
지옷토의 --- (그림 7-1)과 마사치오의 --- (그림 7-2), 봇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그림 7-3)과 미켈란젤로의 노예상(그림 7-4)을 차례로 비교해보자. 앞의 것이 확고부동한 부조적 입체감에 가까운 반면 뒤의 것일수록 역동적인 볼륨감이 왕성해진다. 매스의 속성에서 오는 괴감에서 볼륨의 양감으로 입체감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오토의 작품에서 후경의 바위덩어리들은 괴감에 충실하기 위해 어색하리만치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다. 마사치오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체는 근육이 덜 발달한 어린아이처럼 원통형의 입방체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보자. 일정하게 또렷한 윤곽선이 섬세하게 사물의 윤곽선을 포착하고 있지만 순간 얼어버린 것처럼 딱딱한 괴감에서 벗어나 있지만 아직 볼륨은 굳어있다.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은 어떤가. 셋과 하나로 구분될 만큼 차이가 뚜렷하다. 인체의 온갖 근육질의 볼륨은 전체의 실루엣을 깨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생명의 호흡처럼 움찔거린다. 그는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체의 볼륨을 다양하게 결합함으로써 유창한 웅변가처럼 동작을 자유자재로 연출했다.
그림 8-1 인체의 부분도
그림 8-2 인체의 부분도
조형의 방법 면에서도 그만큼 다르다. 지오토, 마사치오, 보티첼리의 작품에서는 물체의 외윤곽선을 기준으로 전체적인 볼륨을 구하고, 반면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작은 볼륨덩어리가 모여 외윤곽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림 8-1과 그림 8는 인체의 허리부분이다. 흉곽, 골반, 허리 등 크게 세 부위의 볼륨이 구조적으로 겹친다. 각각의 볼륨은 바깥쪽으로 팽창하는 곡선더미의 능선을 이루며 겹쳐진다. 하나의 볼륨이 다른 것의 앞쪽으로 겹치는지 뒤쪽으로 흐르는지는 해부학적 근거에 따라 결정된다. 이렇게 대기와 만나는 경계를 따라 외윤곽선이 형성되는 경우와 전체적인 볼륨감 위주로 바깥의 외윤곽선을 먼저 결정하는 경우는 조형적 뉘앙스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통형의 볼륨이든 근육질의 볼륨이든 눈앞의 인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신성을 닮은 이데아의 원상을 좇아 사물의 입체성을 구하고자 하는 데 그 조형적 목적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미학을 추구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나신들이 왜 불경스럽게 보이지 않는가. 의문을 한번쯤 품어 봄직하다. 만일 실제 그려진 대로 벽화에서 걸어 나온다면 그건 괴물에 가까울 것이다. 왜 그림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역동적인 생명력의 볼륨과 이상적인 비례미의 추구를 통해 신성을 담고자 한 조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림 9-1 라파엘로
그림 9-2 부르치노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비례와 볼륨의 인체는 후기에 달라진다. 그림 9-1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인체는 과장되지 않은 적당한 볼륨은 부드러운 공기에 감싸인 듯 부드럽다. 세속적인 친근감을 자아내기에 적당한 표현이다. 미켈란젤로의 인체에서 드러나는 근육질의 볼륨은 다소 누그러들어 유연한 동작에 따라 유아하게 흐르고,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굴의 어둠으로부터 드러나는 인색한 빛의 표현은 이제 밝은 태양 아래에서 환하게 인체를 비춘다. 그림 9-2 부르치노의 간지러운 붓끝에서 꿈틀거리는 저 여체의 뽀얀 살결을 보라. 신성한 주제와 별로 상관없어 보인다. 유방은 그 무게로 찰랑거리고, 매끄러운 피부의 표면 질감은 볼륨의 신성을 억제한다. 인체는 다분히 관능적이다.
그림 10-a
그림 10-b
그림 10 위의 두 그림에서 우리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림 a 의 윤곽선은 아래로 향한 중력의 작용을 반영함으로써 구체적인 개별자로서 인체의 젖가슴을 지시한다. 반면에 그림 b 의 윤곽선은 중력의 힘과 반대방향으로, 즉 절대적인 신을 향해 이상적인 형상을 좇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반영한다. 앞의 것은 아름다운 여인의 향내가 나는 젖가슴이고 뒤에 것은 신의 창조를 닮은 절대적 생명력의 볼륨을 드러낸다. 앞의 이미지는 관자로 하여금 감각적 접근을, 나중의 이미지는 이성적 접근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이렇듯 현실세계의 나체로서 인체와 신의 창조물로서 인체는 구별되었다.
그림 11-1, 11-2, 11-3 부르델
그림 12-1, 12-2 마이욜, 그림 13-1, 13-2 보테르
그림 14-1, 14-2 브랑쿠지
이상적인 신성의 생명력을 구현하기 위한 볼륨의 조형성은 서구 미술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부르델, 마이욜, 콜비츠, 브랑쿠지의 작품을 보자.
