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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6 12:22-16:46 똥골droppings valley, 종이에 콘테와 파스텔 pastel & conte on paper, 78.5x109cm
2006.6.6(화) 철암일기 2
이강우와 나는 아침 일찍 금강골에서 나와 신토불이에서 오랜만에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영화제목처럼 파송송 계란탁에 김치를 풀면 화실생활에서 으뜸가는 필수요리 품목이었던 라면의 진정한 모습이 나온다. 신토불이 아줌마의 라면 끓이는 솜씨는 가히 수준급이었다. 하긴 탄부들과 역원들의 야참으로 한 두 그릇을 끓여 댔겠는가. 맛있게 훌훌 이른 아침을 먹고 황지로 가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처럼 점심으로 빵을 한 봉지씩 사들고 철암으로 돌아와 각자 헤어졌다. 그는 20여키로의 봇짐을 지고 선탄장으로 사라졌다. 나는 남동 기찻길을 건너 똥골 아래 빈터에 자리 잡았다.
옛날에는 전차가 저 위쪽으로 능선을 타고 다녔다고 해서 전차동이라고도 한다. 똥골은 별칭이다. 철암에서도 후진 동네였던 이 곳 가파른 비탈에 좁은 골짜기를 타고 집들이 다다닥 모여 있었다. 산림청 소유의 이 일대에 밤새 집이 뚝딱 지어져 어느 새 바글바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기둥 네 개 세우고 거적을 둘러치고 슬레트 지붕을 덮으면 일단 집이 된다. 검은 돈 석탄을 캐러 사방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상당수가 생활이 불안정한 뜨내기들이었다. 잠시라도 몸뚱아리를 뉠 수 있는 거처가 그런 식으로 마련되었다. 그리고는 눌러앉게 된다. 화장실이 없어 아침이면 집집마다 요강단지를 들고 나와 수로에 똥오줌을 버린다. 골짜기는 늘 똥냄새로 진동했다. 당시 구판장의 성씨가 결정적으로 ‘변’이었단다. 네 평 남짓 터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동네가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여섯 가구만 남았다.
할머니 한 명이 홀쭉한 봇짐을 등에 메고 돌계단을 오른다.
저 위로 넘어가면 어디 나오나요?
장성이 나오더래, 지금은 사람이 안 다녀 막혔어.
할머니는 어디 가세요?
밭에 가지 어딜 가.
귀찮다는 듯 벌써 저만큼 올라간다.
작은 종이를 꺼내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에 접어들어 큰 종이를 폈다. 그리기 전에 식량으로 싸둔 빵을 먹었다. 꿀맛이다. 스케치를 막 끝낼 즈음에 김동현이 온다. 위문 차 방문했다며 캔 커피를 건네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철암동문체육대회 중에 전시할 작품을 건네주었다. 그는 밤새 가게 보느라 졸린 눈을 어쩌지 못하다 갔다. 천천히 골짜기를 올려다보니 빈집 너머로 숲이 울창하다. 2003년 5월에도 이 근방에 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4시간도 넘게 장시간 그림을 붙들고 있었다. 지금도 그 때처럼 숲을 뒤덮은 나무 이피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며 눈을 현혹시킨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줌인을 거듭하며 시야를 교란시킨다. 비온 다음이라 더 그런가 보다. 맑고 깨끗한 숲이다. 아랫자락에 빈집이 서글프다. 마당 가운데 자란 큰 나무와 마루문의 깨진 창으로 까만 구멍이 떠난 사람을 부른다. 그림을 끝내고 사진을 찍어두려고 응달진 곳에 화판을 세웠다. 아, 그런데 폭격 맞아 쓰러진 것 같은 폐허의 흔적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는 몰랐다. 에라, 그림을 고치자. 집과 집 사이에 가운데 부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투시원근법의 지식을 움직여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지붕을 가지런히 하고, 담을 치고, 돌계단도 만들고, 슬쩍 맨드라미 같은 식물도 심었다. 그림이지 않은가.
날씨가 어렵다며 이강우는 사진을 포기하고 상경한단다. 구와우 김남표가 전화했다. 녹혈 먹으러 농장에 가잔다. 먹을 건 사양했지만 구와우로 넘어갔다. 아주머니들이 잡초를 고르며 일에 열중이다. 이번 해바라기 축제에 코스모스도 함께 심었다. 내년부터 봄 유채꽃과 해바라기를 번갈아 틔우겠다고 한다. 한 바퀴 돌아보니 길도 새로 냈다. 이제 토목작업은 거의 끝난 것 같다. 종이를 펼치고 앞동산의 초지를 그리다 어두워져 중단했다. 황지에서 잡화점을 한다는 부부가 방문하여 맥주를 마시며 시장 선거 뒷이야기를 들었다. 자정을 넘겨 이강우가 자던 침대에 노곤해진 몸을 눕혔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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