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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17 14:44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compressed color charcoal, pastel on paper, 64.8x101.6cm
2006.6.16(금)-6.17(토) 철암일기 5
6.16(금)
철암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한바탕 앓았다. 여행일기를 쓰려고 기억을 떠올려보니 까마득하다. 그림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기억을 연결시켜 보았다. 그림이 분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금요일 혼자 차를 몰아갔다. 오후 4시를 지나 한가람에 들러 재료를 사고 올림픽 도로를 지나 중부, 영동, 중앙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달렸다. 저녁 10시가 다 되어 철암에 도착했다. 골뱅이 pc방에 들렀다. 김동현은 새삼스럽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철암초동문체육대회는 잘 치렀다고 한다. 전시회를 찍은 사진을 보니 창백하게 깔끔한 기존의 전시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친근한 분위기가 있다. 커튼과 발이 쳐진 작품의 배경이 정겹다. 자정에 가까워 김동현과 함께 mbc pd와 금강골 휴양림에서 만났다. 관광이란 주제로 다큐멘타리를 제작하는데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민에게 관광개발의 수혜가 돌아갈 수 있으며, 주민들에게는 여가를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문화를 어떻게 조성할 수 있는가가 그가 말하는 핵심요소다. 철암이 한 예로 적절하지 않을까 해서 찾아 왔다. 철암로 확장공사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는 어떻게 잘 보존해야 새로운 관공문화의 모델을 찾을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만일 천변의 집들이 뜯긴다면 낭패라고 한다. 시청의 분위기는 이미 철거를 기정사실화한 듯 하다고 전한다. 새벽 3시쯤 서울 나들이 했던 김남표가 이강우와 함께 금강골로 합류했다. 김남표는 축제 준비로 몸무게가 8키로 그램이나 줄었다. 구와우 해바라기 축제로 화제가 옮아가기에 철암의 이야기가 너무 무거웠고 밤도 깊고, 술도 이미 깊었다. 새벽 4시가 되자 모두 쓰러지듯 잠으로 빨려 들어갔다.
6.17(토)
이강우와 금강골을 나오면서 경관이 그렇게 빼어나다는 그 골짜기를 가려다 급선회하여 철암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는 사진이 안 된다며 투덜거리더니 구름이 옅게 끼는 듯하자 그의 맘이 바뀌었다. 작품 앞에서 이기적인 그의 모습에서 나의 (전)모습을 또한 본다. 그의 사진은 빛을 좇아 드러나는 사물을 포착하고 나는 빛 그것 자체를 사물과 사물의 사이에서 추적한다. 물론 마찬가지로 그 빛은 사물의 구체성으로 드러나지만 그래도 내가 좀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가 된다.
2006.6.17 12:09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compressed color charcoal, pastel on paper, 42x59.4cm
천변에 새로 난 다리 끄트머리에 화구를 폈다. 먼저 작은 스케치북을 꺼냈다. 고원의 강렬한 아침햇살은 모든 걸 삽시간에 바싹 말려버릴 듯 작렬한다. 음영이 분명하다. 밝은 쪽은 하얗게 타버리고 어두운 쪽은 까맣게 타버린다. 엊그제 충분히 내린 비로 철암천은 넓게 흐른다. 비에 씻긴 초록의 산등성이 왕성하게 기운을 뻗친다. 김동현이 뒤에 와 있다. 철암어린이 공부방의 젊은이가 구경한다. 몇 년 전에 광활(광산촌 봉사활동) 나온 사회복지 전공의 동료와 결혼하여 철암에 아예 눌러 앉아 살고 있다는 그는 예절바른 봉사의 태도가 몸에 베어있다. 천성인 듯하다.
2006.6.17 14:44 철암천변 cheolam riverside, 종이에 칼라압축목탄과 파스텔 compressed color charcoal, pastel on paper, 64.8x101.6cm
대기의 흐름을 좇던 손은 여세를 몰아 큰 종이로 옮아갔다. 정오를 넘어서자 빛은 수직으로 사물을 두개의 음영으로 쪼갠다. 그야말로 땡볕이다. 아침햇살과 강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 김정락은 17세기 독일의 표현주의 풍경화를 기억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얼핏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같기도 하다. 따가운 햇살이 어찌될지 모를 천변의 운명과 상관없이 모든 찌든 때를 대기 중에 날려 보낸다.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두어 뼘 정도 차의 그늘이 있었는데 촬영 팀이 치워버린다. 등 뒤의 카메라가 손을 재촉한다. 원기준 목사가 지나간다. 북한에 연탄보내기 운동으로 한창 바쁘던 그는 요즘도 서울에 자주 간다고 한다. 빛을 좇아 두꺼운 칼라압축목탄을 두드리다 어찔해져 멈췄다. 어제 종일 장거리 운전에다 술로 밤을 새다시피 하고는 익숙하지 않은 아침나절에 거동을 했으니 몸은 진즉부터 불안정했다. 그림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횡설수설이다.
