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3. ‘저 달 봐라’, 동활계곡

	3. ‘저 달 봐라’, 동활계곡 오후 3시경 넘어 그림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로, 다시 태백을 향해 영월을 출발하다. 석탄더미 쌓여 있는 석항을 지나 고한, 예미, 함백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고한쪽으로 접어든다. 새로 닦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산을 깎고 시멘트기둥을 세운다. 그리고 ‘강원 랜드’와 태백시는 경쟁적으로, 곧 스키장을 개설한단다. 어쨌든 태백가는 길이 빨라질 전망이다. 다시 두문동재에 이르다. 빠른 길 두문동 터널을 통하지 않고, 오른 쪽 옛 두문동재를 택한다. 두문동재는 싸리재로도 불린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옛길 두문동재는 그야말로 꼬불꼬불한 길이다. 정상 백두대간 싸리 재-함백산 능선에서는 태백산맥의 봉우리들이 그야말로 발아래 빼곡히 들어서 있다.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 한대 보이지 않는 옛길을 돌아 돌아 내려간다. 길은 다시 두문동 터널을 빠져나온 쌩쌩 달리는 차들과 만나게 된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 구와우 농장에 도착하다. 농장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낮부터 전화통화가 안되더니 결국 이곳에서 잘 수가 없게 되었다. 창고에 두었던 캔바스 한 개와 밑 칠된 또 하나의 캔바스를 차에 싣고, 1년 넘게 가보려고 별렀던 덕풍계곡 용소 골을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삼수령(피재)를 오르면서 오른쪽 수도사업소 건물위쪽 능선위에 서있는 ‘소리치는 사람’을 쳐다본다. 그는 외롭게 쓸쓸한 가을을 맞고 있다. 급히 삼수령능선에 있는 정자에 올라 삼척 쪽 드넓은 골짜기를 바라본다. 정상에 있는 나뭇가지들사이로 휘몰아치면서 부벼대는, 원시적인 거친 바람소리가 예사스럽지 않다. 이 여행이 괜찮을까? 괜찮을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에, 홀로 태백산맥을 깊숙이 가로지르는 여행이 약간 불안한 희열이 느껴진다. 정자 밑에 있는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면서 길을 잘못 택한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 통리쪽으로 가야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두워진다. 통리를 지나 미인폭포를 거쳐 신리재로 오르는데, 산등성이 위로 허옇고 둥근 달이 거짓말같이 처억하니, 하늘위로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이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달은 산등성이 까뭇까뭇한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가는 자동차핸들을 꺾어 돌면 어느 덧 큰 얼굴을 방긋, 내밀곤 한다. 이렇듯 숨바꼭질을 하는 사이, 차는 계곡틈사이로, 밑으로 깊숙이 내려간다. 계곡은 숨죽여 시커먼 어둠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을 계속 삼켜대면서 침묵, 정적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다. 이제 달은 머리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완연한 빛을 내뿜고 있다. 저 높이서, 저 달봐라, 저 달봐라, 곤두박질치는 동활계곡을, 귀로는 경유차의 그르렁거리는 엔진소리를 숨죽이며 들으면서, 몸과 마음속에서는 달타령을 듣는 듯, 꿈에 홀린 듯, 캄캄한, 굽이치는 계곡속을 돌며, 또 돌며, 동해안 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평지로 내려왔다. 숨죽여, 달에 취해 빠져 내려 온 동활계곡을 뒤로 하고 이제는 가끔씩 불빛보이는 집들을 보며, 가곡자연휴양림 쪽으로 차를 돌린다. 덕풍 계곡표시판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곡자연휴양림 표시판도, 이 골짜기를 한번 더 오고파 한 것이 벌써 1년 이상이 흐른 것이다. 이 골짜기 때문에 중국의 장강 적벽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그 때는 늦여름이었다. 계곡의 물속에 몸을 담갔던 일이, 나는 삼척 태백산맥밑자락의 한 풍경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욕망에 안달이 낮다. 커다란 공영 주차장에 자리 잡은 민박집에 차 대놓고,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로는 짜장면외에는 안된다는 퉁명스런 접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녁으로 짜장면먹기를 끝낸 뒤, 커다란 주차장, 내 그림자만 길게 느려 뜨려지는 주차장을 가로 질러 계곡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바람 몰아치는 시커먼 골짜기위에, 달은 의젓하게 떠올라 나를 알아보았다. 친숙한 친구처럼, 쓰윽 한번 쳐다보고 방으로 돌아왔다. 한번으로 족했다. 됐다! 내일은 계곡을 걸어 보고 물소리도 들어야지, 9시간여에 걸친 여정이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인쇄하기] 2006-11-26 14: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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