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백산맥을 그리려고...
1. 떠나는 길
2. 고쳐지는 역사, 장릉<莊陵>
3. '저 달 봐라’, 동활계곡
4. 덕풍계곡, 비는 내리고
5. 눈 내리는 구와우
2006.11.5
1. 떠나는 길
새벽, 유광운에게서 전화 오다.
이성경이 주기로 한, 마당에 깔기로 한 돌을 오늘 아침 옮기기로 하였는데, 미루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다. 새벽의 천둥소리로, 비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로 하다.
그렇지 않아도, 임홍 감독이 내 작품 활동을 기록한 영상물, ‘이해와 오해‘ 시사회 뒤풀이에 1일, 3일 참여하여, 계속된 음주가무생활에 지쳤던 터라 몸이 피곤하다.
일어나자마자, 셋째누나가 준비한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짐을 챙기다.
붓, 물감들, 옷가지들, 그리고 지난 번 후회한 일을 생각하며, '장릉지', ‘매월당 김시습’, 그리고 최근 읽기 시작한 '촘스키의 이해 I' 등 책을 챙기다.
훔볼트는
“언어란 인간에게 직접 주어진 것으로 간주 되어야 한다.
언어의 원형이 인간의 정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는 발명되거나 생겨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다. 48쪽
“데카르트 주의자들, 특히 Humbolt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사회이론과 정치이론은 인간의 창조충동을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선의 방법을 결정짓기 위해서 어떤 가치 있는 시도에서 거론된다. 다른 말로하면, 언어에 관한 데카르트적 시각을 일단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단계는 인간의 자연권을 지지하고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경향으로 된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해 I(한국 문화사)‘ 49쪽
위의 두 귀절로 어느 정도 궁금했던 두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촘스키의 이해 I‘ 을 챙긴 이유를 충분히 보상받는다.
훔볼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훔볼트대학을 본 이후 생긴 궁금증이다.
훔볼트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던 000박사를 만난 것도 한 이유이다.
그런데 바로 그가 언어의 원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상상력은 훔볼트에서 슈타이너 그리고 보이스에 이르는 언어와 소리에 관한 연결을 이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베를린 방문계획 때문에 슐츠를 통해 소개받은, 베를린의 드레스덴에서 망명한 동독출신의 작가 헬게와의 만남과 그의 부엌에서 가졌던 대화들( 동독치하 비주류들의 예술 활동들 다다이스트작품과의 접촉들,A.R. 펭크와의 관계 등), 그리고 음악활동, 또한 그의 작업실 한 귀퉁이를 빌렸던 3개월여의 체류에서 경험한 관심과 호기심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과 서구미술계의 역사 문화적 경험의 차이, 특히 90년대 이후 달라진 설치미술을 포함한, 현대미술풍토의 원형으로서의 다다이즘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술과 예술의 범주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버릴 경우, 생겨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가늠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떠나는 나를 보고 동생이, 내일 북한강갤러리에 보낼 작품을 알려주고 가라고 한다.
북한강 갤러리는 서종면 사무소 입구 왼쪽에 있는 작은 갤러리이다.
원래는 소방서자리라고 하였던가?
아마 면단위 사무소에 갤러리가 있는 곳은 서종면이 유일하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서후리 토박이라고 해도 될, 민정기 선생이 애썼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정부가 시도한, 그러나 지금은 흐지부지된 듯한 ‘문화마을 가꾸기’(?)의 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이 갤러리는 가끔 전시회를 기획한다.
다릿골 위쪽에 새로 이사 온 김진화씨가 지금은 일을 맡아보고 있다고 한다.
김진화 부부는 모두 화가이다.
그로부터 작품출품에 대한 전화가 와서, 10호가 채 못 되는 그림을 준비해 두었다.
얼마 전 동학사를 방문해 그린 그림이다.
세 번째 계획하는 ‘노산군일지‘의 첫 답사지, 공주방문의 결과이기도 하다.
숙모전(초혼각으로 불렸던) 자리에서 대웅전지붕위로 보이는 계룡산 골짜기를 바라 본 풍경이다.
큰 산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10여 년 전에는 김종화와 들렸었다.
어제, 그림의 중간부분을 노란 색으로 처리했던, 단풍이 든 나무들을 붉은 노랑색으로 바꾸어 칠하였다. 그리고 오른 쪽 테두리 하얗게 남아 있던 부분도 투명한 적갈색으로 메꾸었다.
그림을 살림채에 갖다 놓고 나머지 카메라가방 등을 챙겨 급히 출발하다.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면 마치, 못 떠나게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나중에 ‘매월당 김시습’과 또 한권의 책을 빠뜨린 것을, 저녁시간 덕풍계곡입구 주차장에 있는 민박집에서 알게 된다.
다릿골을 빠져나와 문호 삼거리로 가다말고, 다시 차를 뒤로 돌려 도장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 가을, 중미산 넘어가는 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