2006.6.17 17:17 서용선 suh, yong-sun, 종이에 크레용 crayon on paper, 15.2x10.2cm
신토불이 식당에서 서용선과 임홍을 보았다. 호주에서 날아와 공황에서 양수리를 거쳐 철암으로 직행한 그는 생각보다 안색이 밝았다.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하다 삼방동 폐가로 다같이 이동했다. 이경희는 혼자 벽에 미장일을 하고 있다. 그녀가 ‘시간의 방’이라고 이름을 붙인 방에 사람들이 모이자 금새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선물로 받은 엽서겸용 스케치북에 ‘시간의 방에서 그림 그리는 서용선’을 그렸다. 철암역갤러리로 내려와 철암체육대회 때 걸었던 작품으로 새로 배열했다. 저녁때가 되자 하나 둘 신토불이에 모여들었다. 김정락과 서울여대 대학원생 5명, 이혜인, 장성아, 서용선, 이경희, 이강우, 김동현까지 모두 13명이다. 콩국수를 별미삼아 저녁을 맛있게 먹고 철초동문의 감사 촌지를 풀어 삼겹살로 푸짐하게 장을 보아 대현리의 팬션 하늬바람으로 향했다. 김동현의 봉고차를 앞세우고 2대의 경유차가 뒤를 따랐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저녁바람에 묻어오는 여름 냄새가 감미롭게 후각을 자극한다.
숙소에 도착한 후 뒷마당에서 불을 지피는 동안 서용선의 짧은 강연?이 있었다. 안식년을 맞아 몇 달 동안 유학생처럼 뉴욕과 호주로 다닌 외유에 대한 보고인 셈이다. (그는 7월에 베를린으로 또 출국한다.) 이미지가 담긴 cd를 빠뜨리는 대수롭지 않은? 착오로 시드니 비엔날레 대신 뉴욕의 이야기를 들었다. 20세기 미국 회화 이후의 회화의 전개과정이 흥미롭다. 그 가운데 식물원에 대형 이젤을 세워두고 수채화를 그린다는 노화가의 작업이 귀에 솔깃하다. 내 작업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늘 현장의 기운을 어떻게 하면 작업실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두 가지를 생각해냈다. 하나는 작업실로 빛을 끌어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빛이 있는 곳으로 작업실 자체를 적극적으로 끌고 나가는 거다. 전자는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투사 이미지를 통하는 거고 후자는 이동 가능한 작업실 구조를 만들어 거기 두는 거다. 그러나 요즘은 방법론적 수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두 달 동안 현장에 거주하며 사생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수업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말했다. 전통적인 사생수업방식에 대해서는 작년 중국유학생으로부터 또한 들은 바 있다. 리커란(이가염)의 수묵화에서 적묵의 그 알 수 없는 깊이를 사생의 전통에서 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다시금 사생의 과정에 절실한 무엇이 있음을 예감해 본다.
이어서 5명의 대학원생을 위시해서 오늘 그린 그림을 저마다 벽에 붙이고 자기소개와 작품설명을 했다. 원생들의 작품은 비교적 저마다 개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장성아의 그림에서 변화를 감지한다. 작품의 성공성 여부와 상관없이 대담한 드로잉의 필선에 서려있는 엄정함이 특징적인 요소다. 감각적인 끈끈한 농담이 이번 그림에서 부분적으로 보인다. 그녀의 솔직한 심경의 토로가 때로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한다. 엉뚱하지만 원근법적 격자의 좌표공간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비례의 감각이 그녀의 개성을 희석시키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18.These rules are of use only in correcting the figures; since every man makes some mistakes in his first compositions and he who knows them not, cannot amend them. But you knowing your errors, will correct your works and where you find mistakes amend them, and remember never to fall into them again. But if you try to apply these rules in composition you will never make an end, and will produce confusion in your works.원근법은 사물의 형태를 바로잡는데 유용하다. 작품을 제작할 때 흔히 수정이 불가능한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안다면 교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원근법을 작품구성에 처음부터 적용시키려 한다면 혼란만 가중되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레오나르도의 노트북을 재벌 번역하던 중에 발견한 대목이다. 원근법은 근본적으로 수정주의 미학의 조형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원근법을 토대로 형상을 이끌어낸다고 가정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먼저 사물의 형상이 감각을 통해 견인되고 다음과정으로 절대적인 형상의 견고함을 찾아 수정을 가하는데 원근법이 적용된다. 따라서 최초의 감각에 중점적으로 기반하느냐 혹은 수정의 의지를 반영하는 개념에 의거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태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선상에서 인상주의를 통과하여 새로운 회화의 공간을 창출하려는 전략적인 시도가 때때로 인상주의의 단순한 소비와 혼동된다. 개념은 감각의 구체성에 의존하여 드러나고 감각은 곧 개념으로 완성되기 마련이다.
다소 지루해질 무렵 사람들은 지혜롭게 뒷마당으로 나가 호주산 포도주와 삼겹살의 오묘한 조화를 맛보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술과 고기는 아름답게 빛났다. 끝 무렵에 장작불에 ‘콩 구워먹기’와 ‘라면 삶아먹기’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진한 맛을 사람들의 혀끝에 새겨 넣었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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