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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도착한 삼방동 집엔 키가 한 달 만에 훌쩍 커버린 옥수수와 무성해진 호박, 가지, 콩들이 앞뜰과 뒷뜰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자연은 매달 조금씩 의자를 만들고 벽을 칠하고 틈을 메꾸는 일들을 너무나 허약하게 보이게 하는 무성함으로 나를 주눅 들게 하고 싱싱한 푸르름으로 집에 생기를 주고 있었다.
이번엔 하루만의 일정이 아니다. 이틀간 머물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일행들이 모두 구와우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혼자 차를 몰고 나와 철암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지난달에 생각해 놓은 의자 아래 부분을 지지할 작은 합판을 구하기 위해 목공소를 찾느라 태백시를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느긋하게 목공소를 찾아 이렇게 태백시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에 새삼 가슴 두근거리는 기쁨을 느꼈다. 세상에, 5년여를 이곳에 정기적으로 내려왔으면서 태백시를 여유 있게 돌아보는 일이 처음이라니! 나는 무엇을 보며일을 하고 있는 가?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서 길가의 목공소를 발견하고 문을 여니 연탄 냄새가 확 끼쳐왔다. 주인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고. 몇 번을 불러도 일어날 기척이 없다. 순간적으로 어렸을 적 신문머리글을 장식하던 가스중독기사가 떠올랐다. 내 목소리가 다급했던지 주인이 부스스 일어난다. 함께 이것저것 쌓여 있는 합판더미 속에서 적당한 것 을 찾아내 톱질을 했다. 가게를 나오면서 연탄가스주의를 단단히 이르는 내게 아저씨는 쑥스러운 미소로 답을 한다.
철암역에 들러 역 갤러리에 가져다 놓은 작품을 보고, 사진을 찍고 바로 삼방동 집에 들어서자 비가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미쳤다. 옆의 김동현선생 집에서 물과 전기를 공급받곤 했지만 매번 문을 두드리기가 정말 미안하다. 이런 미안함 정도는 극복해야 하고 프로적 근성을 길러야 한다고 아무리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도 아직은 한참 먼 것 같다. 교과서 같다는 동료작가의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오십이된 교과서라니..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고 해도 나는 집안에 있고 아직은 대낮이니까 하고 마음을 다잡고 의자 아래 부분을 우선은 목공 본드로 고정시켜 놓았다. 다음 달에 ㄱ자 꺽쇠를 사와서 단단히 고정시키기로 하자. 그리고 마주 보는 큰 창이 있는 벽과 오른쪽 별채로 가는 통로가 있는 벽을 핸디코트로 바르기 시작했다. 창 아래 부분은 흰색의 핸디코트가 훨씬 산뜻한 느낌을 준다. 이러다 집의 벽을 온통 다 하얗게 칠해버리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빗줄기가 무섭게 굵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로 퍼붓는 듯이 내리고 주변이 컴컴해졌다. 마치 혼자 외딴섬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핸디 코트에 물기가 섞여 미끄덩거렸다. 손등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을 보면서 도대체 왜 나는 여기서 혼자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 저켠에서 서늘한 기운이 출렁였다. 98년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못자고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서 동시에 설치할 작업을 생각하면서 빨간 토끼눈이 되어 붉은 포도주를 혼자 홀짝이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나의 무엇이 나를 뒤로 물러 설 수 없는 이런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일까. 그땐 그렇게 몰고 가는 힘이 나를 작가이게 만드는 하나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엉켜져 있던 현재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질료와 형태의 관계에 대한 것이 가슴 속에서 풀려져 나가는 것 같았다. 왠지 하나의 서클을 한바퀴 돌아 지나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 댓명의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가도 되냐고 물으며 삼방동집으로 몰려 들어왔다. 우산으로 감당이 안되는 엄청난 양의 비가 퍼붓고 있었다. 모두 카메라들을 둘러메고 있었다. 들어오자 마자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 댄다. 날보고 빈집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나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철암그리기라고 들어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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