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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의 좌표공간
“예술적인 모방은 과학적인 행위이지 단순히 기계적인 공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인 바탕 없이 실제 작업에만 힘을 쏟는 사람들은 나침반 없이 바다로 나가는 선원과도 같다. 실천은 언제나 확고한 이론에 기초를 두어야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1.
지금은 도심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극장 간판만큼 큰 그림이 없었다. 광화문 네거리 국제를 비롯해서 종로 3가의 피카디리, 맞은편에 명보, 명륜동에 명륜, 삼선교에 삼선 극장이 기억의 정류장처럼 떠오른다. 어느 날엔가 명륜 극장 간판제작 현장을 하루 종일 구경했던 적이 있다. 조수들은 각목으로 얼기설기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양철 조각판을 이어서 씌운 다음 하얗게 밑칠을 해두면, 빵모자에 연필을 귀에 꽂은 화가아저씨는 사진을 손에 들고 스케치를 구상한다. 비좁은 작업장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완성된 간판이 교체될 때 한바탕 떠들썩해진다. 내린 간판은 다시 흰 칠로 뭉개진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극장 간판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먼저 영화의 한 장면을 골라 사진을 준비한다. 수직과 수평선을 그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둔다. 간판의 내용을 스케치북에 대강 구성한다. 홍보효과를 고려하여 이미 고안된 몇 가지 틀에 맞춰 주인공을 전면에 배치한다. 배경장면으로 설정하고 비중 있는 조연배우를 삽입한다. 밑그림의 구도가 결정되면 밑칠 된 간판에 격자 기준선을 친다. 사진에 구획된 네모 칸과 비교하여 윤곽선을 확대한다. 윤곽선을 경계선으로 흑백의 음영을 만든다. 광선의 효과를 여하히 살리는가가 성패의 일차적 관건이다. 흑백의 대비가 분명할수록 이미지는 멀리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흑백 이미지 위에 밝은 면부터 채색한다. 감춰진 어두운 면은 상상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홍조 띤 살갗, 번쩍이는 눈동자의 강렬함, 황혼녘의 분위, 폭발하는 장면 따위를 여러 가지 기법을 동원하여 완성한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유명한 화가는 공방에 조수를 거느리고 의뢰받은 그림을 제작했다. 우두머리 화가는 최초의 아이디어가 담긴 드로잉을 여러 장 제작하여 주문자의 요구사항을 확인한다. 하나의 드로잉이 확정되면 그 걸 바탕으로 모노톤의 밑그림을 그린다. 그런 다음 그 톤에 맞추어 색을 칠한다. 밑그림만 그리거나 색을 전문적으로 칠하는 역할이 세분되어 있다. 특별히 난이도가 있는 경우에, 한 예로 발만 그리는 조수가 있기도 했다 한다. 극장 간판 제작과 다른 한 가지는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엔 사진기가 없었다.
사진기는 19세기 초에 처음 출현했다. 화가들이 오래전부터 거울을 이용한 광학기계를 사용하여 화폭에 상이 비치게 한 다음 잽싸게 형상을 좇아 그렸다고 하나 데이빗 호크니,“명화의 비밀,” 남경태 옮김, 한길아트, 2003
이와 별도로 원근법의 조형 원리는 눈으로 관찰하여 사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종이에 옮기려는 열망에서 고안되었다. 예컨대 아카데믹한 벽화나 회화에 원색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색조의 경계가 분명하다. 사진 이미지는 광학적 빛의 현상을 포착하는 반면 르네상스 회화의 이미지는 원근법의 조형원리에 따라 개념적인 명암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빛의 현상을 포착하고, 원근법의 회화는 빛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역작인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천지창조’의 이미지 판권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일본인 기술자들이 쌓인 먼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단행했는데 고풍스런 이미지는 간데없고 알록달록한 원색성이 강하게 드러나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원근법은 조형의 기술이기에 앞서 하나의 세계관을 뚜렷하게 반영한다. 원근법은 하나의 관점이다. 고대 그리스 이후 르네상스기에 다시 인간 중심으로 선회한 인문주의는 합리성을 존중하며 논리적인 이성의 판단력에 의존했다. 인간의 실천의지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모든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성을 통해 과학적 질서를 자연에 요구한다. 신의 정신 한가운데로 섬광을 번득이며 신의 창조과정을 따른다고 하지만 과학적 사고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눈높이에서 재구축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원근법의 시각체계는 신의 눈으로 조감되는 세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의 눈으로 세계를 조망한다. 말하자면 현실공간을 좌표공간화 하는 일시점의 수학적 공간과 같은 원근법의 세계는 나를 시각의 주체로 설정하여 모든 사물을 배열한다. 추상적 관념체계로서 좌표공간은 세계로 연결되는 개념의 창이다. 현실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적태도가 선택한 하나의 인식체계로서 원근법은 동시에 신의 창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는 지배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벽화제작과 같은 기념사업에 열중했다. 공공장소의 대형 벽면은 이러한 목적에 잘 부합한다. 화가들은 기념비적 내용의 웅변적 효과를 위해 실제보다도 더 사실적인 생동감을 자아내는데 모든 지식과 예술적 기량을 쏟아 부울 수 있도록 요청받았다. 지배 권력자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승리를 기념하는 전쟁화와 교회의 권위를 확인하는 종교화가 따라서 회화의 주제적 범주가 되었다.
