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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시간에 쫓겨 제대로 인사도 못드리고
철암을 떠나왔습니다.
철암그리기에 대한 글 화일을 문서첨부합니다.
김형숙 올림.
철암그리기 展
태백석탄박물관
2001. 12. 15. - 2002. 1. 31.
'철암그리기'
모여지면 모여지는 대로 마음이 서로 닿으면 닿는 대로,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철암을 몇 번 오갔던 일을 묶어 '철암그리기 展'을 열게 되었다.
철암역을 마주보고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의 간판에 쓰여진 여러 활자들의 모습, 그것을 뒤로 껴안고 철암천변 주위에 늘어선 여인숙들은 철암에 도착한 철암 밖의 사람들의 시선에는 낯선 풍경들이다. 저탄장과 경석장의 거대한 풍광은 산업화 정책 속에서 형성된 흔적들로 온통 검정색과 회색 톤이다. 지중해 지역에서 습기 때문에 아스라한 분위기의 풍경을 스푸마토 테크닉으로 처리했다던데, 이곳 철암의 풍광은 대기속에 석탄가루가 섞여 떠돌 것 같이 마냥 무채색으로만 보인다. 시간을 역류하여 6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곳, 정부의 균형개발정책의 부재로 인해 30여년 전 한국의 모습으로 그대로 멈추어 버린 이곳은 철암 밖의 시선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낭만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철암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 풍광은 철암이 지닌 또 다른 모습이다.
철암은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인해, 곧 폐광될 것이고 도시 전체가 '부재의 공간'이 될 것이다. 경제가 교육이 그리고 문화가 부재한 곳. 그곳이 철암이다.
'철암그리기(Drawing Cholam)'는 부재의 땅, 철암을 그려보고 철암 안과 밖의 사람들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작가, 미술애호가 그리고 철암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철암의 풍광을 사생하였다. 철암 밖의 사람들(작가, 미술애호가)과 철암 안의 사람들(지역주민, 참여의 주체이자 향수의 주체)이 함께 모여 철암을 그린 것이다. 김미정, 심소영, 임도양, 이지은, 이연수, 임도리, 이경미 등 철암초등학교 학생들은 철암안의 사람들로 철암을 그렸다. 서용선 <선탄장 주변>, 이경희<철암의 얼굴>, 류장복<철암천변 북, 북북서, 북서, 남, 채탄시설과 저탄장>, 황우철<아름다운 세상>, 배석빈<석탄파먹기, 광부의 길에서 본 저탄장>, 장성아<철암 만나기>, 한응전<아침, 선탄장, 철암천변>, 이태란<철암동네 1, 2>, 함승희<철암역 부근 I, II>, 정은화<아름다운 철암, 철암풍경>, 박혜성<철암경치, 다리위에서>, 김희<정적>, 신영숙<철암사람들>, 김민정<담>, 박문숙<철암동네>, 민계진<나의 살던 고향은>, 윤기연, 고부영, 류현강 등은 철암 밖의 사람들의 작품이다.
'철암그리기 展'의 작품들은 모두 드로잉(drawing)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드로잉은 '그리다'라는 의미로, 이차원적 평면에 선을 긋는 작업으로 선이 지배적인 조형결과물을 만든다. 회화, 조각, 건축 등을 완성하기 위한 前 단계로 생각되어왔던 드로잉은 이제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떠오르고 회화는 드로잉과 같이 스케치적으로 되어가거나, 드로잉을 회화처럼 더욱 완성도를 가지게도 되었다. 드로잉의 의미가 다원화되었지만, 드로잉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터치와 숨결
을 가장 잘 느낄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드로잉이 지닌 대중교육에 대한 가치는 19세기에 예술교육에서 많이 강조되어 왔었다.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자연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드로잉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지각의 수단으로서의 드로잉'은 일반대중들(특별히 블루칼라 계층)에게 교육적 효과를 주게 되었다. 페스탈로찌는 쓰기(writing)의 기능과 그리기(drawing)의 기능이 인식기능과 상관성이 있음을 밝혔다. 19세기 초 프러시아는 사회구조를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소수 엘리트계층에게 국한되는 교육에서 탈피하여 빈곤한 가정의 자녀들을 효과적으로 교육시키는데 드로잉이 쓰여졌다. 드로잉교육은 언어 기능을 대변하고 미를 수용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적합했었다.
첫 번째 '철암그리기 展'은 눈부신 가을날 그리고 추운 겨울 어느 날, 철암에 이른 사람들이 철암을 직접 사생한 드로잉 전시이다. 철암을 철암의 안과 밖의 시선으로 그려보고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봄으로써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한다. 중심(고급예술/도시)과 주변(대중미술/지방) 경계를 해체하고, 부재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미술과 사회와의 고립의 낡은 경계를 넘어 脫 미술관의 미술,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을 창조하자는 움직임이 '철암그리기'이다. '철암그리기'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과 예술, 현실과 역사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태백 석탄박물관에서의 '철암그리기 展'은 전통적 미술관처럼 祭儀가 이루어지는 聖殿이 아니라, 철암의 지금 여기의 현재 속에 뿌리내려 현실과 하나가 되고자 한 전시이다. 미술과 사회, 그리고 생활이 통합된 전시이다. 미술이 미술이라는 독자성에 고립되어 있어 형식의 질(formal quality)만를 추구하는 것, 미술이 과거역사를 패러디(parody) 하여 기표만을 뜨는 조형방식에 대한 반성이다.
철암을 사랑하는 이 전시는 침체해 가는 폐광지역의 역사적 변이와 그 의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작가들에게는 자유롭고 신선한 창작과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태백시민들에게는 예술교육의 측면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지속적이며 제도적으로 지역 활성화나 지역 문화재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주민 참여를 현실적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유도하여 지역 개발, 가치관의 전환, 의미부여, 평가 및 보완 등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철암그리기'가 지역주민, 개개인 향수자들에게 어느만큼 전이될 수 있느냐가 '철암그리기'에 힘이 실릴수 있는 부분이다. '철암그리기'는 철암의 안과 밖의 사람들이 사랑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천될 것이다.
김형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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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그리기-태백석탄박물관-2001-12-15.hwp (31667 Bytes)
