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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홍천과 치악산
양평에서 홍천 길로 빠지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산들이 나타나고 도시를 떠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양수리를 떠나는 기분과는 사뭇 다르다.
양수리를 떠나는 기분이 철없는 어린이의 그것이라면 홍천으로 꺾어지는 기분은 청년기의 그것이다.
다소 비장하고 야심찬 기분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외롭다고 느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생겨나기도 한다.
또한 홍천시내로 접근하면서 나는 저 멀리 드러나 있는 대포알을 연상하기도 한다.
다소 엉뚱한 비약적 상상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런 환상적 느낌이 어깨주위를 통해 등 뒤로 서늘하게 스쳐 흐르는 것을 지울 수가 없다.
왜 그 느낌은 머릿속에 맴돌거나 가슴속에 머물지 않고 내 등뒤로 사라져 버릴까.
왜 그럴까?
남북한 전쟁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 군부대 주둔 도시라는 선입관 때문으로 생각이 든다.
확실하지도 않은 이러한 환상은, 반복되어 주입된 용어로서의 언어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느낌은 전곡 한탄강이나 임진강주변에서 들기도 한다.
그리고 보면 홍천에는 홍천강이 흐르고 있다.
홍천지구전투,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지 혹은 얼마나 치열했는지 등은, 지금 이 순간 확인해보고 싶지 않다.
내게 확실한 것은 녹슬은 대포알이 강변모래사장 주변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철정휴게소 근처를 지날 때에는 목수작가 이정섭이의 교련시간 도시락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가 작업하며 살고 있는 곳은 철정 검문소를 끼고 들어 간다.
그리고 고개를 넘어가면서 군부대를 만나게 된다.
군부대와 검문소 나는 항상 홍천을 이렇게 연결지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홍천강은 내게 저 멀리 있는 자연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 강은 녹슨 철망밑으로 흘러가는 근접할 수 없는 처연함을 지닌 강이다.
웬지 다른 강보다 더욱 깨끗할 것 같은 홍천강은 그러나 일급수 에 사는 물고기들이
녹슨 대포알 사이를 헤엄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언젠가 내 환상에서 대포알이 제거될 때,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강이다.
그러나 그 길다란 홍천강은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구비져 흐르는 홍천강속에 꺽지나 쏘가리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단지 홍천지구(전투)라는 나의 상상 혹은 사실정보에 대한 잠재의식에서 비롯될 뿐
실제의 사실과는 관계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홍천을 이렇듯 옆사람을 스쳐 보내는 도시의 행인처럼 지나게 된다.
단지 언어적 감각 때문에 나는 홍천에 괜히 미안하다.
이렇듯 언어의 신체적 구속은 개념미술가들의 작품들을 가끔 좋아하게 된다.
바바라 크루거의 비너스조각 이미지위에 얹혀진 시선(gaze)이라는 글자작품은 이러한 상상적 줄타기를 즐기게 한다. 여성의 신체에 훌쳐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은 혹은 반대로 여성에 의한 남성들의 신체는
감각의 방사선적 발산이며 흡수이다.
그것은 공격이며 방어이고, 성감의 교류이자 인류의 번성을 가능케 한 성적폭력이자 사랑의 본질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위험한 폭력이 항상 내재된 원시적 본성을 지닌 사랑이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사랑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신의 의지는 아니다.
이것은 언어로 정의되지 않은 지속적인 상태의
성적 본능은 분명히 우리의 본질적의지가 아니고 동물로서의 본능에 가깝다.
교육과 교양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다.
단지 결혼식과 같은 것으로 서로의 상처를 감쌀 뿐이다. 그것도 관습적으로.
그렇지만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것에 거의 근접하는 승화된 어떤 순간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적 희열이외에도, 나의 사랑은 사랑이다.
미셀 푸코는 ‘성의 감옥’에서 이것을 논증한다.
그래서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미술도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미술과 통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감각은 언어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각이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 언어를 제외하고 스스로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예 생각이 곧 언어라고 하면 어떨까, 현상이 없는 생각이 있을 수 없으며 생생한 감각이 곧 언어라고 할 수 없겠는 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다루는 인류학적 문제이다.
언어는 인간의 신체를 통한 실체이다.
근래에 홍천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올라타면서 나의 기분은 사뭇 달라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양평-여주 길을 택하지 않고 홍천-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치악산을 넘는다.
중앙고속도로는 철암그리기 가는 길의 나의 희망이다.
일단 중앙고속도로위로 올라서면 내가 타고 있는 차는 비행기로 변한다.
느낌이 그러하다.
그리고 나의 시야가 그렇다.
구름위의 손오공보다 더 나을 법하다.
강원도 산들의 7부 능선 쯤을 너끈히 올라타고, 저 멀리 원주시를 위협하는 치악산을 넘보게 된다.
아직 차들도 많지 않다.
이 또한 서울 중심에서 2,30분을 쉽게 소비하는 자동차 체증과 답답한 노무현식 정치답보상태 그리고 째째한 이명박식 청계천 전시행정을 비웃고 싶은 호연지기를 길러준다.
그리고 내가 살던 모든 집들을 헐어 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서울시의 건축행정도 용서하고 싶은
관대함이 피어난다.
내가 탄 차는 신나게 달리기 때문이다.
80년대 말부터 한참 영월을 드나들 던 시절, 치악재를 넘기 위해서는 남원주시 외곽을 거쳐 구불구불한
2차선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했다.
자동차로 가면서도 참으로 힘겨운 산 오르기였다.
그러나 재를 넘어설 때의 기분은 또한 별미이기도 하였다.
봉양과 제천을 내려다보며 달리는 그 은근함이 남달랐다.
백련사 더덕 맛이 언제나 기억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