이 가운데 전쟁화는 곧 역사화이기도 하다. 실제 있었던 전쟁장면을 설득력 있게 재현하려면 충분한 자료와 지식이 필요하다. 등장하는 인물과 말, 무기 따위의 소도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기하학, 해부학, 원근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신분을 결정하는 의복이나 장신구의 질감표현을 연습했다. 역동적인 장면을 자연스레 연출하기 위해서 웅변가가 말을 구사하듯 인물과 말의 동작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했다.
화가들은 크게 두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 우선, 극적인 한 순간이 눈앞에 멈추어버린 듯한 장면을 얻기 위해 실재와 다름없는 공간을 설정해야 한다. 화가가 알아두어야 할 필수적인 지식으로서 투시원근법은 격자기준선의 그물망을 현실공간에 덮어씌운다. 눈높이를 기준선으로 소실점을 vanishing point 향해 등장하는 모든 사물들의 위치에 따라 크기를 부여하여 통일된 시각적 깊이를 연출한다. 투시원근법의 수학적 좌표는 비례와 균형의 관계로 모든 사물의 형태를 결정한다. 두 번째로, 사실적인 실재감을 지니도록 사물의 입체성을 회화적 투시공간에 구현해야 한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이를 위해 사물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다. 모든 사물의 중심에 인간이 있고 인체는 신의 으뜸가는 피조물로써 신성시되었다. 인체의 해부는 인간을 그 신의 창조과정을 따라 재현하겠다는 화가의 창조적 열망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임산부까지 다양한 인체를 피부에서 뼈대에 이르기까지 신의 이름으로 차례대로 해체했다.
특히 과학자의 태도로 많은 드로잉을 남겼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완성작 ‘앙리히리의 전투’를 위해 30여 필의 말을 해부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화가들은 인체의 동작과 입체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해박한 해부학의 지식은 물론 명암법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원근법의 회화는 물체의 크기와 거리의 관계, 음영의 체계, 인체의 비례와 표정에 대한 관찰과 수학적 증명을 통해 3차원의 공간성을 평면에 구현한다.
2.
2차원의 회화 평면에 3차원의 입체적 공간성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래인과 같은 통찰력으로 도시와 다리를 설계하거나 인공날개, 잠수함, 각종 무기, 시계 따위의 수많은 발명품을 고안했다. 특히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탁월한 조예로 조형예술을 인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집대성한 원근법은 시각세계의 모든 사물을 파악하는 필수조건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상징형식이며 이성적 논증이다. 13세기 말 오캄파의 자연과학에 영향을 받은 레오나르도의 수학적 원리는 신의 창조과정과 필연적으로 일치하는 정신 직관의 산물로써 인간의 정신과 자연의 실재를 결합한다. 예술가의 창조는 곧 신의 사유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드로잉은 지적 개념을 실어 나르는 필수적인 매체였다. 그의 탁월한 드로잉은 종종 신의 능력에 견주어짐으로써 화가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의 노트북에 기술된 내용을 중심으로 3차원의 일루젼을 얻기 위한 좌표공간체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살펴보자.
‘원근법은 점, 선, 면, 입방체, 각도 따위의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차례대로 설명해보자. 첫째, 점은 자연점과 수학적인 점으로 구별된다. 자연점은 무한히 쪼개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인데 반해 수학적인 점은 추상적 개념이다. 이 점은 무수한 선을 통과시킨다. 아무리 작은 자연점이라 하더라도 수학적인 점보다 크다. 수학적인 점은 크기를 지니지 않는다. 따라서 분할되지 않는다. 어떤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분할되지 않는 점은 무無를 의미한다.
