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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18(금) 시민 패트론
단순하게 사는 생활인의 조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화가란 직업은 가능한가? 미술을 수단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미술가라면 화가는 그림그리기를 업으로 삼는 생활인의 모습에 가깝다. 미술가가 추구하는 진리는 하나의 권력이다. ‘이것이 아름답다.’라고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미’를 보장한다. 절대적인 미의 가치는 곧 권력이다. 상대적인 대척점에서 화가는 그림으로 일상의 생활을 영위한다. 만일 그가 세속의 시스템에 등을 돌린다면, 다시 말해 물아일체의 지경에서 신선의 삶을 꿈꾼다면 객체에 합일되는 약자의 주체로서, 권력을 지향하는 강자의 주체와 별로 다르지 않다. 객체에 스며드는 주체나 객체에 포개지는 주체는 쌍방향의 박동을 멈추게 한다. 진정한 주체로서 화가의 모습은 있는가? 화가는 일정 부분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상당한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데 투여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그림과 관련해서 미술교육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생들을 비롯해 시민들을 가르친다던가 하는 일은 사회에 유익한 문화적 소통에 기여하며 경제적으로도 일익을 담당한다. 그렇지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에 우선한다. 화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담보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이 경제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온전한 화가의 생활을 위한 물리적 장치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그림을 돈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화상이 있다. 일종의 중개상이다. 화상의 행위는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시장의 원리에 기초한다. 상품성이 있는 화가는 안정적으로 비슷한 질의 작품을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상품적 수요는 화가의 불안정한 생명질을 거부한다. 화상은 화가의 미학을 수요자에게 이해시키고 그 가치를 설득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화가에게 수요자의 취향을 전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력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생활의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화가는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산성에 익숙해지면 영혼은 굳어가고 어느 날 문득 화가는 스스로의 상품적 가치가 수직으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진즉 알아챌 수 있었지만 내 안의 필요가 객관적인 사실을 애써 합리화시켰기 때문이다. 최초의 거래를 가능케 한 작품의 생기가 사라졌다. 수요자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하지만 화가의 육신과 정신을 통해서다. 한사람의 생활인으로서 화가는 그렇게 사라진다.
오늘날 자본시장의 수요공급 방식에서 빗겨나 화가가 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있는가? 좋은 화상이 있어서 그 공간을 만드는가. 나쁜 화상과 좋은 화상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자본의 시장에 노출된 화가는 무자비한 상품논리로부터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특정한 작품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품이 거래되는 경우는 드물다. 좋은 그림을 그린다고 곧바로 상품적 유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품을 소유한다는 건 분명 적극적인 향유의 행위다. 그렇지만 직, 간접적인 사회적 이해관계가 그 작품의 소유과정에 개입한다. 사회적 권력관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거대한 자본의 시장체계 속에서 화가가 궁극에 상품으로 소비되고 소외되지 않으려면 직접 소통이 가능한 일상적 문화공간의 보호막이 필요하다. 일상적 소통의 수단으로서 미술작품이 유통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주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상업주의 화랑체계에 부속된 화가의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결과적으로 권력의 짝힘으로 작동하는 순진한 화가의 모습에서도 진정한 개인의 일상적 공간은 담보되지 않는다. 사회부적응자로서 일그러진 화가의 모습은 종종 모종의 희생을 즐기는 소비적인 향유의 대중적 패턴과 만나 왜곡된 화가의 상을 더욱 고착시킨다. 미술작품은 한 화가의 소유물이기 이전에 단지 그를 통과하여 현현된 사회적 산물이다. 한 화가의 작품생산이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한다면 그에 따른 향유의 사회적 권리가 발생하고 그 권리는 1/n의 책임으로 보장될 수 있다. 한 사람의 화가를 떠받드는 집단이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자발적인 시민 패트론은 하나의 대안이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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