그림 11-1 부르델의 조각상은 등신비례를 훨씬 초과하여 3미터 가량 된다. 풍선처럼 과장된 농부의 치마는 팽창한다. 위대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듯 육중한 청동의 물질감에도 거대한 치마의 자락은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극대화된 볼륨의 스케일로 드러나는 아낙네의 넉넉한 풍만함은 세속적인 관능미와 거리가 멀다. 이 볼륨의 미학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회화와 조각에서 전조가 보이듯 육화된 신성의 이상적인 절대미의 구현에 다름이 아니다. 그의 작품 몽토방의 전사를 보자. 그림 11-2 시위를 잡아당기는 전사의 역동적인 자세는 가히 기념비적이다. 부르델 미술관의 아담한 정원 한가운데 높은 조각대 위에 놓여 있는 이 작품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게 되어 실루엣이 또렷해진다. 역광으로 인해 전체적인 윤곽은 파란 하늘과 시커먼 덩어리로 구분되었다. 그 속에서 팽창하는 근육은 차라리 움직임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힘으로 모아지고 웅장함으로 대기에 퍼져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거기에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켄타우로스를 보라. 그림 11-2 반인반마의 육신은 슬픔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생전의 작업실에 놓여 있는 이 작품의 주변으로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침묵이 흐른다. 작품이 내뿜는 엄청난 힘의 파장 속에서 무언가에 가까스로 닿았을 때 떠오른 단어가 ‘신성한 동물성’이었다.
마이욜은 20세기 초의 조각가다. 그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우리는 볼륨의 미학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일별할 수 있다. 그림 12-1 단아하면서도 풍만한 그의 여인 조각상은 전형적인 볼륨을 보여준다. 마이욜 미술관에서 마주친 하얀 대리석의 여인상은 눈 같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등신의 1.5배가량 되는 규모의 이 조각상은 표면이 대단히 매끄럽게 처리되어 정확한 윤곽선이 얼핏 파악되지 않을 정도다. 피부 같은 하얀 대리석의 표면은 먼지의 안착을 거부하며 달싹거렸다. 마치 쌔근쌔근 잠을 자듯 가만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림 12-2 드로잉 작품에서도 마이욜의 조형적 특징은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솜이불을 누빈 듯 단단하게 고정된 윤곽선을 바탕으로 봉긋한 볼륨은 미세한 명암의 단계로 조심스럽게 처리되어 있다. 여기서는 외부의 빛에 의한 변화의 흔적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 깊숙한 내부로부터 비롯되는 진원의 힘은 정점의 표면 진앙으로 이어져 최고조에 이른다.
보테르는 조각가이자 화가다. 그림 13-1, 그림 13-2 희화화된 뚱보 캐릭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라틴계 서민들의 뚱뚱한 체형과 닮아 친근감을 자아낸다. 인체의 비례를 더욱 극적으로 몰아부처 극대화된 볼륨의 미학을 구사하고 있다. 세속적으로 탐스럽게 과장된 볼륨은 전통적인 서구의 미의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긴 하나 신성을 추구했던 정신사적 맥락에서 이탈해 있음이 분명하다. 즉 육적인 볼륨과 신성의 호흡을 실어내는 볼륨은 조형적으로 다른 태도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이후 전자와 후자는 상보적 균형을 유지하며 시각화되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지의 조각은 근원적인 탄생을 상징하는 힘으로 환원된 볼륨이다. 마치 알처럼 거추장스러운 설명을 제거해 버린 그의 조각은 신성한 덩어리로 남았다. 그림 14-1, 그림 14-2 단순화된 이미지를 곱게 연마하여 마무리한 그의 작품은 무엇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문맥으로 비추어 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원초적인 형상의 볼륨에 신성이 깃들여져 있다.
그림 15-1, 그림 15-2, 그림 15-3 로댕
그림 16 헨리 무어
그림 17 자코메티
기독교 정신과 플라토니즘에 근원적으로 닿아있는 신성한 볼륨의 추구는 20세기에 들어와 해체되기 시작한다. 사진기의 출현이후 사물대상에 충실한 기계적인 재현의 성능에 굴복(?)한 회화가 순간적인 인상의 축적으로 구축적인 조각적 입체의 회화공간을 대체했다. 그렇듯이 조각의 장르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그림 15-1, 그림 15-2 오퀴스트 로댕은 작품의 표면에 무수한 손 터치를 남겨 중첩된 흙 터치와 흙 터치의 사이가 평균 5센티의 깊이를 이룰 정도로 터치의 일회성을 그대로 남겼다. 이는 인상주의에서처럼 표면의 현상에 집중하여 치열한 작가의 주관적인, 심리적인 체온을 실어 나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이 여전히 탁월한 볼륨을 바탕으로 하지만 열정적인 작가의 의식은 표면의 경계지점으로 시선을 옮겨 놓고 있다. 그림 15-3 이러한 특징은 속도감을 자랑하는 그의 경쾌한 드로잉에 잘 나타난다. 조각 작품과 비교할 때 너무 가벼워 보일 정도다. 심리적인 재현의 태도는 점차 객관적으로 안정된 사물의 형상을 더욱 거부하게 되면서 격정적으로 사물의 표면을 감싸고 흐른다.
전통적인 볼륨의 미학이 해체되면서 그림 16 헨리 무어와 같이 꽉 찬 볼륨의 입체성이 역설적으로 제시되는 가하면, 그림 17 알베르티 자코메티는 가늘고 길쭉하게 늘어난 금욕적인 최소한의 덩어리로 인체를 축소시킴으로써 신성한 우주를 품고자 한다. 2006.12.25 23:40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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