Jean Paul Rihter,'The Notebooks of Leonardo da vinci,'vol. I, p.26
둘째, 선 또한 마찬가지로 이차원의 물질이라면 그 의미는 제한된다. 자연점이 늘어난 선은 어떤 이미지를 지시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화에서 선은 상상적 개념 imaginary idea을 드러내는 지적 수단 conceptual method이다. 창작주체의 정신이 물질적으로 현현되는 과정에 선의 기능성이 있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선의 기능성은 경험된다. 무언가 떠오른 단상을 재빠르게 기록해 두어야 할 때가 흔히 있다. 이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나중에 여하히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으로서 드로잉은 대체로 선적이다. 다이아그램과 같이 실재를 대신하는 시각 기호들은 종종 문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낸다. 약도나 지도 혹은 낙서가 그 예다. 특히 낙서할 때 눈의 초점은 종이표면 너머에 맞추어진다. 생각을 끄집어내는 도구로서 선은 소통의 일차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현대화가 장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의 작품은 전형적인 낙서화다. 장 뒤뷔페의 작품도 어린 아이의 그것과 같은 낙서 형식을 취한다. 어떤 가치를 함유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선이 일차적인 소통의 수단이기는 아이의 그림이나 마찬가지다. 한 아이가 네모 칸 안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이건 냉장고야!” 라고 말할 때 “이게 무슨 냉장고야.” 라고 어른의 눈으로 응답한다면 소통의 문은 닫힌다.
현대 드로잉에서 선의 기능성은 미적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오늘날 확대된 드로잉의 현대적 해석은 지적 개념화의 작용을 드로잉의 기능에 부과하는 것이다. 버니스 로즈
그는 1976년 MOMA 에서 ‘드로잉 나우’라는 타이틀로 대규모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는 지적 수단으로서 선의 기능성에 주목하여 현대 드로잉의 개념을 고전적 근원으로부터 추출한다.
드로잉은 회화와 조각에 부속되는 열등한 보조매체라는 문맥에서 그것만의 독특한 자기표현성을 갖는 독립된 매체라는 문맥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드로잉은 전통적인 기능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고찰에 필요한 보고로서 전통적 자원을 고수했다. 최근의 드로잉은 드로잉의 특별한 권리를 재고하기 위해 고전적인 근원으로 선회했다.
지오르지오 바자리는 드로잉을 미술가의 지성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최초의 구체적인 실현은 스케치라고 하였고 1607년 페데리코 쥬카리는 드로잉을 신의 정신에 기원을 둔 형이상학적 활동이라고 격상시켰다. 쥬카리는 작품에 드러나는 것은 미술가의 정신에 먼저 출현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는 디세뇨와 고대적 개념인 이데아를 동일시하여, 내적 디세뇨(disegno interno)와 외적 디세뇨 (disegno externo)로 구별되는 디세뇨의 두 가지 역할을 부여한다. 내적 디세뇨(혹은 idea)는 제작에 선행하며 실제 제작과는 완전히 별개인 것으로서 오직 신에게 연유하는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간에 의해 발생된다; 인간의 이념은(Idea) 신의 정신에 의한 불꽃일 뿐이다. 외적 디세뇨는 개념의 시각적 형상이며 미술가에 의한 재현으로서 회화적, 조각적, 건축적으로 가시화된다. 쥬카리는 재현의 창조적 생산력을 디세뇨에 부여했다.
인간의 지성은 신의 관념작용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신의 정신과 유사하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정신적 형식을 생산해 낼 수 있으며 이 형식을 물질로 변환시킨다. 마치 신의 예정에 의해 그렇게 된 것처럼 미술작품의 제작절차와 자연현실(reality)의 제작절차 간에 필연적인 일치가 여기에 존재한다. - 신의 예정은 미술가로 하여금 그의 생산물과 자연의 생산물 사이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일치점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한다.
다른 한편 드로잉은 자전적인 폭로로서 미술가의 가장 사적인 고백의 표상을 최초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근대적 의미는 최근의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전(全)시기를 통해 드로잉은 고안 - 최초의 지적관념인 작품계획 - 으로부터 서체 형상적 표현에 이르는 범주까지 이해되었다.
