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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3 18:42 상동 Sang-dong, 종이에 목탄 charcoal on paper, 37.5x45cm
11.13 월요일. 오후에 태백을 향해 달렸다. 잿빛하늘이라 그런지 늘 다니던 길인데도 오늘따라 낯설다. 상동에 접어들자 어둠이 내려앉았다. 오늘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헤드라이트 불빛을 빌려 그림을 그렸다. 늘 눈여겨지게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작은 공터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40여 미터쯤, 나지막한 단층 슬라브 건물이 일자로 길 양편에 늘어서 있다. 듬성듬성 가게의 불빛이 새 나온다. 파출소의 간판이 유난히 밝다.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가파른 산세가 이어진다. 얼마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면 태백으로 가는 외길이 시작된다. 이 길이 참 좋다. 어둠 속에서도 길의 흐름이 느껴 질만큼 익숙해져 있다. 새로 건설되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이미 영월을 지났다. 머지않아 태백까지 뚫리겠다. 그러면 이 길은 죽을 것이다. 아니, 그 옛날 도로가 생기지 전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며 새로 태어날 것이다. 그 때 좁고 구불구불한 이 길로 어평재를 지나 만항재로, 함백산 정상까지 자연을 만끽하며 천천히 달릴 수 있겠다.
인공의 개발과 자연의 보존은 서로 마주보는 두개의 추다. 영국의 한 여류환경운동가가 오지의 마을을 보고 ‘오래된 미래’로 불렀을 때 전깃불을 간절히 원하는 주민들에게 상대적 빈곤감에서 벗어날 권리가 엄연히 있듯이, 내일을 기약하는 개발의 힘찬 고동소리 아래 과거의 기억을 부둥켜안고 슬퍼할 수 있는 권리가 또한 있다. 오늘날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단순한 흑백의 논리는 사물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역부족이다. 현존재의 삶은 단순한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다. 사물과 사물은 주체와 객체로 부단히 구분되고 또 끊임없이 뒤섞인다. 객체는 주체적 판단에 의해 규정되고 주체는 객체를 통해 드러난다. 나와 너는 시소처럼 함께 연동되는 삶의 조건일 따름이다.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야 태백에 도착했다. 시청의 경영혁신 팀장을 만나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산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민박촌에 숙소를 정했다. 키를 건네주는 아저씨가 날 알아본다.
11.14 화요일. 연인을 위한 2인용 침실에서 늘어지게 자고 점심나절에 일어나 철암으로 건너갔다. 신토불이에서 김동현을 만났다. 함께 화석 가게에 가보았다. 두런두런 전차동 복원을 상의하다 ‘가구 만들기’까지 이야기가 번졌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명분부터 제시할 때, 흔히 이기적 이해관계에서 이타적인 관계로 이행하는 자연스러운 순리를 거스르기 쉽다.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위가 나의 즐거움일 수 있는 지점에서 정당성은 원천적으로 확보된다.
저녁에 사북으로 넘어가 조경팀장과 조리팀장을 만났다. 시장통에 있는 그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조리팀장은 소 한 마리에 해당하는 한우의 등심부위를 한 움큼 싸가지고 왔다. 시민패트론이 화제에 올랐다. 15년 묵은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으로 하는 요리를 계획하고 있다는 조리팀장은 후원의 일환으로 시연의 용의를 흔쾌히 내비쳤다. 새로 제안한 피복조형의 방법론에 조경팀장은 긍정적이다. 비용이 문제다. 저녁 10쯤 깜깜한 사북을 떠나 상경 길에 올랐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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