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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14(금) 철암일기(구와우) 3
2006.7.14 10:07 구와우 guwhawoo, 종이에 목탄과 콘테, conte & charcoal on paper, 23x31cm
아침에 숙소에서 바라본 하늘과 구와우 하늘을 겹쳐 그렸다. 여전히 흰 구름을 바탕으로 회색구름이 뭉실거린다. 언제라도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비를 뿌릴 태세다. <10:17>
2006.7.14 11:28 구와우 guwhawoo, 종이에 목탄과 콘테, conte & charcoal on paper, 23x31cm
서쪽 방면의 동산 너머 흰구름이 바람에 넘실대고, 짙푸른 나무들의 음영이 깊게 패이고, 키 작은 해바라기가 길 따라 흔들린다. <11:28>
2006.7.14 12:28 구와우 guwhawoo, 종이에 목탄과 콘테 conte & charcoal on paper, 36x51cm
남서쪽을 바라본다. 매끈한 초지의 언덕배기에 소나무가 줄지어 있다. 습기를 머금은 대기의 진한 농담으로 녹색이 짙다. 앞 쪽에 해바라기는 바람에 시달려 산만하다. 꽃이라도 피웠더라면 진즉에 떨어트렸을 게다. <12:28>
2006.7.14 13:18 구와우 guwhawoo, 종이에 콘테 conte on paper, 23x31cm
축제 행사기간 내 운영하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산야초 비빔밥이 주 메뉴다. 휘하에 300여명의 조리사를 거느린 강원랜드 조리팀장이 파견 나와 개발한 거다. 아직 준비가 미비하다. 기다리는 동안 식탁에서 바라본다. 높은 산을 배경으로 안 쪽 마당 주차장에 차들과 육천오백만원 상당의 이동식 화장실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콘테가 그 위를 느리게 지나간다. <13:18> 15년 묵은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과 2년 묵은 김치와 각종 산야초. 새우가 박힌 파전과 말아놓은 김치전. 당귀막걸리가 내장을 휘돌자 세상이 달라 보인다.
2006.7.14 15:24 구와우 안개 속에서 in the misty, 종이에 콘테와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conte, color compressed charcoal and pastel on paper, 79.1x109.5cm
합판을 잘라 종이에 맞춰 화판을 만들었다. 나무아래 평상에 큰 종이를 펼쳤다. 목탄으로 슬금슬금 주변을 더듬고 드러누워 딴청을 피우는데 갑자기 토하듯 비를 쏟아 붓더니 이내 빗방울이 가늘어 진다. 안개가 자욱하다. 한치 앞을 제외하고 세상이 묻혀 버렸다. 축축하게 젖은 종이에 목탄은 소용이 없었다. 연필 콘테로 덧그었다. 너무 가늘다. 조심스러운 파스텔로 안개 속에 사물의 색채를 조금씩 흘려보낸다. 산책하는 정은화의 뒷모습이 한가롭다. 굵은 압축목탄으로 사물의 윤곽을 고정시킨다. 길가의 해바라기가 비바람에 억세다. 빗물이 번질거리며 길에 흐른다. 너무도 고운 안개의 질감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손에 쥔 건 까만 압축목탄이었다. 시냇가에서 그녀는 그림을 그린다. <15:24>
2006.7.14 16:58 구와우, 안개 in the misty, 종이에 콘테와 파스텔 conte & pastel on paper, 36x51cm
파스텔이 비에 씻겨 내려가자 안개의 빛깔이 제대로 드러나더라.<16:58>
2006.7.14 17:15 구와우, 안개 in the misty, 종이에 수채 watercolor on paper, 23x31cm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숲길에 동자꽃이 선명하더라.<17:15>
2006.7.14 18:31 구와우, 비 It's raining, 종이에 콘테 conte on paper, 31x23cm
묵직한 안개를 배경으로 후줄근, 비 뿌리더라. <18:31>
몸이 달아오른 나는 일행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나가자는 걸 마다했다. 번번이 비가 그림의 절반 이상을 그려주었던 기억을 되살리자 더욱 갈 수 없었다. 그림의 현장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억의 요소다. 아주 어두워지려면 2시간 정도 지나야 한다.
2006.7.14 19:10 구와우, 비 It's raining, 종이에 목탄과 압축목탄 charcoal & compressed charcoal on paper, 37.5x56.8cm
재빠르게 목탄 쥔 손을 몇 번 휘저었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모든 게 순식간에 젖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최소한의 이미지를 그렸다. 나중에 말려서 보니 오래된 녹물처럼 빗물 자욱이 남았다. <19:10>
김남표와 조리팀장이 나타났다. 일행을 위해 화려한? 저녁식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급히 연락을 취했으나 동동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단다. 본의 아니게 성의를 무시한 꼴이다. 나는 조리팀장의 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산야초 비빔밥을 시식했다. 일행들이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그 다음부터 무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물론 술 때문이 아니다. 기억을 날려 보낼 만큼 술몸이 왕성하지 않다. 까만 기억이 두렵다. 검은 반점처럼 기억이 사라질 때가 있다. 삶을 강탈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장성아에게 전화했다. 별일 없었단다. 다행이다. 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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