Burnice Rose, 'Drawing Now,'pp.9-14
그에 따르면 선은 미술의 심장이다. 이미지의 발생과 배열에 있어 색에 우선하며 색의 경계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르네상스식의 관점인 촉각적 허구의 환영공간에서도 모든 물체의 윤곽선을 결정한다. 원근법은 선에 의한 투사로서 개념적, 상징적 추상이다. 드로잉은 지적 개념화의 기능을 지님과 동시에 가장 사적인 고유한 필적으로 구사된다.
3.
선은 사물의 형상을 윤곽으로 전달한다. 하나의 폐곡선은 하나의 형태를 제시한다. 형태는 비례와 균형이다. 비례는 상대적인 비교를 가능케 하고, 균형은 중력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물의 기우뚱한 정도를 나타낸다.
모든 자연물의 윤곽은 자연곡선의 성질을 지닌다. 이에 비해 인공물의 윤곽은 기하학적 선의 성질을 지니는데 이러한 선은 지식의 산물이다. 과학적인 합리성을 존중했던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기하학적인 선으로 모든 사물의 윤곽을 구하려 했다. 인문학의 대열에 들어선 조형예술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으로 올바른 사물의 형태는 반드시 수학적 객관성을 지녀야 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사물의 형태가 의도에 따라 왜곡된다. 인물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크게 확대하여 중앙에 배치한다던지 혹은 신체의 특정한 부위를 과장하기도 하면서 주제에 충실했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묘사를
수학적 합리성을 요구하는 사실묘사는 흔히 정밀묘사와는 다르다. 정밀묘사는 글자 그대로 사물의 정보를 정밀하게 모사하여 제공할 따름이다.
추구함으로써 정신의 세계로 연결되는 미의 규준을 수학적 좌표공간에서 찾고자 했다. “사물의 존재 이전에 가능한 영원한 창조주의 정신과 흡사한 것이 기하학이다. 창조주의 정신과 대등한 기하학은 만물의 원상原像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눈을 통해 발견된 것이 아니라 신의 모상模像으로서 인간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임범재, 앞의 책
과학자 케플러의 말이다. 객관적 묘사는 사물의 외관적 사실에 머물지 않고 격자의 좌표체계 속에 사물의 형상을 구현함으로써 지적 추상의 개념적 가치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들은 형이상학적 진리를 고도한 정신의 형식 속에서 찾고자 하면서 동시에 현실과의 연관성을 중시 여겼다. “리얼리티란 인식에 투영된 자연의 진리 혹은 진리의 가시적 현상이다,” “이상은 현실을 바탕으로 추구된다.”라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황금비례는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수리적 성질 때문에 지속적인 눈짐작을 유도한다.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 미적 쾌를 향해 수렴됨으로써 지적 아름다움을 유발한다. 뒤러는 사물의 형태를 기하학적 원형으로 되돌려 모든 자연을 유기적인 미의 체계로 해석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를 보자. 도판에서 보듯이 정사각형은 원은 각각 대지와 하늘을 상징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체는 다음과 같은 비례를 갖는다. 즉 두 팔을 펼쳤을 때 머리끝에서 발바닥은 수직으로 정사각의 변에 닿고 양 팔의 가운데 손가락은 수평으로 다른 정사각의 변에 닿는다. 따라서 키는 두 팔을 펼쳤을 때와 같은 길이가 될 때 이상적이다. 또 사지를 사선으로 뻗쳤을 때 그 끝은 정원의 둘레에 닿는다. 이렇게 시작하여 두정에서 턱 끝까지의 길이를 단위로 등신을 결정한다. 또 눈썹을 기준으로 위아래의 얼굴길이가 같다거나 발바닥은 얼굴길이와 같다는 식으로 손가락 마디마디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비례의 기준치를 정한다. 신의 창조과정을 좇아 구현한 인체의 완벽한 비례미는 대우주의 진리로 추구되었다. 절대적인 미의 규준이 된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정확한 윤곽을 구하려 한다면 눈과 대상물 사이에 격자 그물망을 설치하라고 권한다. Alberti,‘회화론’
수직과 수평의 격자선과 교차점의 일정한 간격은 그것의 항상성에 의해 올바른 윤곽선을 구할 수 있도록 판단을 유도해주기 때문이다. 지성과 연결된 이성적인 눈은 감각적인 착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뒤러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실험했다. 물체의 윤곽선을 따라 포인트를 만들고 실을 묶어 일정한 각도로 화면을 향해 연결한다. 화면과 만나 생긴 점들을 잇는다면 정확한 윤곽선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고지식한 뒤러의 태도가 허허롭기도 하지만 ‘스케일scale’에 대해 말하는바 또한 있다. 화면이 물체와 얼마나 떨어졌느냐에 비례해 상의 크기는 다르게 결정된다. 현실공간의 물리적 스케일과 이미지의 스케일은 다르다. 후자는 비례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크기다. 개념적으로 추상되는 환영의 이미지는 실제 화폭의 크기와 상관없다.
