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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2006.6.19 13:58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먹 ink on korean paper, 63.5x93.5cm
아래 그림 2006.6.19 19:42 저탄장 위에서 월천동을 내려다 보다. I see the wheolchung-dong on the coal yard., 종이에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pastel & color compressed charcoal on the cold pressed paper, 64.8x101.6cm
2006.6.19(월) 철암일기 7
그림 2006.6.19 13:02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먹 ink on korean paper, 63.5x93.5cm
그림 2006.6.19 13:58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먹 ink on korean paper, 63.5x93.5cm
강원민방 sbs 강원프리즘의 작가와 피디와 황지 중앙로에서 만나 철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철암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통해 일정한 거리에서 영상으로 담아내려 한다. 철암이 거기 그렇게 있고 나 또한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사실 전부다. 내일의 일정을 약속하고 자정이 다 되어 그들과 헤어졌다. 구와우로 가려다 술기운도 있고 해서 근처 여관에 들었다. 새벽에 실눈을 뜨고 누운 채 프랑스전을 tv로 관람했다. 동점골에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4평 남짓 방안을 잠시 서성이다 잠들었다.
무거운 몸을 털고 일어나니 10시다. 철암천변에서 촬영 팀을 만났다. 크레인까지 동원한 촬영준비에 모두들 열중이다. 오늘도 화창하다. 엊그제 땡볕이 생각나 빠른 시간을 쓸 수 있는 붓과 한지를 꺼냈다. 핏빛 적벽돌의 건물이 유난히 육중해 보이는 천변이다. 진한 먹을 풀고 붓끝을 다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청명한 대기를 흐르는 햇빛은 분명한 농담으로 사물을 구분 짓는다. 힘을 모아 짧은 선들을 끊어 얼기설기 늘어선 천변의 집들을 세운다. 까치발을 내딛고 있는 아래로 자갈자갈 소리 내어 철암천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그 흐름을 따라 몇 가닥의 붓끝이 수면의 물을 훔친다. 아주 빠른 붓 잔등이로 전신주의 선들을 한 가닥씩 쳐 잇는다. 경석장 위로 유월의 기름진 숲이 넓은 담묵으로 맑다. 군데군데 나무그림자에 갈필의 농묵이 닿으며 활기를 더하고 빈 하늘에 구름조각이 불안정한 붓끝의 떨림으로 그에 호응한다. 이윽고 먹물을 타고 종이로 빠져든 붓을 건져 내었다. <13:02>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이번엔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엊그제와 비슷한 천변 너머 산이 보이는 풍광이다. 엷은 먹을 듬뿍 적신 큰 붓으로 산의 기운을 따른다. 돌밭에서 쟁기 끌 듯 묵직하게 붓을 움직인다. 천천히 느릿느릿. 허리를 펴고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뙤약볕에 먹의 물기는 빠르게 공기 중으로 날라 갔다. 뽀송해진 종이 위에 진한 농묵으로 타오르는 유월의 불길을 좇아 붓을 비틀려 올린다. 이제 천변의 윤곽선들은 낭창하게 휘어지고 산등성은 더욱 굽고 구름마저 오그라든다. 붓대는 그 때마다 종이수면을 가른다.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기진하여 맥이 풀린다. 천변에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 ‘철암에 어떻게 왔느냐?’ ‘철암에 언제까지 올 계획이냐?’로 압축된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란 말투와 똑같다. 신의 눈으로 카메라의 저편에서 인간을 조감하려는 시선이 다분히 권력적인 말투를 조장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궁색하다. 곰곰이 따져보니 대부분의 할말이 이런 질문에서 빗겨 있다. 물음은 단지 입을 열게 하는 수단이겠거니 여기고 상관없이 철암에서의 지난 일들을 주섬주섬 이야기 했다. 이번엔 그런대로 문맥이 닿는 횡설수설이다.
식사 후 나른해진 몸으로 신토불이에서 낮잠이 들었다. 방안이 조용하고 시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스럼이 없어졌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식당을 나와 어슬렁 철암로를 걸었다. 천변에 세워둔 차에 음악을 틀고 몸을 젖혀 한껏 늘어져 본다. 차장 밖으로 저탄장 꼭대기에서부터 천변까지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저탄장의 비닐덮개가 두 개 능선정도 벗겨졌다. 기름값이 올라 탄이 계속 팔린다. 성냥갑만한 트럭은 뽈뽈거리며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해가 산을 넘어간다. 비닐의 표면이 역광의 빛을 반사한다. 엽서용 종이에 펜으로 천천히 그것들을 좇아 보았다. <16:55>
그림 2006.6.19 16:55 저탄장 the coal yard, 종이에 펜 pen & ink on paper, 15.2x10.2cm
그림 2006.6.19 19:42 저탄장 위에서 월천동을 내려다 보다. I see the wheolchung-dong on the coal yard., 종이에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pastel & color compressed charcoal on the cold pressed paper, 64.8x101.6cm
저탄장 위로 장소를 옮겼다. 산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월천동의 집들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교회와 절집이 비탈에 나란히 보인다. 교회는 이미 비었고 절집은 신도가 줄어 이사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교회의 일부를 철암그리기 팀에게 할당해준 주인장은 수리를 고민 중이다. 그 위로 겹겹의 능선 사이로 평탄한 강원탄광의 사택이 있었던 돌구지 언덕이 보인다. 아래로 지난봄까지 썼던 기와지붕의 남동작업실이 보인다. 주변에 집들이 없어졌다. 아직 2차선으로 남아있는 남동의 철암진입로를 떠받치는 축대가 힘겨워 보인다. 오른쪽에 기차가 다니는 터널입구가 보이고 그 아래 검은 골프연습장처럼 방진망이 둘러쳐 있다. 왼쪽에 멋대가리 없는 상가건물이 풍경의 일부를 가리고 있다. 하늘에 흰 구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있다. 얼핏 한가롭기만 한 풍경이다. <19:42>
그림 2006.6.19 20:12 월천동을 내려다 보다.I see the wheolchung-dong, 종이에 목탄 brush & charcoal on paper, 42x59.4cm
지티비 촬영팀이 찾아올라와 그림의 과정을 부랴부랴 찍더니 사라진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화구를 챙기다 말고 스케치북을 폈다. 월천동이 밝다. 사방이 어스름한 어둠으로 묻히자 상대적으로 월천동이 밝아진다. 인공의 형광 빛으로 대체되기 직전 개와 늑대를 분간하기 어려운 그 시각이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기 한 마리가 위협적인 비행을 시작하고 나는 그 장면을 빠르게 훔치기 시작한다. 어두워 미처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림을 접고 저탄장을 내려왔다. <20:12>
구와우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늦도록 김남표의 더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들으며 포도주를 홀짝거리다 새벽3시가 되어서야 몸을 뉘였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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