신성을 닮은 수학적 윤곽선의 성질에 심리적이거나 감각적인 표현의 징후는 배제된다. 인간성은 언제나 신성에 비해 불안정하고 가변적이다.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천태만상이지만 신성을 향한 공통된 모습이 있다. 신성은 강에 비친 천개의 달처럼 모든 사물에 스며들고 현상은 신성의 본질에 참여한다. 신성을 쫓는 인간의 문명의지는 이성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구심적으로 작동한다. 세계를 진리와 허상으로 구별하여 질서 지우는 플라토니즘은 기독교 사상과 함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인식적 배경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그런데 내안에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적 야생성은 원심적으로 튕겨져 나가려고만 한다.
4.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이해를 더해보자. 눈앞의 대상물과 마주하여 회화적 좌표공간에 물체의 윤곽선을 구하는 과정은 실제 어떤가.
도판 1,2,3,4 : 그리는 순서에 해당하는 그림
1.종이 위에 한 점을 찍고 그 점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선을 긋고, 물체의 중심과 대응시킨다.
2.중심을 기준으로 상하좌우로 나누어진 선분을 다시 반으로 나눈다. 대상 물체의 경우에도 똑같이 구분하여 해당하는 지점을 가상으로 설정한다. 같은 방법으로 교차점을 찍어 더 작은 사각형을 만들면 육안으로 쉽게 비교할 수 있어 오차를 좁힐 수 있다.
3.대상에 덮여 씌운 가상의 교차점들은 기억의 장치로 존재하기 때문에 너무 많으면 오히려 헷갈린다. 대강 어림잡아 윤곽선을 긋고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비례와 균형을 확인한다.
연필이나 그 밖의 보조도구를 수직 혹은 수평으로 대상을 향해 쭉 뻗어 윤곽을 확인하기에 두드러진 지점을 확인한다.
4.끊임없이 수정을 가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수많은 보조선은 절대적으로 안정된 윤곽선을 향해 수렴된다. 보조선들은 다분히 개념적인 성격을 지닌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신의 창조과정을 좇아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멘탈리티와 연관된다. 맹목적인 수정주의는 사진 이미지와 같은 기계적 재현의 정확도를 무작정 추종하는 태도다. 사진기계의 기술적 완벽성과 경쟁하는 무모함은 창발적인 열정이 아니다. 절대적인 사물의 견고한 윤곽선은 수학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뜨개질용 대바늘 따위의 보조도구를 물체의 경사면을 따라 포개놓고 기울기를 확인하여 그대로 옮기려고 한다면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관적 심리가 개입하는 신체의 부정확성 때문이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를 확인하여 직각 삼각형의 빗변으로 기울기를 구하려 할 때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18.원근법은 사물의 형태를 바로잡는데 유용하다. 작품을 제작할 때 흔히 수정이 불가능한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안다면 교정할 수 있다. 같은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원근법을 작품구성에 처음부터 적용시키려 한다면 혼란만 가중되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Jean Paul Richter,"the notebooks of leonardo da vinci,"vol.I,p.18
18.These rules are of use only in correcting the figures; since every man makes some mistakes in his first compositions and he who knows them not, cannot amend them. But you knowing your errors, will correct your works and where you find mistakes amend them, and remember never to fall into them again. But if you try to apply these rules in composition you will never make an end, and will produce confusion in your works.
원근법은 수정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다. 감각을 통해 견인된 사물의 형상은 절대적인 형태의 견고함을 찾아서 끊임없이 수정된다. 개념은 감각의 구체성에 의존하여 하나의 신체를 얻고 감각은 개념의 도움으로 신체성의 외관, 형상을 얻는다. 2006.9.4-9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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